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만 가면 도보 60분
평온했다.
세상에 건물 반, 사람 반으로 가득한 풍경이 익숙하던 두 눈은 어느 다음날부터 거실 창 너머로 일렁이는 물결과 산을 보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살 집이다.
두 자릿수를 손으로 가렸다 뗐다 하면서 인구 천만과 십이만 차이를 미리 느껴 봐도 십이만은 분명히 큰 수였는데, 정작 와 보니 모두 어디에 사는지 이곳은 조금만 이동하면 길거리에 혼자 있을 수 있다. 모처럼 크게 숨을 쉬었다.
수도권 생활을 멈추고 연고 없는 지역에 온다고 했을 때 결혼 선배들은 다양한 의견을 주면서 우려했다. 혼자 어쩔 작정이냐고 뜯어말리는 경험자들도 있었다.
태연한 척하던 나란 당사자는 사실 지난 몇 달 동안 타지에서 가능한 온갖 변수들을 상상했다. 엄마, 아빠와 350km 떨어져 새 가정을 꾸리는 상상. 하루아침에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혼자가 되는 상상. 결혼과 함께 이동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불과 어젯밤 잠드는 순간에도 두려움은 큰 파도 모양을 하고 심장을 한 번씩 치고 지나갔다.
어학연수를 여러 해씩 다닌 어릴 때의 자아를 앞세워 무작정 떠났다. 곧 다시 만나자는 의미로 부모님과도 친구들과도 제대로 인사하지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파도 속에는 30대 기혼 여성이면서 이미 이직 이력 풍부한 인문계 출신이 공업 도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하는 기대도 숨어 있었다. 덕분에 부모님 집을 나서는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인생 2막은 이렇게 시작되어 도입부부터 쉽지 않았다.
구직 급여를 받으면서 이직에 박차를 가하려면 고용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센터는 집에서 도보 60분, 택시로 10분이었다. 서울일 때처럼 머리를 비우고 집 근처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 알아서 오는 열차를 타고 음악 들으면서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사는 구역은 택시가 잘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걷기가 취미라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면서 10분 걸을 때마다 택시 앱과 콜택시 전화를 번갈아가면서 이용했고 그렇게 한 시간을 꼬박 걸었다.
폭우가 내리던 날이었다. 옷에서 빗물이 떨어질 만큼 걸은 대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았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옷을 말리는 동안 집까지 가는 택시가 잡혔으니 기분 좋은 마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