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by 아빠를 여행하다

_ 21.


미리 낌새를 눈치챘어야 했다. 그들의 수상쩍은 행동을 처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다시 올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현지인들의 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세상을 관찰한다고는 했지만 저 스스로 사람들 눈을 유심히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짐짓 당황했다. 신기하게도 현지인들은 그의 눈을 찬찬히 응시하고 있었고 이로써 꽤 많은 정보를 얻고 있었다. 반면 저 자신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에만 귀 기울였으며 그가 얻고자 하는 것에만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여행 중에 마주한 현지인들은 대부분 누추하고 헐벗었으며 교육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개중에는 여행자들로부터 뭔가를 뜯어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바람잡이들도 있었지만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그의 눈을 일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그동안 뭘 배우고 살았는지 인생을 헛살았다고 뉘우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매사에 사람들 눈 안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간의 과오에서 조속히 벗어나고자 했다.

정말로 그가 바라만 보려던 세계와는 결코 다른 이야기가 그들의 눈빛 안에 또 그 눈빛을 통해 펼쳐지고 있었다. 루앙남타 버스 터미널에서도 그랬다.


"보텐! 보텐!"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매표소로 다가가서 물었다. 배낭을 어깨에 들춰 매고 있었다.


"보텐?"

"예쓰, 보텐!"

"보텐?... 음...."


며칠 후 이 곳 루앙남타에서 중국 국경을 잇는 차편을 묻고 있었다. 매표소 유리창에 여러 행선지가 적혀 있었고 나름 출발 시각도 깔끔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보텐행 역시 적혀 있었으나 출발 시각 오전 11:30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하루에 정말로 한편 뿐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직원의 입에선 정확한 시간이 나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승객을 모집하는 차장이 있었고 매점과 유료 화장실을 관리하는 여자 관리인이 있었으며 그 어느 때처럼 운전기사 몇 명이서 외국 여행객 주위를 기웃 거리며 본인 행선지와 무관하게 참견하고 있었다.

그날 매표소 직원에서부터 차장, 운전기사, 화장실 관리인 모두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꺼림칙한 낌새를 확실하게 정의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무앙싱에 며칠 다녀올지도 모르고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는지 국경 행 일반버스 유무만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럼 아침 11:30분에는 확실히 있는 건가?"


매표소 직원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늦은 오후라 아침나절에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 보다는 훨씬 활발하겠지?'


그는 이렇게 판단했다. 농키우에서 만난 스페인 부부가 루앙남타에서 묵을 만한 숙소를 추천해 줘서 그곳부터 들렸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값도 그랬지만 서양 여행자들 문화에서 가급적 벗어나고 싶었다. 현지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길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결함과 불편함에 다가가는 것을 의미했고 관광지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표준치에는 가까웠으나 공교롭게도 만족 도는 떨어지고 있었다.

식당이 우선 그랬다. 피자, 스파게티, 햄버거, 스테이크까지 평소와 다름없는 거의 대부분을 주문할 수 있었지만 대체 여기까지 와서 무엇을 맛보고 무엇을 여행하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이 나라를 여행하는 건지 아니면 서양 관광객의 입맛을 맞춘 그들 문화 속을 트래킹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일부러 찾아 나서고자 했다. 로컬 시장에 가면 맛도 있고 깊이도 있고 값도 저렴하다고 자부했다. 다만 숙소만큼은 청결도의 편차를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기준은 지켜주길 바랬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간 곳에 그의 기호를 만족시킬 만한 방갈로를 만날 수 있었다. 널찍한 정원에 프라이버시를 보장한 독채 건물과 알뜰하게 손질한 조경에 이르기까지 제법 규격과 스타일을 갖춘 방갈로였다. 깎고 또 깎은 가격 치고는 그래도 약간은 비쌌지만 대 만족이었다.

여행한 지 거의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사람처럼 사는 것 같았다. 우선 수건에서 향긋한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그동안 받아 든 수건은 말이 수건이지 담배 냄새에 찌들었거나 빨래가 덜 말라 심지어 걸레로 훔친 듯한 냄새로 범벅이었다. 산뜻한 린넨과 흐몽족의 수공예품, 세련된 가구와 탄탄한 매트리스. 게다가 타일로 마감한 깨끗한 욕실에는 샤워용품과 귀 후비개 등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현대인의 신변 도구들을 마주 대하니 긴장이 후루룩 가라 않는 느낌이었다. 손 타월과 중간 타월, 하다 못해 물 끓이는 주전자까지도 여행 중에 처음 들춰보고 있었다.

그가 여행 중에 느낀 큰 불편함은 자기 물건을 못쓰는 것이었는데 부족한 무언가가 채워지고 보니 안락함 너머에 다가오는 미약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공급이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할 것에 대한 염려를 또다시 앞세우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의 것을 누리지 못하고 미래에 다가올 결핍을 두려워하는 본인을 못마땅해했다.


'오늘 걱정은 오늘 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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