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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 졸업식을 기다리며

외로운 졸업식은 이젠 안녕

by 다독임 Feb 21. 2025

새 학년을 목전에 두니 이알리미에서 연일 소식이 올라온다. 오늘의 알림은 2025학년도 학사일정. 매년 학사일정이 올라올 때마다 가장 먼저 방학과 자율휴교일을 찾기 바빴지만, 올해는 졸업식 날짜를 가장 먼저 찾게 됐다. 이번에 중3과 초6이 되는 두 아이의 졸업식 날짜가 혹여라도 겹칠까 염려되어서다. 다행히 날짜가 달라서 조로 흩어지지 않고 완전체 가족으로 졸업식에 참여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고 신난 초6 딸아이를 보며, 이 아이의 초등 졸업식은 얼마나 소란스러울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엄마가 되어서 이제까지 경험한 졸업식은 총 세 번이다. 첫째는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둘째는 어린이집. 첫째의 어린이집 졸업식은 부모가 되고 처음 맞이하는 졸업이어서인지 출산 이후 역대급으로 뭉클하고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울며 불며 등원하던 첫날, 뽀얀 얼굴에 움푹한 손톱자국을 남겨온 날, 서툴지만 감동의 무대였던 학예 발표회날, 그렇게 울고 웃던 많은 날들이 떠올라서인가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려댔다. 학사모와 졸업 가운을 입고 올망졸망하게 치른 그날의 졸업식에서 아이는 반짝반짝 빛나고 예뻤다. 둘째의 어린이집 졸업식은 코로나로 인해 간소화되어 영상과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역시나 대견하고 뭉클한 마음은 다를 바 없었다.


6년 후,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맞이했다. 팬데믹이 끝나고 오랜만에 열린 졸업식인 만큼 매우 길고 성대한 졸업식이었다. 초등 졸업, 감격스럽고 기쁜 순간이건만 그날을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마음이 시리고 서글프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저마다 친구를 찾아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기 바빴지만 아들은 가족사진만 찍고 어서 나가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미 다 흩어진 아이들 틈에서 아들은 굳이 친구들을 찾지 않았고, 나가면서 교문 앞에서 만난 다른 반 친구와 마지막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졸업식은 그렇게 끝났다.


아들은 초등생활 내내 모범생 아웃사이더였다. 매끈한 사교성이나 유머보다는 규칙을 잘 지키고 매사에 진중하다 보니, 친구에게 눈치 없이 바른 소리와 잔소리를 일삼는 캐릭터. 그러다 보니 친구가 많지 않았고 간혹 미움을 사는 경우도 있어 엄마 입장에서 늘 걱정스러웠다. 당시 나는 아이의 성향에 맞춰 고민을 나누기보다는 아이의 고지식한 행동을 문제 삼아 지적을 하는 모자란 엄마였다. 마지막 6학년 때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는데 눈치 없는 엄마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날마다 질문을 해댔다. 이런 말들이 학교 생활로 힘든 아이에게 절대 해서는 안될 말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때로 돌아가서 입을 확 꿰매어버리고 싶다.)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

-쉬는 시간에 뭐 했어?

-요즘은 어떤 친구랑 친해?

 

2학기가 되면서 아이는 매일 문제집을 챙겨갔다. 쉬는 시간에 할 게 없으니 그냥 공부나 하겠다는 거다. 얼씨구나 예비중학생 엄마는 바지런히 문제집을 챙겨주기에만 바빴다. 당시 아들은 무리 지어 따돌리는 남자애들 틈에서 많이 외로웠던 거다.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 뭐라도 하는 척, 몰두하는 척할 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나마 있던 친구는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 A. 청각 장애가 있어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친구였는데, 시끄러운 교실에서 주로 노트에 끄적이며 필담을 나누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아들은 그렇게 6학년을 마쳤다.


대충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들은 별로 문제 삼거나 불편한 기색이 없어했고 그냥 담담히 이겨낸 것 같다. 물론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은 몇 번 했어도 이 정도의 상황이었던 것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그아이의 상황과 마음을 몰라준 것은 지금도 마음 아픈 응어리여서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남편의 말은, 감정적으로 자책하기만 하는 나와 달랐다.

- 다 견딜만하니까 제 힘으로 이겨냈을 거야. 정말 힘들었으면 우리한테 말했겠지. 그러면서 꿀민이도 경험하고 느끼고 자라는 거야. 언제까지 당신이 다 해결해 주고 막아줄 수는 없잖아.


만약 당시 알았더라도 좋은 해결책을 찾진 못했을 것 같다. 미성숙한 엄마여서 속상하고 힘든 아이보다 내가 더 속상해하고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들의 교우관계에 대해 온전히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다. 무리에 끼기보다는 혼자가 편한 아이, 마음이 맞고 대화가 통하는 한 명의 친구 충분한 아이, 이러한 아이의 성향과 태도를 받아들이니 많이 편해졌다. 모난 돌 같았던 아들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매끈히 다듬어져 가는 중이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여자친구까지 만나가며 우당탕탕 자라고 있다.


2026년 1월, 둘째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2026년 2월, 첫째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올해 학사 일정표를 보니 아직 일 년이나 남은 이 날들이 벌써 손꼽아 기다려진다. 빛나는 졸업장을 들고 새로운 출발점에 설 내년의 졸업식은, 누구보다도 아이가 가장 눈부시게 행복한 날이길 바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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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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