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음.

서완님, 거기서는 편안하신가요?

by 박다은

항우울제를 다시 먹으면서 '단약기념일'도 지웠다. 돌아가신 선배님의 번호가 다른 누군가의 번호가 되어 카카오톡에 떴다. 이래저래 마음이 힘들지만 학교에 가서 꾸역꾸역 회의도 하고 나니, 별별 생각이 들어 두 시간을 걸어 집에 왔다. 나를 욕하던 사람들이 "실력 있는 사람"이구나. 그저 나는 나에게 못되게 대하는 나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다들 이 바닥(?)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니까 "역시 루저는 나였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들었던 뒷담과 비난이 정말로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라서' 욕하는 거였고 나는 그때도 지금도 '루저가 맞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틀렸구나"라는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해도 나는 루저가 맞는 것 같더라.


그래. 이제 곧 마흔을 앞둔 나이에, 정규직이었던 적이 하나도 없는 비정규직, 일용직 알바 인생. 지잡대 출신의 사람. 유학파도 아닌 국내파. 그리고 어엿한 가정도 없는 이혼한 여성. 돌싱녀.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루저가 맞지. 그리고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루저'가 아니었던 적도 딱히 없는 것 같다. 그저 태생이 루저인 그런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좋은 인생'이라고 평가받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새삼스레 그걸 지금 깨달은 것도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고, 전부 아는 내용이었는데, 그저 어제는 조금 울컥했던 것 같다.


처음에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결정했을 때, 부모님은 꽤 현실적인 말을 했다. "넌 결국 나이만 먹은 백수가 될 거라고."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저주 같은 그 말에서 벗어나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이래저래 정신병만 얻고 '문자 그대로' 3년여 시간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제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갔지만, 세상은 더욱더 치열해졌고 나는 나이를 먹고 더 초라해졌더라. 부모님의 저주를 탓하고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지지와 응원을 바랐던 적도 있었고, 그렇지만 나는 결국 이 모든 결정이 '내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 당장 하던 것을 다 그만두고 로스쿨에 지원해서 변호사가 되는 것이 조금 더 '성공'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상담사를 하고 싶기도 하고, 왜 자꾸 차선책이 '전문대학원'이 되는 것 같아 또 막막하고 답답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그렇게 2년을 버틴 뒤에 자격증이 나의 생계를 보장한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일단 졸업을 먼저 하고 싶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어떻게든 마무리를 하고 싶고, 그리고 난 뒤에 다음 일을 도모하고 싶다.


그래. 어차피 루저인데, 어차피 루저인데, 여기서 더 늦는다고 해서 내가 더 내려갈 바닥이 어디 있겠어.

그저 나는 오늘을 살아야지. 그리고 나에겐 이 나이에(!) 같이 피크민 자랑할 애인도 있고, 친구도 있어. 그거면 오늘을 살 수 있어! 힘내자!!! 그리고 한 번 해보자! 나라고 못할 건 또 뭐야. 하는데 까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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