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는 학교마다 반마다 달라요
오랜만에 만난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의 대화에서 모두의 궁금증을 가득 안고 물어보는 질문들은 '그 동네에서 학교 보내니 어떠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교육 일번지로 악명높은 대치동에서 초등학교를 보내고 보니, 1년은 어떠했는지 진짜 아이들이 어떤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막상 말을 꺼내놓으려니, 나도 모르게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고 나로 인해 편견이 생길까봐 앞서 걱정을 하게 되어 오히려 말수가 줄어버린 상황처럼 되버렸다. 모두가 사람사는 곳이지만, 조금씩 서로 다른 동네 이야기들과 뒤섞여 합쳐보니 같은 하늘 아래 몹시도 다른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저마다 100프로 만족할 수는 없지만, 아이의 1년을 보낸 소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떤 부분은 공감하고 어떤 부분은 의아해했다. 같은 동네여도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같은 학교에도 반마다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치동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고, 대치동이 아니라고 특별하지 않을 것도 없다.
일단 대치동의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약 70프로 이상) '영어 유치원 출신'이다. 놀이식 영어 유치원보다는 학습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곳들이고 지금 현재 대치동 영어학원 top3 내에 들어가는 학원을 방과후에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영어책을 더 편안하게 읽고, 친구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더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학교에 등교하고 나서는 한글을 쓰고 영어는 거의 사용하거나 읽을 일이 없다. 일반 유치원을 나왔다고 해서 걱정할 점은 없고 오히려 받아쓰기나 국어 시간에 더 유리하고 오히려 잘해보이는 후광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같은 학교 안에서도 담임 선생님과 학급 구성원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꾸러기가 몇 명이 포진되어 있고 장난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 공부 시간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모두가 자신의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라, 때로는 학부모들 중에 특이한 분이 있으면 학급 분위기가 또 달라지기도 한다.
대부분 대치동 인근의 학교는 '학교 숙제'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학원 숙제와 스케쥴로도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따로 학교에서 해야할 무언가가 많지 않다. 오히려 숙제가 있으면 민원이 들어올 소지가 있어,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가정으로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학원 숙제'를 학교에 들고와서 하기도 하는 특이한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요즘은 2~3년 이상의 선행이 트렌드이지만, 태풍의 눈처럼 이 곳에서는 그러한 선행 정도를 한 눈에 알아보기는 어렵다. 학부모들이나 아이들도 자기가 다니는 학원이나 레벨을 공개하기를 꺼려하고, 또 조심스럽기 때문에 적당히 다 하고 있겠지 하며 넘길 뿐이다. 그래서 선행을 하는지 현행을 하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파악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단지, 학원 숙제를 '굳이' 들고와서 보여주거나 친구에게 '나는 이전에 그 과정을 끝내서 너무 쉽다'고 말하지 않는 한, 서로 자기의 관점에서 파악할 뿐이다.
수학 2개, 영어 1개를 동시에 다니기도 하는데 숙제 양이 어마어마하고, 그래서 밤늦게 잠드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학원은 '숙제'를 가정에서 해가야만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 몫으로 가정에서 해나가야하며, 숙제를 하다보면 '학원'이 잘 가르쳐서인지 아이가 '숙제'를 하며 공부를 많이 해서인지 원인을 분간할 수는 없지만 일취월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방과후 일정이 서로 다르다보니, 동네 놀이터는 오래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환승역처럼 잠깐 짧게는 10분, 길게는 30~40분 정도 노는 곳이다. 같이 학원을 가는 경우가 많이 없어서, 시간 맞춰 놀고 헤어지는 식인데 학년이 올라가면 자기들끼리 약속을 잡아서 어디서 몇 분 놀자는 식으로 만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아이가 한가하더라도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적당히 작별을 고하게 되는 곳이다.
생각보다 엄마들끼리의 커뮤니티는 크거나 단합된다기 보다는, 본인들의 성향과 가치관에 잘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팀을 짜거나 수업을 신청하는 편인 듯하다. 엄마들이 외동이 아닌 경우, 다른 형제자매 스케쥴에 맞춰 이리저리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 게다가 다들 무언가 바빠 보이는데 무엇이 바쁜지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본인 일을 하거나 아이에 맞춰 스케쥴을 변동시키기 때문에 같은 반이라도 그렇게 자주 만나거나 모임을 가지진 못하는 편인 것 같다.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 안에 있다보니, 대부분이 예절바르고 정해진 선을 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어디에나 특이하거나 나쁜 습관을 가진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총 아이들 수를 대비해보면 비율이 높지는 않은 편이다. 그런데 그 특이하거나 나쁜 습관을 가진 아이가 삐뚤어지면, 무난한 많은 아이들을 물들이고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에 다들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어떤 곳은 학교를 교문이 없는 곳처럼 쉽게 찾아가거나 교실로 본인이 필요할 때 마구 전화를 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이 동네의 학교는 철저하게 교문을 통제하기 때문에 직통으로 교실로 전화를 걸거나,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적당한 선을 지키는 편인데, 만약 희소식이 아닐 경우에는 조금 무서우리만큼 변해버리는 학부모들도 있다.
일단 학원다니느라, 숙제하느라 바쁜 일상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좋아하는 것들을 채우고 친구들이랑 놀고, 키즈카페를 약속을 잡아 간다. 게다가 태권도, 피아노, 합기도, 농구, 줄넘기, 리듬체조 등 다양한 예체능도 함께 하는데 발표회를 하거나 급수 시험, 콩쿨 등에 나가며 자아 성취감을 높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좀 짠하고 어떻게 보면 기회를 많이 제공받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대치동 아이들을 보고 '아동 학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반대 시선으로 보면 '과잉 보호'라거나 '관심이 많다'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의미로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전적으로 부모가 책임지고 모든 과정을 따라가기 때문에 오히려 방임하고 내버려두는 것 보다는 훨씬 부모로서 열심히 책임감을 가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그 동네(대치동)'에서 아이를 학교보내니 어떠냐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자면, 나는 꽤나 만족스럽고 잘 지내고 있다. 아직 학원을 그다지 다니지 않지만, 아이는 즐거워하고 있고 언제든 문을 두드릴 수 있는 학원들이 즐비하고,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들도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바빠서 그리 많이 놀진 않지만 아이들 수가 많다보니 마음맞는 친구를 만들기도 좋고, 엄마들 중에서도 마음맞는 사람이 있을 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대치동에 살기만 하잖아'
남편이 장난치듯 말한 문장 그대로 우리 아이는 현재 대치동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대치동 사교육 시장의 매운 맛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빙성이나 신뢰도는 좀 떨어질 수 있지만, 다양한 의미를 종합해볼 때 나는 대치동에서 학교를 보내고 있는 삶에 만족하는 편이고 아이를 몰아세우고 불안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언제든 오라고 추천하고 싶다.
왜나하면 요즘은 어디에 살든 중학생 즈음이 되면 학원을 어디 보낼지, 학원가가 많은 곳으로 이사가야할지 또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일단은 궁금하고 갈까 말까 고민이 된다면 일찍 살아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