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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Feb 08. 2018

장거리 '하객 대행' 알바, 지역 맛집 탐방은 덤

여름 휴가 '비수기'가 끝났다

                                                                                                                                           

▲ 결혼식 이날 우리는 신랑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여름 휴가. 해당 기간에는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잘 없다. 예식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수기인 셈이다. 나도 지금 결혼식 축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두 달째 일정이 텅 비었다. 일정표를 보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어야만 했다. 15년 직장생활을 끝내고 독립을 한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비수기였다. 그런데도 한가한 시간을 제대로 즐길 줄 몰랐던 것 같다.


지금 햇수로 2년째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이다. 이 일을 한다고 하면, 말로만 듣던 '꿀 알바'를 진짜로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신기해하는 사람도 많다.


지난 3월에는 1년 동안 경험한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에 대한 에피소드를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송고했다. 놀랍게도 그 기사는 각종 포털사이트에 걸려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미국과 캐나다 언론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했다. 그런 일들은 나에게 있어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보다 더 신기한 경험이었다.


길게만 느껴졌던 비수기가 끝나고 지난 주말부터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로 결혼식 이벤트를 준비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주말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이제 진짜 비수기가 끝나는가 보다. 손가락만 빨면서 두 달을 보냈더니 일이 들어온다는 게 신나고 즐거웠다.


오랜만에 입은 정장, 바지가 터질 것 같았다


▲  "오랜만에 장롱 안에 있던 정장을 꺼냈다. 최근 놀고먹기만 했더니 몸에 살이 부쩍 올랐다. 바지가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장롱 안에 있던 정장을 꺼냈다. 최근 놀고먹기만 했더니 몸에 살이 부쩍 올랐다. 바지가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워낙 살이 금방 찌고 빠지는 체질이라 잠깐만 방심해도 이런 상태가 된다. 상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들어온 일거리에 신이나 주말 아침, 넥타이를 매면서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번에는 장거리 예식이다. 우리는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인데 가끔 이렇게 경남이나 경북지역까지 이동해야 하는 건수가 있기도 하다. 물론 멀리 다녀오면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급료도 부산 예식보다 높다. 


카페에 가입하고 첫 예식에 참석했을 때의 뻘쭘함과 낯선 사람들에 대한 어색함. 이런 것은 2년 차가 된 나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번 예식에 배정된 많은 인원들이 모두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가는 차 안에서 어찌나 많은 수다를 떨었는지 오랜 시간 지겹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날 우리가 가장 많이 토론을 벌였던 주제는 당연히 북한과의 '전쟁' 이슈였다. '오후 5시까지 대북방송을 멈추지 않으면 정말 북한이 도발할까?'라는 주제로 시작됐다. 우리의 토론은 예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됐다. 


돌아올 때의 시간은 오후 3시 전후였다. (도발 예정 시간이 오후 5시 이후였으므로) 앞으로 2시간 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욱 토론은 열기를 더해갔다. 아침에 만났던 장소에 도착해 헤어질 때는 "다음 예식까지 무사히 살아서 만나자"며 헤어졌다. 


맛집에 가니, 얼굴 못 보고 나온 어머니가 생각났다


▲ 고향보리밥 정감 넘치는 진주의 맛집인 고향보리밥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가면 보수를 받기 때문에 식사 제공은 안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대부분 고객이 식권을 준다. 자신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온 사람에게 밥도 주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원칙에 따라 식사 제공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부산 예식의 경우 식사 제공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어도 크게 부담이 없다. 하지만 장거리 예식은 다르다.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장거리 예식에 참석해달라고 의뢰를 한 고객들은 식사 제공을 해주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무조건 예식 뷔페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정도를 제공하는 편이다. 


그 사실을 몇 달 전 지방 예식을 참석했을 때 알았다. 그 날은 참석한 예식이 끝나고 예식장 뷔페가 아닌 일반 식당을 찾아가서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이 궁금해서 함께 간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예식장 뷔페는 비싸니까 따로 점심값을 챙겨주는 게 싸게 먹히는 것이다. 그날 우리가 먹은 점심은 6천원 짜리 백반 정식이었다. 


이번 예식에서도 예식 뷔페가 아닌 일반 식당 음식을 사 먹었다. 나는 이렇게 그 동네 맛집을 찾아가서 밥을 사먹는 게 더 좋다. 예식에 자주 참석하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뷔페 음식은 쉽게 질리기 때문이다. 이번에 밥을 먹은 식당은 조그만 보리밥집이었는데 엄지손가락이 절로 올라갈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식당 사장님은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이신 것 같았다. 나이가 70대 정도는 족히 돼 보였다. 장정들이 맛있게 보리밥을 먹는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계속 주방에서 나와 "뭘 더 줄까?" 하고 물으셨다. 찌개와 각종 나물을 넣고 슥슥 비벼 먹는 보리밥은 가히 꿀맛이었다. 찌개는 사장님이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것이라고 했다. 


맛집답게 벽면에는 다녀간 연예인들의 사인이 많이 붙어 있었다. 장윤정, 설운도, 정수라, 김흥국의 사인이 기억난다. 조그만 보리밥집에서 밥을 먹은 시간은 30분 정도였다. 그 시간 동안 사장님의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와 닿았다. 문득 아침에 얼굴 못 보고 나온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이렇게 지역 맛집을 찾아다닐 수 있는 것 또한 장거리 예식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오늘 지방 예식에 참석하고 귀가한 시간은 오후 4시 즈음이었다. 장거리 예식이라 왔다 갔다 하며 거의 하루를 다 보냈다. 하지만 우리가 축하해줄 때 활짝 웃던 부부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렇게 보낸 하루가 절대 아깝지 않았다. 신랑 신부 행진이 시작될 때 우리는 모두 기립해서 박수 쳐주었다. 그 모습에 중독된 나는 올 가을에도 나는 열심히 정장을 입고 예식장을 누빌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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