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by 아빠를 여행하다

_ 19.


달리는 길가에 좌우로 흔들어 대는 갈대는 어른 키보다 한 자는 높았다. 1,700m 고지를 넘어서자 공기는 싸늘해지고 코끝은 찡했다. 촉촉하고 울창한 산지를 넘은 미니버스는 루앙프라방 시내로 수줍게 들어갔다. 황금 불상 "프라방"을 기리는 이름답게 차분하고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거리는 나지막한 건물들로 정감 어린 풍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그재그 마주 보는 사원에선 시간에 맞춰 북소리를 울렸고 그리 넓지 않은 도심을 따라 탁발 수도승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관광객들도 그만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는 도심 속 푸시산 정상에 올랐다. 메콩 강에 둘러 싸인 도시의 아침을 고이 맞이 하고는 다시 관광객들 틈에 섞여 농키우로 향했다.

그곳은 특별함이 없는 특별함이랄까. 널리 알려진 유적지도 다른 도시를 잇는 교차점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 깊은 강변 마을은 이방인과의 소통은 접기라도 한 듯 각자의 행선지를 향해 바삐 들 걷고 있었다.

마을은 차 소리와 소음으로부터 현격히 멀어져 있었다. 도로 위로 깔리는 자동차 진동음도 잠시 잊힌 듯했다. 대신 아이들이 학교에서 떠드는 소리가 마을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어찌나 재잘대는지 새떼들 같았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해방가가 마을의 오후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 뒤를 잇는 늘 있어온 개 소리, 닭 소리...

강변에는 보트 선착장과 함께 식당, 숙박업소들이 마련돼 있었지만 그는 여행자 무리에서 벗어나 마을 초입에 짐을 풀었다. 유유히 흐르는 초록빛 강물과 강 건너편 산세를 초연이 바라볼 수 있었다. 그가 묵은 방갈로는 테라스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마루에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 있어서 사생활을 훤히 내줘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어두워지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빈 구멍들 사이로 찬 바람이 쏠쏠찮게 불어오게 결정적인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는 북쪽 고산지대로 거슬러 오면서 쌀쌀해진 날씨를 감당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웬만하면 하나 사서 입으라는 아내의 주문이 있었지만 그날도 양말 하나를 가위로 잘라 정강이 무릎까지 길게 올려 입고 있었다. 방에는 백열등 하나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으나 빛이 어둠보다 밝다고 하기에는 왠지 부족해 보였다. 그 틈으로 아이가 한마디 던졌다.


"아빠, <개미에게 세상이란 무엇인가?>"

"이 대답을 하려면 그건 철학자가 해야 할까? 아니면 곤충학자가 해야 할까?"


"..."


답하기가 모호했다. 그 질. 문. 이 철학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게. 그 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일까? 아니면 곤충학자일까?"


지가 물은 아이가 저가 신나 말했다.


"철학자 아닐까?... "

"아닌가! 개미를 잘 아는 것은 곤충학자잖아! 개미를 우선 설명해야지~"


그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게. 세. 상. 을 규정해야 그다음 설명으로 이어지지... 아닌가?"

'세상이라면 어디까지가 세상인가?'


세상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들리고 보이는 우주, 피부로 느끼는 우주, 그 너머의 우주도 있다고들 믿잖아?'


측량하고 계측된 인간 영역 너머의 것이 멀쩡히 존재한다는 것이 께름칙했다. 눈에 띄지 않는 자외선, 귀에 들리지 않는 주파수대, 뭐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답답했다. 기초문장을 이어가지 못하는 느낌이 성가셨다.

그는 세상부터 현실적으로 정의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세상은 이런 것이야"라고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떠난 여행이었지만 막상 그가 보여준 세상은 그런 게 아니었다. 피부로 다가선 세상은 전우주적인 게 아니라고 반항하고 있었다. 우주가 넓다 한들 삶에서 부딪히는 우주는 계측 측량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끌어당긴 가변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아이에게 세상은 곧 아빠였다. 여행 내내 아이를 바라보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었다. 온 우주야말로 감성체 덩어리라 한들 아이가 아빠를 통해 보는 세상이야말로 아이에겐 우주적 느낌이 되고 기억이 되었다. 아빠는 절대자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부모로부터 받은 DNA를 토대로 경험에서 얻은 데이터가 더해져 사건에 반응하는 흐름이야말로 한 우주의 관리자였다. 비록 우주가 하드웨어처럼 존재하더라도 개체가 돌아가는 시스템은 내부 프로그램이었다. 부모가 심어 놓은 심리적 소프트웨어를 뭘 깔았느냐가 중요했다. 각자 OS 운영체계가 달랐기에 같은 키를 눌러도 작동 방식은 달랐다.

그가 그랬다. 직장 생활에서 권위자를 대하는 것과 우주를 대하는 느낌이 꽤 닮아 있었고 그 느낌은 아버지를 대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때 느끼는 기분은 전 우주가 그에게 이야기하는 방식과도 유사했고 세상과의 내레이션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또 그가 예측하는 미래 시각에도 착착 맞아떨어졌다.

어쨌든 세상을 규정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아무리 별개의 세상이 있다 하더라도. 게다가 희비극은 운명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본인이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 세상과 자신의 세상이 하나 되기를 누구나 꿈꾸고 있는지도 몰랐다.


'실제 존재하는가? 아니면 마음 안에 있는가?'


이런 생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황급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삶은 금전적으로 번잡하고 감정적으로 부서지고 현실 속에서 흐트러지기 쉬우며 신념은 이내 소멸되기도 했다.


'그래. 여전히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나만 속이면 세상을 모두 속일 것 같이 산다. 그게 나다!'


부랴부랴 잡념을 결론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이켜보았다. 그럴수록 후회되는 것은 여전히 걱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샌들을 동여매면서 아이에게 "제발 신발 좀 꺾어 신지 말라!"며 잔소리를 보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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