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_ 0.
그는 아빠를 여행 중이다. 발로. 서투르게...
01.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마치 세상 이치를 전부다 깨달아 보려는 듯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길 위에서 인생의 해법이라도 찾겠다는 듯 지금 이곳에 대략 의미를 두고 있었다. 뭉게구름이 수면 위로 뒤엉켜 오르고 있었고 달 한 구석이 삐뚤어진 액자마냥 창공에 걸터앉아 있었다. 도도한 메콩강 물줄기를 또렷이 알아볼 수는 없어도 어슴푸레한 먼동의 개벽을 나룻배에서 조심스레 대면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는 왜 여기 오자고 했어?"
'......'
생각해 보니 그는 어제만 해도 싸이공 시내를 걷고 있었다. 좀비 떼로 쏟아지는 오토바이 행렬을 보며 그는 아들 손을 굳게 잡아야만 했다. 갈 길을 두고도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앞에 양미간을 일 그러 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길의 본질이 그러하듯 서툰 걸음이라도 내디뎌야만 했다. 능숙한 건 그들이었다. 다 이해한다는 듯 보행자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두어 걸음 내밀다 보니 그도 묘한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뒤죽박죽 혼돈스러워 보이지만 꽤 질서 정연한 리듬에 그도 슬슬 반응하기 시작했다. 규칙은 단순했다. 서툴거나 능란한 움직임을 서로 맞춰보면 되는 것이었다. 세상살이 하나를 몸에 익힌 것 같아 그는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이 정도면 현지 적응 반은 한 거다!"
그는 아직 아들의 물음에 또렷한 답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많고 많은 여행지 가운데 왜 이 곳 껀떠로 왔는지, 싸이공에 도착하자마자 왜 하룻밤조차 묵지 않고 메콩 강으로 왔는지, 이러는 의미가 무엇인지, 저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인도 차이나를 연결하는 젖줄이라고나 할까?"
"인구 2~3억 명가량이 이 곳 메콩 강을 따라 살고 있다는 거지. 중국 사람, 베트남 킨족, 캄보디아 크메르족, 라오족, 타이족, 그리고 그밖에 수많은 소수 민족들..."
"그런데 너 여기가 왜 인도차이나라고 불리게 됐는지 알아? 나도 처음엔 몰랐어. 인도와 중국 두 개의 거대한 문명 사이에 섞이고 충돌하는 지역이라 그렇게 불렀다는 거야."
"근데 나는, 이런 이름 들으면 썩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 너 만약에 우리나라를 니뽄 차이나라고 부르면 기분이 어떻겠어"...
"아무튼 이곳 사람들을 보면 주변국의 삶도 알 수 있을 거고 그러다 보면 좀 더 큰 세상도 이해하지 않을까?"
교육을 빌미 삼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흐릿했다. 내심 겸연쩍긴 마찬가지였다.
'왜 여기로 왔냐고?'
'한 번도 온 적이 없으니까. 안 봤으니까. 보고 싶어서.'
'아닌가?... 이런저런 의미를 찾고자... 아닌가?'
'... 내가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내가 그 이유를 과연 알까?'
'대체 얼마나 오래됐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모르는 이 별에서, 뭐가 뭔지 모르는 먼지에 둘러싸여 딱히 풀이해 내지도 못하는 물리 법칙을 따라, 그저 엄청나게 큰 돌들과 먼지처럼 죽을 때까지 섞여서 우주를 떠 도는데, 내가 내 인생의 모든 동선과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래, 설명한다 쳐. 내가 뜻한 대로 모든 일이 다 되던가?'
'내가 모르는 것조차 내가 정확히 모르는데 내가 무엇을 안다고 할까'
'그래, 만에 하나 내가 뭘 안다고 쳐'
'그건 내가 그런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는 사실 별 의미도 없었던 거 아닌가?'
'아닌가, 그래도 더 큰 의미는 따로 존재하나?'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서야 얻게 되는 깨달음 같은 거, 뭐 그런 거'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명확히 설명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늘 껄끄럽게 생각했다. 잘 지내오던 직장 상사가 등을 돌리고 그를 회사 밖으로 밀쳐낼 때도, 팔팔하던 처제가 불현듯 말기 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어제까지 농담을 뿌려대던 친구가 밤길에 사망했다는 소식에도, 곧잘 퍼 마시던 술조차 어느 날 입에 댈 수 없게 된 심경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 이유들을 적확히 설명해 내기 어려웠다. 나름 분석한다 해도 이내 불완전한 해석과 주관에 노출되고 말았다. 그때마다 그는 저가 잘 모르는 영역을 이어 줄 무언가를 찾고자 했다. 그 작업은 우주 전역에서 끌어와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연결고리에 허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아무리 그림 속을 들여다봐도 그림 그린 사람이 보이지 않듯 그림을 좀 더 이해하려면 그림 속에서 빠져나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맥락과 의도를 제대로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같은 그림 안에 머물 수 있는가'
'내가 떠도는 쳇바퀴를 똑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바라본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메콩 강은 뱃사공의 손놀림 안에서 여전히 출렁이며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