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지?

불혹을 앞두고 돌아본 나의 인생.... 너무 얼렁뚱땅 살아옴..

by 박다은

우울증이 조금 나아지면서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게 조금 신기한 느낌이다. 예전에는 한 뭉터기(?)로 뭉쳐있는 실처럼 또는 모자이크 처리된 느낌으로 남아서 과거의 기억이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아 약간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떠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영화 같은 느낌으로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꼭 나쁜 점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앞뒤 상황도 떠오르고, 내가 힘들었던 장면들에서 나의 감정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각도(?)가 추가된 것 같다. 2년 전인가 항우울제를 끊으면서 조금씩 신체적 감각이 돌아오더니 이제 과거에 있던 뿌연 안개도 걷히는 중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진짜 소심한 아이였던 것 같다. 진짜 키우기 어려울 만큼 모든 것이 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그랬던 것 같다. (정확한 진단은 소아기 우울증이라고 함, 소심한 것과 차원이 조금 다름) 엄마 옆에 딱 붙어서 맘껏 울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였지만, 엄마 아빠의 엄격한 훈육에 나는 늘 내 감정을 숨겨야 했다. 의젓하고 씩씩하고 똑똑한 '차세대 여성 리더'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을 부모님이 특히나 좋아했다. 그러나 나의 본성은 너무 달라서 책을 보고 혼자 망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시인이나 소설가, 음악가, 작곡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그러다가 10살 즈음? 조금씩 책을 보다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너무 매력적이라 엄마 아빠에게 조잘조잘 얘기했더니 변호사나 문과는 생각하지 말고 공대에 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10살 즈음부터 고1까지 나는 신문을 보고 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수학을 더 많이 배웠고 독서 논술 학습지(한우리)를 제일 오래 했고 제일 재밌어했지만, 결국 고2에 이과를 선택하면서 수학의 늪으로 빠졌다. 미적분도 재밌고 확률과 통계도 꽤 재밌었지만 부모님이 나의 마음을 조금만 알아줬다면, 부모님이 원하는 모습보다 내 본성을 조금 알아봐 줬다면 문과로 진학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고3 여름방학 즈음에 짝꿍에게 전도당해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다시 예전의 마음이 올라와 그나마 교차지원을 통해 사회복지학과로 진학을 했으니 더욱더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다. 뭐, 그래도 문과생 중에는 수학을 제일 잘하겠거니 하면서 웃음으로 넘기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는 무엇보다 교회활동에 열심이었는데,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에 진짜 진심이었던 것 같다. 다른 대학도 있었지만 그 당시의 신실한(?) 마음에 기독교 대학을 선택해서 교회와 학교 모두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당시에 ADHD가 진짜 심했던 것 같고 마음의 진정이 되지 않는 부분을 신앙생활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를 떠올리면 '사이비 종교인'같은 느낌이 든다. 맹목적으로 감정적으로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언젠가 기적처럼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해외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탄 하버드 교수가 나를 좋게 봐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그런 정말 '망상과 같은 기적'을 꿈꿨던 것 같다. 현실적인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씩 현실적인 생각이 들면 기도원이나 수련회 같은 곳을 찾아서 나를 중독시키고 마비시켰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학사편입에 실패하고 취직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당시 내가 만나는 사람과 일찍 결혼해서 일찍 아기 낳고 예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을 많이 괴롭혔는데 그런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고 (당연한 결말) 나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야 한다는 이유로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처음 기독교인들끼리 기도모임을 하자는 제안을 받고 대학원 동기들끼리 같이 모여 기도를 했을 때만 해도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크게 써주시기를 원한다."라고 했었고,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도 없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게 '크게' 혹은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기도하던 동기들 중 나만 석사를 졸업했고, 나만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함께 나눴던 비전과 기도제목,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너무 사이비 같이 믿었나? 싶은 생각이 많았다. 적당히 결혼하고 취업하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도 모색하고 해야 하는데 내가 '사이비 종교인'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그다음부터는 기독교나 종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이하지만 그 시기와 우울증 시기가 겹치긴 하는데, 많이 아프고 공허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무기력하고 공허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실 거야.'라는 보상심리가 없어지니까 무기력해졌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더욱더 의식적으로 하나님과 나를 분리하려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이 인간의 상상과 다르다.'는 이런 종교적인 논리가 아니라 그냥 '보상'을 바라고 '고행을 자처하는' 나의 사이비 종교인 같은 어떤 마음이 불편하고 싫었던 것 같다. 그냥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뭐가 나쁘며, 젊을 때 이것저것 시도했다 실패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은 또 뭐가 그리 잘못인가? 그저 순간순간의 나의 마음을 인정하고 나의 욕구를 표현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인데 굳이 나는 무엇을 원해서 이렇게 '오지 않을 미래'를 바라면서 살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프던 중에 캐나다를 가게 되었고 친구들과 교회를 가고 성경을 읽으면서 다시금 하나님과 연결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연결된 지 2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꿈꾸는 것과 여전히 열망하는 것이 있다. 한결같이 열망하는 무언가가 있고, 또 변함없이 아픈 몸뚱이가 있다. 여전한 욕망과 여전한 한계가 공존하는 나의 인생은 이제 40의 나이가 되었다. (곧 마흔 진짜 내년에 마흔)


내 직업이 무엇이 될는지, 여전히 나는 알 수 없다. 칼럼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긴 한데 마감을 잘 지킬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에세이 작가나 비평가로 등단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문득문득 변호사나 검사가 멋있어서 로스쿨에 가고 싶다는 마음도 품지만 그건 정말 늦은 것 같아 포기하기로 했다. 박사 수료하고 진짜 진지하게 시험 문제를 보며 고민했었는데, 임계치를 넘지 못하는 마음이었기에 지금도 그냥 생각이 나는구나 하고 웃고 넘긴다. 알바를 전전하는 일도 이제는 귀찮고 고용주에게도 민폐인 것 같아서 정규직 연구원이 되지 않는다면 아마도 자영업자가 될 것 같다. 동생과 진지하게 사업 파트너가 되어 조카들의 돌봄에 손을 보탤 수도 있다. 꽤 많은 가능성이 있고 또 여전한 한계(건강, 나이, 차별 등)에서 나는 분투하게 될 것이다. 가능성과 한계가 모두 공존하는 나의 모습을 이제야 인정하는 것 같고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서 요즘 꽤 기분이 좋다. 솔직히 나는 내가 마흔까지 살 거라고 생각을 못했었는데 (그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마흔이라는 인생을 그려본 적 없었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만약 이런 행복을 모르고 죽었다면 꽤 속상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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