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과 대답 둘 다 친절해지기
한 개그맨이 동료에게 심쿵했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술자리에서 분명 나를 보면서 얘기한 게 아닌데 내가 휴지를 찾자 눈과 입은 동료를 향해 있으면서 팔로 저 멀리 있는 휴지를 집어 나에게 줬다는 것이다.
이것이 플러팅이냐? 그냥 흰자위로도 사람을 볼 수 있는 친절 레이더가 뻗어있는 사람인 것이냐?라는 질문을 스스로 갖게 했다.
사실 이건 친절한 소통을 위한 어그로에 불과하니 정답은 스스로 내려보시길!
*사실 그냥 어그로는 아니다. 상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접 얘기하지 않아도 미리 파악하고 제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소통 기술이라는 것!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너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궁금한 건 ’당연히‘ 너도 궁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와 내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만 깨버려도 우린 한층 더 성숙한 소통을 이룰 수 있다.
떡볶이를 먹는 상대방이 떡볶이 한 입을 베어 물고 입술 가에 빨간 양념을 묻힌 채 가오나시처럼 어-어- 거리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댄다면? 더불어 손까지 휘적휘적 거린다면?
이 사람은 휴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양념이 떨어져 입고 있는 옷에 묻지 않게 하려는 의지도 볼 수 있다.
위의 경우는 쉽다. 내 주변에 휴지가 있을 경우 한 장 뽑아 줄 수 있다. 더불어 물 한잔을 채워주는 센스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
회사에선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하기 위해 휴지를 뽑아주는 것 대신 실천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질문도 대답도, 당연히 더 친절해질 수 있다.
불친절한 질문은 회사에서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칼퇴를 위한 직장인의 가장 소중하면서 저평가되어 있는, 아무나 뺏어다 쓸 수 있는 ‘시간’이다.
불친절한 질문은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을 빼앗는다.
그리고 참 슬프게도 보통 상급자가 그러한 질문을 한다.
*나쁜 질문: ㅇㅇ 관련문서 어디 있나요?
**나쁜 이유: 위 문서가 왜 필요한지, 관련 문서라 함은 어디까지 관련된 어떤 분야의 문서를 말하는 것인지 전혀 모름.
***예상 시나리오: 어떤 문서 말씀이십니까? 혹시 이 기획 문서 말씀이십니까? (보통 기획 문서를 찾으니, 기획 문서를 말하는 것인가? 하고 어쩔 수 없이 시간 내서 찾은 다음 이 꽉 깨물고 물어봄) > 아 아니. 계약문서 말한 건데. > 아 > 아> … 잠시만요.
이 세상엔 질문하면서도 내 마음을 잘 모르고 누군가 대답해 주면
“아 맞다. 사실 내가 원한 건 계약 문서였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왕이면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주위를 살펴보는 게 나에게도 이득이듯, 앞뒤 맥락 없는 질문이 날아왔어도뭔갈 행동하기 전 맥락을 묻는 것을 추천한다.
*좋은 질문: a 프로젝트의 계약을 진행한 것에 대한 기록 문서가 필요합니다. 계약 일시와 만료일에 대한 걸 확인해야 하는데 문서화된 곳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나요? 담당자가 누구였나요?
**좋은 이유: 위 질문을 받으면 받은 사람은 상대가 필요한 정보를 캐치할 수 있어 계약 관련 히스토리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
답변 시점에서 확인해 보자.
위 질문을 받는 나는 관련 건을 진행하지 않아서 모른다는 가정 하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할 수 있다.
1. 모릅니다.
2. 없습니다.
*모르는데 왜 없다고 할까? 모른다는 말을 병적으로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아서 모를 수도,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그 당시 머저리 같은 생각으로 단 하나도 기록해두지 않아서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면 제발 위 두 단어로 대답하는 참사는 일으키지 말기로 하자.
좋은 답변은 다음과 같이할 수 있다.
- 아쉽게도 정말 문서화되어있는 게 없을 때
현재 문서화되어있는 정보는 없습니다. 관련된 담당자는 현재 aaa 씨입니다. 필요한 내용을 말씀해 주시면 확인하여 전달하겠습니다.
- 내가 관련된 내용을 모를 때
프로젝트 진행 시 참여했던 담당자가 제가 아니라서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습니다. 담당자를 확인하여 이 내용을 전달해 두겠습니다. 혹시 제가 담당자에게 추가로 전달해야 할 내용이 있을까요?
