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서비스, 바리스타, 코로나, 해결방안
손님이 왕이라는 말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너무 쉽게 소비된다.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거나, 맞는 말이라도 불편하게 들리면 ‘꼰대’라 치부해버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서비스업에만큼은 여전히 꼰대와 다들 바 없는 어느 손님이 절대적 우위에 서 있는 듯하다. 특정 매장의 서비스나 일처리를 두고 무차별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글을 볼 때면, 그 사람들은 과연 자신의 일터에서는 얼마나 성실하고 성숙한 태도로 일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변화가 빠른 커피 시장 속에서 이제는 대중화되지 않았던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 콘셉트를 스스로 골라 찾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그에 따라 바리스타 또한 손님을 ‘왕’으로 대하기보다 소통 가능한 ‘사람’ 혹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찾아와준 ‘감사한 소비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님이 왕이라는 개념을 당연하게 여기며 무례를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그런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소비자들에게 이제는 시대와 상황에 맞게 조금은 달라질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요즘 카페의 서비스는 과도한 친절보다는 불필요한 친절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손님과의 유대관계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사소하고 비합리적인 컴플레인이 반복되며 생긴 방어에 가깝다. 잔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본인의 부주의로 음료를 쏟고도 당연하다는 듯 다시 만들어 달라 요구하는 일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된다. 물론 돈을 받는 입장에서 기본적인 친절과 서비스는 당연하지만, 손님이 왕이라는 사고방식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가 가져야 할 태도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카페와 각기 다른 콘셉트가 존재하는 만큼, 소비자 역시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의 방향에 맞는 공간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바리스타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을 응대하며, 실수에는 사과하고 끊임없는 질문과 전화에 대응하다 지치기도 한다. 특히 직장인이 많은 지역이나 분위기가 험한 동네일수록 직원을 하대하거나, 자신의 지식이 더 위에 있다는 전제로 말을 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서비스의 부족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말과 태도가 누군가에게 어떤 감정으로 남는지 한 번쯤 돌아봐주길 바랄 뿐이다. 어디까지가 서비스인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 매장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서비스의 범위는 끝없이 달라지고, 특히 유명 브랜드일수록 더 과도한 요구가 쏟아진다. 외부 음식을 가져와 먹거나, 주차 지원이 되지 않음에도 당연히 요구하고, 음료를 많이 시켰으니 무언가를 더 달라는 식의 행동은 현실에서 너무도 흔하다. 매뉴얼과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대부분 해결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요구가 무례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커피를 제대로 맛보지도 않은 채 샷 수를 조절해달라거나 과도한 커스텀을 요구하는 행위는 바리스타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조리해 달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쁜 매장에서 항상 친절한 표정과 여유를 기대하는 것 또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바리스타는 지금 주문한 사람뿐 아니라 다음 손님에게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에,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최소한의 태도로 응대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많다. 그런데 바리스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이런 요구 그 자체보다도,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자신이 점점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다. 처음에는 분명 커피를 좋아해서, 누군가에게 맛있는 한 잔을 건네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질문이 귀찮아지고 설명을 줄이게 되며 손님을 ‘사람’이 아닌 ‘업무’로 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악의 없는 질문에도 먼저 표정이 굳고,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으로 말을 아끼는 태도는 우리가 가장 싫어하던 무례와 닮아 있다. 낮은 처우와 불안정한 미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바리스타는 친절보다 방어를 배우고, 기대하지 않는 쪽으로 스스로를 보호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여유가 아니라 설명이고, 웃음이며, 사람을 향한 관심이다. 커피를 만드는 일을 단순 아르바이트로 여기며 전문적인 서비스를 기대하는 태도 역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바리스타 스스로도 ‘프로’라는 말 뒤에 무성의를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전문직 인정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존중이다. 지난 코로나를 통해 그동안 막연히 느끼던 끔찍한 시민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방역 수칙을 요구하는 직원에게 쏟아지는 분노와 무례는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아쉽게도 진상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무관심을 택하고,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눈을 피한다. 각 매장에는 기준이 있고, 그 안에서 모두에게 동일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팔로워 수나 유명세가 그 기준을 넘어설 수는 없다. 번외로 이 글을 읽는 소비자에게 묻고 싶다. 카페에서 느낀 불편함이 정말 서비스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이미 지쳐 있던 자신의 하루 때문은 아니었는지, 설명을 듣기 전에 판단부터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커피 한 잔의 값에는 원두와 공간, 시간뿐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과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덜 화를 내고 조금 더 질문할 수 있지 않을까. 손님이 왕인지 묻기 전에, 그리고 바리스타가 전문가인지 따지기 전에,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 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는 짓을 한국에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게 아닐까?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