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이든 어디서든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갈망하고 욕망하고 살아간다.
살아가며 주변을 살펴보면,
누군가와의 비교를 하며
때로는 발전하고
때로는 좌절한다.
남과의 비교가 갖는 양면성
'비교'의 사전적 정의는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따위를 고찰하는 일이다.
삶에서의 비교는
정성적인 것보다 정량적인 것에 더 치중하는데
돈, 집, 성적, 성과 등 수치로 눈에 보이는 것일수록
더 쉽고 더 빨리 비교가 되어 우열을 가리고
무엇이 더 나은것인가, 누가 더 나은가,
많은 질문에 노출된다.
게다가
나도 모르는 순간에
내가 사는 곳의 등급이 매겨진 지도를 보게 되거나,
아이의 성적이 전체 학생들 중에 몇 퍼센트인지,
오늘 수업에서는 평균보다 얼마나 잘 했는지,
아이의 키나 몸무게는 평균에 비해 얼마나 상위권인지,
여러 비교와 우열을 따지는 정보가
원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유입된다.
언젠가 교육학을 공부하다가
한 삽화를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제목이 <교실 속의 장면>이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동물들의 '개성'을 억누르는 장면이었다.
예를 들면,
그 교실에서는 오직 '달리기'만 평가를 하는데
사실 여러 동물들 중
달리기를 잘하는 동물만 계속 A를 받을 뿐,
수영을 잘하거나 나무타기를 잘하는
그러니까 평가하지 않는 영역을 잘하는 동물들은
B, C, D 등의 성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현실을 꼬집었는데
오직 인지적인 부분으로 특정 영역만을 시험보는
현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나도 그런 평가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며 정말이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필기시험 이외에
다른 것으로 평가 받은 적도
인정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된 지금도,
누군가를 평가하는 선생님이 된 지금도,
교실의 아이들을 평가할 때
정해진 성취기준에 맞춰
서로 다른 재능을 가졌음을 고려하지 않고
편협하고 단편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속단하고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고 불편하다.
어른도 아이도
나이가 들고 성장하며
평가받는 위치에 종종 오른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내 아이가 잘하는 강점을 찾아내주자고 마음먹지만,
다른 아이들이 술술 막힘없이 풀어나가는
수학 문제들의 수준과
원어민급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영어 대화들의 수준에
해맑은 우리 아이가 행복해보이다가도
문득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학군지에서
그것도 대치동 한 복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직장 선배들에게 자주 듣는 조언 중 하나는
'가르치는 아이들과 자녀를 비교하지 말라'는 것.
만 3세부터 시작한 영어 실력 뿐만 아니라,
2~3개 학년은 훌쩍 뛰어넘는 수학 실력하며
벌써 한 편의 논설문을 주제만 듣고
원고지(심지어 대학 논술 때 썼던 1,000자 원고지)에 술술 써내려가며
첨삭을 받는다는 반 아이들의 수준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퇴근하고 나서 우리 집에 있는 내 아이와 비교해
(그런 교육을 안했을 경우)
괜히 스트레스 받고 주눅들지 말라는 것이
바로 그 조언의 이유였다.
그렇게 비교하자면 끝이 없이 이어져,
출발선부터 남다른 지원을 받으며
모자람 없이 교육받고
많은 것을 누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보잘 것 없고
너무 자그마한 것들이 아닌가
미안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니는 '학원'과 '반' 배정 여부가
대치동 근방의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계급처럼 부여되어 있고
자신감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학부모의 프라이드까지 이어진다.
사실 이 동네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며 비교를 시작하면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결국 아이를 남과 비교하는 행동은
엄마인 나 자신으로 향한다.
다른 엄마와의 비교가 되고
물질적인 이유든 정서적인 이유든
엄마가 남보다 부족하게 지원하고
덜 서포트 했기 때문이라는
비관적인 결론으로 흘러가는 순간,
세상 가장 초라하고 불쌍한 사람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동네 카페 어딘가에
멍 때리며 희한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덩그라니 앉아있는 것이다.
결국 '비교'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눈에 보이는 대상이면
비교하다가 질투라도 날 텐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대상이면
겁나고 불안하고 초조한데
잘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허공에 헛손질과 헛발질을 선보이며,
유령과 싸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정말이지
비교를 통해 내가 더 성장할 목적이 아니라면,
남과 비교하면서 초라해지려는 그 순간
내 마음의 돛대를 꽉 잡고
앞만 봐야한다.
내 아이가
누군가는 과도하다 생각하는 손길이라 할지라도,
부모의 물심양면 지원을 받고
다양한 교육을 받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감사하다가도
결국에는
그 아이들과 같은 경쟁선상에 서야한다는 사실에
아이가 고생하고 힘들까봐 불현듯 불안감이 밀려오곤 하는 것도
바로 그 비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실은,
보이지 않는 경쟁상대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지
궁금해지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지만,
신기루같이 보이지 않는 남들을 생각하느라
인생을 허비하려는 내 자신을
꾸욱 다잡고
잘살고 행복하다고 백만번쯤 되새기고
끄덕이고 불안한 마음을 떨쳐낸다.
아이와 했던 사소한 약속과
나아가기로 했던 한 걸음만큼만
그러니까 우리의 속도에 맞춰 남과 비교하지말고
즐겁게 지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왜냐하면
내 아이와 남과의 비교로 인한 결말을
나는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치동이든 어디서든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남과 너무 비교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눈치 챘겠지만,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