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단독]대기업 사원의 직장일기(32)
아침부터 너무 일찍 일어났더니 피로가 몰려온다. 오늘은 2015년 경영방침 설명회를 위해 서울에서 대표이사가 경남본부에 방문한다고 해서 몇일전부터 경남본부는 비상이었다. 나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산업기능요원을 통해 군 대체 복무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의 '소원수리'가 뭔지 사회에서도 충분히 경험했고 뭔지 알고 있다.
분명 몇해전 지역단위 별도 경영을 할 때 우리 회사는 너무 조직문화가 좋은 회사였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고 그로인해 내가 근무하던 김해 사무실은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어서 상패도 받곤 했다. 그런 상을 받은것에 대해 전 직원 모두가 공감하고 기뻐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이 커지면서 지역별 통폐합 관리운영과 더불어 서울의 본사가 커지게 되었고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지게 되었다. 분명 지역적 프렌차이즈 기반의 회사로써의 강점이 차별화였던 우리회사도 여느회사와 마찬가지로 지역밀착형 강점이 퇴색되고 중앙에서 집중 콘트롤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지역적 특성을 무시한채 지역조직별 단순비교를 통해 평가를 하기 시작했고 그 평가의 칼날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조직의 개성은 사라져갔다.
지역별 독립운영 당시엔 지역마다 '총괄'이라는 개념으로 대표가 별도로 있었다. 하나의 중소기업과 같은 체제로 움직였다. 그 덕분에 전 직원의 장단점을 대표가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빠른 의사결정과 강한 실행력을 앞세워 고성과 창출이 용이했기 때문에 조직내 부정과 비리는 있을수가 없었다. 그럴 시간에 한발짝이라도 더 뛰기 바빴다.
지금은 소위말해 공산당 문화가 조직내 자리를 잡았다. 회의시간은 조직장이나 팀장이 연설하는 시간으로 바뀌었고 밑에 있는 직원들은 침묵했다. 높은 사람이 우리 조직을 방문한다고 하면 사전에 질문까지 미리 조사해서 검열을 하고 질문을 받는 사람이 기분 좋을만한 질문만을 하게했다. 회사를 위해 시장경쟁에서 뒤쳐지는 상품의 단점 개선을 건의하면 그 상품을 개발한 해당부서에서는 자신들이 다칠까 싶어 권력을 이용해 그 건의가 맨 위까지 보고가 되지 않도록 했고 보고가 된다고 해도 각종 핑계와 논리를 만들어 건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보고가 되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더욱 조직 내에선 침묵의 시간이 늘어났고 '까라면 까!' 식의 군대문화만이 깊숙히 자리잡게 되었다.
아침마다 사무실에 달린 TV를 통해 나오는 그룹뉴스나 사내방송에서는 온갖 책에 나오는 좋은말은 다 갔다붙여서 멋진 인재상을 그려내고 있고 실제 조직에서 그런 인재가 있으면 '고집세고 말많고 삐뚤한 놈'으로 매도하기 바빴다. 사극에 보면 왕들이 눈가리고 귀닫고 정치하는것과 다를바 없었다.
그런 조직문화의 변화는 곧 실적부진이라는 결과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창립 12년만에 최초로 연말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되었고 매출이 계속적으로 증가함에도 영업이익은 지속 하락하는등의 경영악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분명 근본적인 문제는 나와 있음에도 각자 한자리 하는 분들의 '자리 지키기'를 위해서 오로지 단기성과만을 부르짖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오른쪽 주머니의 돈을 세탁해서 왼쪽 주머니로 넣으면서 가짜매출을 올리는데만 열을 올렸고 그렇게 무너지는 영업이익에 대한 대책은 구조조정이나 내부 허리띠 졸라매기를 통해 매꾸려고 했다.
최근 언론에서 대한민국 기업의 평균수명은 16년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는 올해 13년차다. 10년이 지나고 턴어라운드를 하락추세로 했다. 위기다. 항상 노키아와 같은 실패사례를 언급하면서도 우리가 노키아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7년이 넘도록 8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회사'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집단적 타성에 젖어 나만 살고보자 식의 마인드를 가진 우두머리들이 너무 많아졌다. 계층이 늘어나고 자리가 늘어날수록 더 많아졌다. 개개인에서 더 나아가 지역적 특성과 개성마저 무시해버린 회사. 그렇게 나의 비전과 회사의 비전은 틀어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