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신비주의 컨셉

안 물어봐서 이야기안한 것 뿐이지만

by 대치동 비둘기

초등교사이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다 보니

종종 나의 직업이나 생각들을 숨겨야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누군가를 속이려는 의도는 명백히 아니지만,

때로는 입이 근질근질하거나

속내를 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더라도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을 때가 종종 있다.




나의 직업을 만나는 상대방에게

말하며 자랑하고 싶어 하던 친정엄마에게까지도

내가 옆에 있을 때는 제발 말하지 말아달라고

입단속을 할 때가 있을만큼,

내 자신을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한티역 인근

교사도 사람이고

직장인 중 하나일 뿐이지만,

완벽하지 않고 흠잡힐 일이 생기면

직업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릴까봐,

혹여나 나의 행동이

교사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만들어낼까봐,

의도치 않은 신비주의 컨셉을 이어나가는 편이다.




집에서는 나의 아이를 키우며 가르치고

직장에서는 남의 아이를 가르치는 직업을 하다보니

괜시리 그 가운데 공과 사를 구분하는 선을

넘어가고 싶지 않고,

나의 사적공간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더욱이 내 아이에 대한 시선이

부모가 선생님이라는 정보가 더해져

더 주목을 받거나 평가받는 위치에 올라서게 될까봐

일상의 범주는 늘 조심스럽고 조심스럽다.





줄타기 장면

아이가 새로운 학년이 되거나

새로운 기관에 가게 되면

주로 2~3개월 정도 나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편이다.

우연히 누군가와 마주치거나

(길을 가다 가르치는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대면)

단서가 흘러들어가

'초등교사'라는 직업이 밝혀지는 순간은

이상하게도 서늘하고 미묘하고 난감하다.



그 순간 느껴지는 상대방의 시선이

마치 나와 내 아이를 스캔하고 평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나의 언행에서 혹시 부적절한 것이 있었는지

급히 되감기하듯 되돌려보게 되기 때문이다.





동네 아파트



직장 다니세요?


보통 평균적으로

아이 친구 엄마들은

나의 직업을 추리하기 어려워했다.



이른 시간에 어디인지 바쁘게 가고

어떤 때는 캐쥬얼

(아마도 운동장 수업이 있었던 날)하다가

어떤 때는 정장

(아마도 공식적인 행사가 있었던 날)스러운

요상한 패션센스와 함께

화장도 어떤 날은 진하다가 어떤날은 연하다가

일관성이 없었던 모양이다.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대낮'에 하교시키고 학원 보내는 광경인데

직장인치고 여유로워 보여

대학원생이거나 개인사업하는 것으로 짐작하던 분들도 있었다.



더욱이 아이의 학교와

나의 근무 학교가 도보로 15분 남짓 거리이다보니

길가에서도 놀이터에서도 백화점에서도 마트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의 정체를 아는 누군가(우리반 아이, 내가 가르쳤던 아이, 학부모 등)를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본능적으로 내가 먼저 발견해

다른 길을 선택하거나 몸을 숨긴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는 나도 가끔 의문스러움)

연예인병도 아니고

대인기피증도 아니고

죄지은 것도 아닌데

나는 기어코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편이다.



한티역 맥도날드 앞

자꾸만 나의 사적 공간에 원하지 않는 시간에

공적 인물들이 나타나는 것이

피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길 한복판에서

나의 제자나 학부모를 만나면

바람핀 것도 아닌데 아이까지 숨기고 싶어지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마음이 울컥 올라오곤 한다.





양재천 산책길


초등교사는 학교장의 허가를 받으면,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에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있다



초등학교는 의무 교육이라

사는 곳에 따라 배정 학교가 정해져있다.

그 외의 학교를 가기 위해

주소를 이전하면 위장 전입이 되고,

때에 맞추지 않고 이사를 할 경우,

중학교 같은 경우에는

중입배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초등교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근무 학교가 배정되는 학군이 아니더라도

학교장의 허가를 받으면,

자녀를 데리고 다닐 수 있다.



실제로

출근하며 아이를 등교시키고,

퇴근하며 아이를 하교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 사이 방과후, 학원 등의 일정을 마치는 동안

근무하며 일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문화센터

아이의 입학 전,

나도 아이를 근무 학교에 데리고 다닐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리 길고 힘든 고민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주소지 기준으로 가는 학교에 입학시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쏟아지는 학부모들의 시선과

아이가 직간접적으로 받을 부담감과

지켜지지 않을 익명성이 두려웠다.




그것을 다 이겨내고 눈치보지 않을만한

강단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아이가 엄마의 꼬리표를 달지 않고

더 가볍게 자신의 길을 가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기 때문에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동네 화단

때로는 초조한 마음이지만,

종종거리며

근무 학교 교문을 나가

남의 학교 교문까지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그 길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꽃향기가 스며들며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싱그러운 나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게 숲 속의 풍경이 아니라

동네 아파트 화단이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달콤한 산책시간이기도 하다.




동네 화단

의도치 않은 신비주의로 인해

뒤늦게 배신감을 느낄까봐

많이 친해져서 편해지면

조용히 나의 정체를 밝히곤 한다.



종종 아이 학교나 선생님에 대해 푸념을

잔뜩 쏟아냈건만

그 푸념을 들어주던 이가

동종업계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에

너무 서운하고 쌓아온 믿음을 등지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면서,

한걸음 앞서 신비주의의 한 겹을

스스로 까곤 하는 것이다.





말하고 나니

나는 신비주의 컨셉이

썩 잘 맞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는 신비주의 컨셉을 더 길게

유지해보겠다 다짐해보지만

아마 내년에도 3개월이 최대치가 아닐까.

keyword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