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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오빠의 옷들이 우리 집으로 왔다

봄맞이 옷 쇼핑 아니고, 옷 물림

by 다독임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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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세상 다정했던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결혼하면 자매는 더없이 끈끈해지고 남매는 남이 되고 만다는데, 우리라고 다르랴. 서른 후반 느지막이 결혼한 오빠는 점차 남이 되어 갔다. 주말이나 명절 때 친정에서 재회할 때 빼고는 딱히 연락을 하거나 만날 일이 없는 사이. 그러오빠와 소통할 일은 가끔 옷을 물려받을 때뿐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189cm의 장신인 오빠는 국내에 맞는 옷이  없어서 해외 직구를 많이 이용하는데, 막상 받고 보면 사이즈 안 맞는 것이 더러 있다고 했다. 그런 옷들을 포함해 계절이 바뀔 때 작아지거나  입는 상태 좋은 옷과 신발들은 고스란히 매제인 내 남편에게 물림 되었다.

이번에는 겨울옷을 정리하며 한바탕 옷장을 털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김에 작아지고 안 입을 옷들을 정리한다면서 한 보따리 보낸 것이다.


브랜드보다 무신사 최저가 정렬로 상품을 고르는 남편과 달리 오빠는 브랜드 옷이 많다. 덕분에 남편은 새 옷은 아니어도 깨끗하고 좋은 옷들을 공짜로 입는 호사를 누렸다. 폴로, 빈폴, 마시모두띠, 라코스테 등 본인 돈으로 사지 않았을 브랜드 옷들. 언젠가는 스톤아일랜드 티를 줬길래 남편이 무척 신나 하며 여러 달 입고 다닌 적이 있다. 팔뚝에 떡하니 '나 브랜드요' 하는 로고가 붙은 그 맨투맨 말이다. 오빠한테 잘 입고 있다고 인사치레를 했더니만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아, 그건 짭인데. 별로 티 안 나지? 나머지는 다 정품이야.


그렇게 알뜰하게 물림 받던 오빠의 옷들은 이제 아빠만 해진 아들까지 입게 됐다. 이번엔 나이키 조던 후드 집업을 하나 건졌다. 이건 정품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한 무더기의 옷을 받고 보니 애들 어렸을 때가 떠오른다. 첫째인 아들은 동네 지인에게 좋은 옷들을 물림 받아 키웠는, 네댓 살 이후에는  아들이 더 빨리 커버려 더 이상 물려받지 못했다. 언젠가 한 번은 크록스 풍의 짝퉁 샌들만 신다가 마음먹고 비싼 정품을 사준 적이 있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세로 여름 끝물 즈음엔 작아져버려 속이 쓰렸던 기억이 난다.


둘째는 딸이었으니 사고 싶은 예쁜 옷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들었다 놨다만 했을 뿐 늘 실용성 위주의 가성비 좋은 옷들만 사곤 했다. 같은 돈이라면 가끔 입을 예쁜 치마 한벌보다 매일 입는 편안한 바지 두 벌을 집는 식이랄까. 이것저것 다 담지 못했던 당시 그 허기진 마음은, 훗날 경제적 여유를 꿈꾸며 일하고픈 나의 구직 욕구의 도화선이 됐다.


아이들 옷이야 물림 받아 키운다 쳐도, 나이 마흔 넘어서도 물림 받는 내 남편은 어떤가. 쇼핑몰에 가도 옷걸이에 번듯이 걸려 있는 옷보다 매대에 누워있는 행사 제품만 고르는 남편의 모습이 가끔은 짠하다. 속으로 애잔함을 느끼는 나와 달리, 남편이 느끼는 쇼핑의 만족은 최저가를 찾는 데에서 온다. 옷이 걸려 있던 누워있던, 본인이 사려고 했던 옷을 가성비 있게 사면 그저 족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오빠옷 중 입을만한 것을 발견하면 눈빛이 반짝인다.


나라고 다를까. 아들이 입다 작아진 시커먼 트레이닝 바지와 맨투맨 티셔츠는 내게 물림 된다. 아들의 손때가 묻은 옷들은 품도 넉넉하고 허리는 고무밴딩으로 세상 편한 동네 유니폼이. 마음이야 백화점 마네킹에 가있지만 이제는 몸에 예쁘게 맞는 옷이 많지 않은 비애를 맛본 뒤론 쇼핑 욕구도 점점 하강 상태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 내 대물림으로 의복비를 아끼며 나름의 기쁨과 행복을 발견한다. 완전 새것인 오빠의 옷을 보면 사놓고 입지도 않는다고 흉을 보다가도, 남편과 아들이 입으면 웬 떡인가 싶어 흐뭇하다. 손때 묻은 아들의 예전 옷을 입으며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

 아이는 다행히 지금도 까탈스럽게 옷을 고르거나 철없이 브랜드를 따지지 않는다. 패션 감각은 없지만 돈으로도 못 사는 훤칠한 피지컬을 갖추었으니 '나중에 본인들이 좋은 옷 사 입겠지' 하는 마음으로 키운다.


그나저나 다가오는 봄을 맞아 산뜻한 새 옷을 사고 싶은데, 지금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은 가격보다 사이즈다. 이리저리 붙은 군살로 옷태가 나지 않으니, 일단 탄탄하고 건강한 몸으로 가꾸는 먼저임을 닫는다. 또한 안 입고 묵은 옷들을 비우고 정리를 한바탕 한 다음에, 그리고 기분 좋게 새 봄옷을 한벌 사 입든 말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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