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공개수업 그리고 학부모 총회

정식으로 아이의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날

by 대치동 비둘기

학교 담벼락은 낮아졌다지만,

요즘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학생과 교직원이 아니면 예약없이 함부로 출입하기가 힘들다.

만약 상담이 예약되어 있거나,

아이의 방과후에 들어가려고 하더라도

반드시 보안관실에서 방문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그런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초등학교에

공식적으로 출입을 허가받는 날이 있다.



바로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가 있는 날



물론 이 공개수업에는

아이의 소속 학급의 공개수업과 더불어

매 분기 방과후 선택형 공개수업도 있다.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거나

새로운 학년에 시작된 다음,

가장 설레는 큰 이벤트 중 하나이다.



두 행사를 하루에 모두 하는 곳도 있고,

다른 날 각각 하는 곳도 있다.

은근히 신경쓰이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실은 학부모만큼 교사도 굉장히 부담스럽고

다른 날보다 더욱 신경 쓰는 날이다.






아이들 역시 긴장하는 날이기도 한데

아침부터 부모님이 오시는지가 최대 관심사이고

자신의 발표 차례가 언제일지

잘 할 수 있을지

실수를 하진 않을지 무척이나 긴장한다.



발표를 무리없이 너무나 잘하던 아이들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안들거나

갑자기 개미처럼 작은 목소리를 내서

담임선생님의 애간장을 태운다.



게다가 장난꾸러기들은

뒤에 부모님이 오셨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해

의자에 엉덩이만 살짝 걸터있을 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이기도 한다.



간혹 발표 자체를 거절하거나

자신의 차례가 오면 교실 어딘가로 숨어버리기도 하는데

여러가지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맞닥뜨린다면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모두 표정관리하는라 애쓰지만

실은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학급의 아이들,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

도합 60여명이 넘는 사람이 빼곡히 들어찬 교실에서

모두 맡은 역할을 40분 수업시간동안 성공리에 마쳐야만 한다.



교사는 관람객이 가득 나만 바라보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수업을 이끌어나가는 연기력이 필요하다.

혹여나 아이들의 발표를 시키다가 누락되는 아이들은 없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면 피드백을 주며 더 크게

한번 더 내용을 정리해 말해줘야할 아이는 없는지,

주어진 40분의 수업 시간 안에 모두 끝낼 수 있는지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정말이지 심장이 쿵쿵 뛰고

선생님 역시도 무척이나 긴장된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되지만.



자녀와 어딘가 똑 닮은 학부모라는 자리는

교실 벽에 일렬종대로 수업 중에 소음 없이 가만히 서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투명 벽이 있는 것처럼

지척에 아이가 앉아있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꽤나 애틋하고 묘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꾸민 듯 꾸미지 않는 그야말로 꾸안꾸룩의

단정한 옷차림이면서도 개성을 어느정도 드러내며

어디에도 꿀리지 않을 마인드를 셋팅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리한다.



아침부터 셋팅한 것으로 예상되는 컬,

투명하고 맑지만 커버가 되는 피부 표현,

뒤섞인 다양한 화장품과 향소의 향들은

저마다의 미를 뽐내며 보이지 않는 미의 향연을 펼치기도 한다.



게다가 다들 키도 크고 아름답다보니

모델들이 서있는 듯한 교실 뒷편과 마주하여

교실 앞에 교사의 자리에 홀로 우뚝 서있을 때면

괜히 자꾸 뒷편의 아우라에 눌리는 듯한 압도감이 느껴진다.






정말이지 피는 속일 수 없고,

우월한 유전자는 타고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데

키, 외모, 체형 등 외적으로 풍기는 많은 것들이

감출 수 없이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은 정말 분위기에 압도되는 경우가 있다.



모델핏에 꾸안꾸지만 세련된 느낌의 옷들을

걸치고 시크하게 서있는 모습에

아마도 예쁘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사실상 학부모님들 중에는

평균적인 키가 정말로 큰 분들과

얼굴이 자연스럽게 예쁜 분들이 많았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옷의 브랜드나 핏이

마치 백화점 쇼윈도의 마네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해서

정말이지 패션쇼를 구경하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모두들 색채는 무채색에 가까웠지만.






공개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어디론가 하교한 뒤,

이어지는 학부모 총회에서

담임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려

자그마한 아이들 책상에 앉아

불편할텐데도 한마디도 빠짐없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모자람없이 다 갖춘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또 한번 배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담임선생님도 긴장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내뱉을 때가 있는데, 그것마저 모두 기억해버릴까봐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타인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주의깊게 듣고

경청하는 세련된 부모님들 앞에 선 그 떨림은

패션쇼에 오르는 모델들의 당당함의 이면에

숨기고 있는 그들의 터질듯한 긴장감과 닮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이가 학교에 입학 한 후,

나는 교실 칠판 앞에 서서 모두를 위해 수업을 하는 대신

40분간 서서 내 아이와 담임선생님 그리고 반 아이들의 수업을

지켜보는 위치에 처음으로 서있게 되었다.



내 아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닿지 말아야할 적당한 거리에서 수업을 보고

자그마한 책상에 앉아 아이의 담임 선생님 이야기를 경청하여

듣고 있자니 정말이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교사로서 수업하는 것도 아닌데

어찌나 긴장되고 두근거리던지

아이의 공개수업 시간에 도착하기 전

밥맛도 없고 대충 식사를 마치고서

어떻게 화장하고 꾸며야하는지 고민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물 흐르듯 흘려보냈다.

(그래서 꾸안꾸가 아니라 안꾸가 되었다)






선생님인 것을 티내고 싶지 않았지만

철저한 직업정신 때문인지 꽤나 움찔한 순간들이 많았다.



공개 수업 전 학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의 단점만 보지말고, 잘하는 점을 찾는 시간이 되시라'

안내했던 나였지만, 막상 교실 뒤에서 보자니

자꾸만 책상 정리 상태, 발표 태도, 목소리 크기 등

아이가 잘하고 있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심지어 직업병인지,

내가 담임선생님도 아닌데

딴짓하고 엉뚱한 반응을 보이면

하지 말라고 지적하고 싶은

오지랖이 울컥 올라와 참아내야 했고,

분명히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하지 말아달라고

안내가 나왔음에도 거의 40분 내내

핸드폰으로 자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느라

바쁜 학부모에게 그만 찍으시라고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느라 힘들었다.




어찌됐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솔직히 말하면 유체이탈해서 나를 보는 느낌으로) 교실 뒤에서 공개수업을 보는 기분은 세상 처음 겪는 특별한 기분이었다.



우아하고 세련된 학부모들의 겉모습 속에

타들어가는 심지처럼

혹시나 우리 아이가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공개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선생님 말씀은 잘 듣는지

수업태도는 훌륭한지 지켜보느라

막상 교실 자체나 선생님을 바라본 기억이 없다는 것도

새로이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무엇이든 겪어봐야만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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