여기서 포인트는 ‘내가 모름에도, 내가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확인해서 전달해 주겠다 ‘ 와 ‘내가 왜 모르고, 그 문서가 왜 없는지를 함께 설명‘ 해주는 것이다. 히스토리와 맥락을 상대가 묻기 전에 미리 생각해서 함께 전달하는 것.
상대방이 당신에게 물어본 이유는 ‘당신이 담당자라고 착각했거나, 그냥 뭔가 모를 때 당신이 잘 대답해 준 기억이 있어서 믿음직스럽거나, 당신 연차가 오래되었거나’ 일 수 있다.
어쨌든 뭔가 물어본다는 건 신뢰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 나는 멋진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싶다. 사람은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기면 나에게 친절했던 사람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 신뢰감을 이어가기 위해선 나에게 굳이 물어봤을 이유를 캐치해서 저렇게 대답하면 물어본 상대방이 다시 제 주인을 찾아 직접 움직일 수도 있고, 당신에게 좀 더 신뢰감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제발 나한테 좀 묻지 마!! 난 모른다고!! 뭘 물어봐도 친절하게 대답해 줄 의지도 없어!! 하는 상태면 모릅니다/없습니다의 대답으로 일관하라! 아마 당신을 찾게 되는 일은 좀 더 줄어들게 되어 편하게 고립되기 딱 좋다.
이 부분이 연습이 되면 좋다.
[요청할 때]
내가 요청하고자 하는 이유 + 요청 사항
[대답할 때]
대답에 대한 답변 + 요청할 때 숨어있던 의도 파악해서 함께 추가 답변 + 혹시 원하면 내가 서포트해줄게~ 하는 친절한 한 두 마디 덧붙이면 best.
[질문 편]
[불친절] a프로젝트 기획안 담당자 누구였나요?
[친절] 기획안에서 서비스 설명 문구 사실관계 파악을 해야 하는데 기획안 담당자 누구였나요?
- 기획안 담당자는 여럿일 수 있다. 서비스 설명 문구를 담당했을 사람을 연결해 줄 수 있게 맥락을 같이 공유해 주면 좋은 질문!
[무례] 여기서 이 문구 왜 이렇게 했나요?
[친절] 이 문구가 광고 정책에서 위배되지 않는지 확인이 필요한데 이 문구가 정책위반 가능성은 없나요?
- 왜 이렇게 했나요? 같은 질문은 특히 왜 이딴 식으로 했냐? 는 질문으로 대번에 받아들일 수 있다. 묻는 의도를 전달하면 이 문구를 광고정책 위반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상호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비수꽂기] 이 디자인 색 좀만 더 다르게 해 보면 어떤가요?
[친절] 배경색과 텍스트의 대비가 적어서 노안인 사람일 경우 잘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요. 가독성 부분에서 수정 가능한 여지가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 디자인의 경우 수정 요청 시 조금 더 서로 친절을 베풀 필요가 있다. 디자인이란 답이 없고 언뜻 보기엔 “요거 쪼끔 바꾸면 되겠구먼 뭘” 하고 지나가는 할아버지도 참견할 만큼 누구나 얘기할 수 있다는 의식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디자인만큼은 조금 더 의도와 맥락을 함께 공유하자. 함께 의논하는 디자이너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지 않도록.
[대답 편]
대답의 경우 질문에 따라 변동성이 너무 커서 정확한 가이드를 주긴 어렵지만 이왕이면 내가 이렇게 대답하는이유를 함께 제공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더불어 나에게 물어본 의도를 캐치해서 함께 도와주면 더 좋고!
[불친절] 잘 모릅니다
[친절] 제가 주관한 영역이 아니라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담당자를 찾아서 확인해 보고 전달드리겠습니다! 추가로 함께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을까요?
[시비걸기] 안됩니다
[친절] 이러한 이유로 우려되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애매한 상황을 차라리 정리해서 넘겨드릴게요.
[용감] 싫습니다
[친절] 사실 이건 나도 싫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해본 사람? 멋지다고 생각함. 그런데 이왕이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더 이상 병행이 어렵습니다. 업무 조정이 가능할까요? 정도로 길게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데 덧붙이느라 고민하는게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무리에서 편한 소통 대상일 가능성은 적다. 물론 더 친절해지는건 필수도 아니나, 이왕이면 같이 미우나 고우나 오랜 시간을 봐야하는 회사에서 우리 ‘굳이’ 친절해보자고 얘길 해보는 것이니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한번 친절해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