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16.
딸아이와의 연락은 그랬다. 그는 애나 어른이나 고통은 매 한 가지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관계로 인한 고통인데 자기 자신과의 관계일 때 먼저 그리고 가장 힘들게 다가왔다.
오래전 그가 직장에서 내 쫓기다시피 했을 때도 누구 하나 붙잡고 하소연하지 못했다. 그 누구에게도 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무나 붙잡고 뭐라도 속 시원히 말하고 싶어도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처참하게 내동댕이쳐진 자신을 두고 마음 편히 울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지금 왜 그렇게 비참하게 느끼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어서 예배당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나 자신이 되는 두려움이지'
사람들은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를 쓰곤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제 모습은 그토록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SNS에 보란 듯이 등장하는 맛깔스러운 음식과 양념처럼 곁들인 행복한 표정은 실제 삶에서 느끼는 우리의 비주얼과 입맛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했다. 아닌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기에 그냥 행복하다고 말해 두거나 저 자신이 행복해야만 좋을 것 같다는 당위성에 끌려 다니기 쉬웠다. 하지만 겉 사정과 속 사정은 종종 달랐다.
진품이 아니면서도 진짜라고 속이다 보니 누군가 그러한 속마음을 알아줘야 했다. 짝퉁을 들고 서 있는 그 시간과 틈을 무언가로 메꿔 줘야만 했다. 그렇다고 언제나 진품이 되어야 한다는 설정도 비현실적이었다. 인간인 이상 어느 정도 불완전한 시기는 인정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언젠가 진국 내지는 진품이 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과정의 공백을 메워주는 작업은 필요했다.
그 꼭짓점은 나와 화목하게 지내는 일이었다. 저 자신이 계속해서 변명하고 실수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화해하자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달래주는 것이었다. 지겹지만 지겹도록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너른 우주 또한 "나"라는 부분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로 사는 비결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불완전하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하지만 우주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지?'
완전한 것이 올 때 부분적인 것은 사라진다고 믿었지만 자신 스스로를 바로 느끼지도 못하면서 이 우주가 저를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고 해석할 것인지가 그를 괴롭혔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던가. 이 세상에 오직 두 가지만 무한하다고. 그 하나는 우주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지금은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만이 느끼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어리석음을 열게 하는 뭐라고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를. 다만 지금 저가 말로 지어낼 수 없을 따름이라고. 답답하지만 그는 어렴풋이라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