brunch

다르게 쓰고 싶었던 25년차 기자의 칼럼

[쓰라고 보는 책] 권석천 지음 <정의를 부탁해>

by 은경

아는 후배의 이름 앞에 호가 붙었다. ‘지당’이다. ‘지당하다’의 그 지당이다. 당연한 말을 자주 한다고 해서 붙은 별칭인데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오늘도 지당 선생 오셨다”며 웃어 넘기는 걸 보곤 했다. 지당하신 말이야 그렇게 넘기면 될 일인데, 지당하신 글은 참...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 뻔한 이야기, 구체적인 내용 없이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들이 그렇다. 과거에는 공자님 같은 말, 요즘엔 꼰대같은 소리가 그럴까.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좀 더 다르게, 새롭게 쓰면 좋을 텐데 싶은 마음이 자꾸 든다. 그리고 이 책이 생각난다. 권석천(출간 당시엔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책 <정의를 부탁해>(2015년). 이 책을 한 번이라도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건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었다. 그는 법조기자 출신답게 사건 사고, 검찰 법조계 문제, 세월호 등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룬다. 딱딱한 내용이 어렵지 않게 술술 잘 읽혔던 것은 글의 형식이 다채로워서였다.


또 그는 자신만의 시각과 방법으로 사건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순창군 옥천 인재숙이 2013년도 대학입시에서 35명 전원 합격이란 역대 최고 성과를 거뒀다'는 기사를 보고 그는 전라북도 순창에 있는 인재숙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원래 기사에는 없는, 기사를 보며 든 의문을 풀어내는 게 인상적이었다(이 밖에도 그는 의문이 드는 기사를 보면 현장을 찾아가 또 다른 뉴스를 발굴해 내는 칼럼을 자주 썼다). 그 기사를 보고 직접 인재숙을 찾아갈 생각을 한 논설위원이 몇이나 될까 싶어서.


그밖에 평소 눈여겨본 영화나 책, 미드를 포함한 드라마 내용을 칼럼에 적절히 인용하기도 하고, 소설의 한 장면이나 특정 소설 형식을 빌려 쓴 칼럼도 있었다. 심지어 가요의 가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글을 전개하거나, 조침문의 형식을 빌려 쓴 칼럼(중수부를 조문함)도 있다.


이 책에서만 '80여 개의 칼럼에서 소설체, 반어체, 고어체, 대화체, 편지체, Q&A 등을 활용했다'고 하니 대단했다. 책만 봐도 알 수 있는 그의 열린 자세는 보고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니 또 배가 아팠다.


그는 왜 이렇게 쓰는 걸까. 그 궁금증이 우연히 풀렸다. 지난 6월 <사람에 대한 예의> 출간 이후 예스24와 한 인터뷰에서 권석천(당시 JTBC 보도총괄)은 다양한 형식의 글을 계속 시도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2년도부터 칼럼 '권석천의 시시각각'을 썼는데 다양하게 써보고 싶었어요. 신문에 실리는 글이 재미없었거든요.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알면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러면 내 글도 그렇게 읽힐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다르게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절박했어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쓸 수 있을까' 고민했고요."


'나름대로 절박했다'는 말이 나에게로 와서 묻는다. 너는 절박하느냐고. 얼마나 절박 하느냐고. 마음이 따끔거리다 못해 욱신거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