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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취향이란 말을 싫어한다.(2)

카페의 과거, 문제점(1)

by saegil


지난 글이 바리스타의 입장과 취향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글은 잘못을 말하고자 한다. 잘못을 이야기하려면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나의 잘못부터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이번 글은 고백이자 반성이다. 내가 겪어온 시행착오 속에서, 지금의 카페 현실과 맞닿은 문제를 다시 꺼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반성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경험과도 겹쳐지길 바란다.


13년 전, 백화점 지하의 작은 프랜차이즈에서 처음 카페 일을 시작했다. 기름기 번들거리는 원두를 태우듯 볶아내고, 설탕 파우더에 향을 섞어 음료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커피에 대한 지식도, 추출에 대한 기준도 없이 버튼만 누르면 끝나는 일이었고, 그마저도 그럴듯한 마케팅으로 포장되었다. 돌이켜보면 그곳은 ‘카페’라기보다 ‘사진관’에 가까웠다. 커피의 맛과 향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유니폼과 분위기만 남았다.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커피의 본질을 외면한 결과가 오늘날 카페 문화의 혼란이라는 것을.


솔직히 나는 처음부터 커피를 제대로 알았던 바리스타가 아니었다. 나 또한 좋지 않은 원두를 ‘괜찮다’고 포장했고, 버튼 하나로 끝나는 추출에 안도했다. 맛도, 원리도 모른 채 ‘내가 만든 커피’라며 손님에게 내놓았다. 돌이켜보면 무지했고, 책임감도 없었다. 커피가 아니라 카페라는 무대, 그 안에서의 내 모습에 더 취해 있었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업계 전체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커피의 본질보다 인테리어와 사진이 우선시 되었고, 원두는 여전히 ‘검게 볶으면 진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카페는 학습과 전문성의 공간이 아니라, 장사의 도구가 되었다. 그 결과, 소비자에게는 잘못된 기준이 심어졌다. 쓴맛만 강하면 진한 커피라 믿고, 신맛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스페셜티라 착각한다. 그 왜곡된 인식을 만든 건 결국 바리스타인 우리였다


소비자는 여전히 착각한다. 커피는 몇 백 원짜리 원두에 물만 부으면 끝난다고. 그래서 커피 한 잔 값이 비싸면 불평하고, 추출의 맥락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컵과 플레이트를 더 중시한다. 바리스타를 기술자나 전문가가 아닌, 그저 주문을 받는 아르바이트로 취급한다. 그러나 한 잔의 커피를 뽑아내는 데는 지식, 경험, 감각, 훈련이 필요하다. 원두의 산지와 가공 방식, 로스팅의 온도와 시간, 추출의 변수와 향미의 균형.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쓴맛이 강하면 진하다’, ‘신맛이 나면 스페셜티다’ 같은 피상적인 말만 남는다. 이 단순화된 인식은 소비자가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리스타 스스로가 방치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는 전문성이 결여된 바리스타가 소비자를 가르친 척하며 잘못된 기준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창업 콘텐츠로 조회수를 모으거나, 겉멋 든 평론가처럼 원두를 평가하는 글을 쏟아낸다. 소비자는 그 글을 ‘전문가의 조언’으로 착각하고, 다시 왜곡된 시각을 만들어낸다. 결국 바리스타의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카페는 사진관으로 변질된다.


나는 바리스타들에게 묻고 싶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면 방송국으로 가라. 전문가인 척 포장해 선동하지 말고, 문제가 있다면 정직하게 지적하라. 커피를 사랑한다면 장사보다 더 중요한, 지식과 기술의 토대를 다지는 데 시간을 써라."


소비자에게도 말한다.
"사진이 아닌 커피를 보라. 카페를 무대 삼아 자신의 SNS를 꾸미는 순간, 커피는 더 이상 문화가 될 수 없다. 커피의 가치는 가격표에 있지 않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노고와 공부에 있다."


잘못은 한쪽의 책임이 아니다. 나, 우리, 소비자 모두의 몫이다. 하지만 잘못을 고백하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도 시작된다. 카페가 사진관이 아닌 문화 공간이 되려면, 바리스타가 직업 이상의 전문성을 갖추려면, 소비자 또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커피 문화는 바리스타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 바리스타는 더 공부해야 하고, 소비자는 더 의심해야 한다. 그래야 사진관이 아닌, 진짜 카페가 남는다.


많은 이들이 현명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짜 바리스타들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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