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by 아빠를 여행하다

_ 22.


방갈로는 여행자 거리에서 벗어나 현지인들이 사는 주택가에 둘러 쌓여 있었다. 차 소리도 없고 한적하고 조용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옆 집에 초상이 났다. 담벼락을 타고 건너오는 때 아닌 잔치(?) 소리 때문에 새벽부터 밤새도록 시끄러운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래도 영어로 모여서 떠드는 소리보다는 훨씬 낫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입식문화에 익숙한 서양 친구들은 복도 건 로비 건 현관이건 식당이건 눈만 마주치면 고개를 맞대고 떠들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정보를 나누는 그들의 소통 문화가 부럽기도 했지만 때로는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어 아예 크게 환영받지 못하느니 차라리 그들에게서 벗어나고도 싶었다. 따라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전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인들의 대화가 훨씬 낫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전히 담장 너머의 닭들은 모가지가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혼신을 다해 울어 재끼고 있었다.

그는 자전거를 빌려 소수 민족이 모여 사는 촌락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루앙남타는 원래 그런 거점 지역이기도 했다. 자전거 대여를 하면서 지도 한 장을 얻어 여기저기 갈 곳을 표시했다. 하지만 다니다 보니 그것이 의미 없음을 곧 눈치챘다.


"아빠! 그냥 타자~ 그냥 타다가 아무 대나 들리자~"


아들이 먼저 운을 띄웠다.


"그래 그게 좋겠다! 그냥 발 닿는 대로 달려보자~"


그는 마을 안쪽까지 깊숙이 기웃거리고 싶었다. 그러다 독특한 복장과 화려한 장신구를 만나면 그들 사진도 찍고 더불어 본인도 그런 배경에 둘러싸여 조금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보길 원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야 다 그랬다. 부족 마을은 여느 시골 마을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빨래하고 애 보고 바느질하고 그늘에서 쉬다가 밭에 다시 나가 일하는 무던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화려한 색깔의 실로 뜬 천에 은색 구슬과 동전을 주렁주렁 꾄 아낙네들의 옷차림과 매무새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옷걸이와 빨래터는 이미 상업화된 의류들이 국제화된 삶과 섞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시 문명과 구별된 패턴과 풍경에서 머물고 싶었던 기대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오히려 아이와 하나 되어 신나게 자전거 타며 노는 것이야 말로 삶의 목적에 부합하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이는 아마도 벌써부터 그래야 할 줄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낑낑 대고 자전거를 밀고 산길을 올라갔다 다시금 주르륵 타고 내려왔다 오르락내리락 거리길 반복했다. 이 마을 저 마을 평화로운 논길과 샛길을 가로 지르기도 했다. 태양이 주인이 된 그 시간, 대지는 톡톡히 주인님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아스라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맥과 널찍한 들판 길을 인간이 발명한 구름 쇠와 함께 둥글게 구르며 동네방네 떠돌고 있었다. 지금 가리키는 시간은 오직 둥근 태양이었으며 하늘도 온전히 태양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도 오로지 태양처럼 비추고 있었다. 그는 점차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염두에 둔 목표 하나를 버렸을 뿐인데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해지다니'


하지만 그가 버렸던 것은 목표가 아니라 관계였음을 이내 깨닫고 있었다. 여행을 아이 눈높이에 맞춘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아이에게 맞춘 여행이던가. 오히려 아이가 자기에게 맞춘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어른이 기대하는 목표치만 바꿔도 훨씬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아이를 학업 성적과 잠시만 분리해도 아이들은 너무나 행복해했다. 그들은 보다 순수하게 행복을 느끼고 있었고 행복 그 자체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성적에 대입하는 즉시 그들은 있는 그대로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풍족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재정적 그물망을 벗어난다면 또는 남보다 그럴싸한 지위나 명예가 있느냐의 비교의 틀만 걷어낼 수 있다면 오히려 보다 많은 것을 느끼며 누리고 살 수 있으리라 자부했다. 하지만 저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가까운 이 특히 아이와 동일시되는 상황에선 그도 원인제공자요 한 배를 탄 공범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왜 부모가 불안한지 무엇이 두려운지 사회 구조적 문제를 놔두고서 부모들 태도만 달달 볶는 것도 불편했다. 정작 소중한 인간의 가치와 삶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바뀌지 않으면서 이것을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로만 축소시키려는 군중심리 또한 불만스러웠다. 자본과 금전으로 서로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성숙한 어른들이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생각했다. 아이 이전에 저 자신이 먼저 바꿔야 했고 목표 이전에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지만 논리로는 그토록 재 무장을 해도 실전에선 늘 깨지고 더 큰 체제와 관습 앞에 압도당하는 본인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가장 비참하고 답답했다.


"저게 바나나 나무야"


아이는 자전거에서 내려 대롱대롱 매달린 바나나를 손에 붙잡으려 했다.


"저게 빠빠야고"

"구별되지? 바나나는 잎이 넓다래. 빠빠야는 줄기랑 키가 홀쭉하고"

"그러네?"


바나나가 길거리에 줄지어 있었다. 어떤 것은 주인이 있으니 손대지 말라고 적혀 있었고 또 어떤 것은 주인이 오길 기다리는 듯했다. 눈치껏 따 보라며 신호를 줬는데 그만 바나나 꺾은 가지에서 하얀 진액이 함께 쏟아져 내렸다. 아이 손이 범벅이 되었다. 아이는 뜻하지 않은 재난에 황당했다.


"아이 이게 뭐야. 다 젖었어! 으으으, 찐득거리는 것 좀 봐"


그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추억이라고 생각했다.


"다시는 내가 바나나를 쳐다 보나 봐라! 다시는 내가 바나나라고 이름조차 부르나 봐라!"


아이는 계속 부르짖었다.


"그래도 너 바나나 좋아하잖아?"

"그래도 싫어. 난 다시는 바나나 쳐다도 안 봐! 바나나라 절대로 이야기도 안 할 거야!"


그는 그러는 아이에게 달리는 내내 바나나 나무를 가리키며 저것 좀 보라며 바나나 좀 보라며 실컷 놀렸다.


"바나나~ 반하나~ 안 봐도 반하나?"

"아닌가? 빤한가? 그냥 빠한가? 빠 하아~나안~아? ㅎㅎㅎ"


그들은 스투파를 향해 완성도 높은 페달을 부지런히 달렸다. 높은 사원에 올라 일몰을 본다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계획이었다.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넘어 사원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나 허탈하게도 수리 중이었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사원 꼭대기가 무척 그럴싸하게 보였는데 지붕만 그랬을 뿐 본전 불당은 아니었다. 게다가 공사장 그물에 가려 제대로 된 형체 조차 보이지 않았다. 인부들의 툭탁툭탁 시끄러운 작업 소리와 뽀얀 먼지만 수북이 날릴 뿐이었다.


'이럴 거면 아예 오지도 안 왔을 걸...'


그는 이내 후회했다. 그래도 공중에서 맴돌던 두 발이 땅 위에 사뿐히 닿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몹시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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