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아이들
방송이나 신문에서 무시무시하게 전해지는 '의대입시반'이나 '선행반'에 대한 이야기의 진짜 모습이 궁금하다면, 대치동 학원가 한복판에 한 시간 정도 배회하며 간판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된다. 설마하는 마음이 싹 사라질 정도로 어딘가로 매섭게 향하는 아이들과 신경질적으로 차를 몰아대는 일부 부모들은 그 현실의 어딘가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특강 안내 팜플렛에는 이미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과정이 명시되어 있다. 이게 정말 되냐고 의심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실제 일부 아이들은 초등학교 과정을 이미 마친 상태로 고작 2학년이 된다. 아이의 친구 중에서도 이미 성대 경시반, 황소 준비반 등 다양한 경험을 사교육을 통해 쌓아나가는데 들고온다는 숙제 수준이 아이가 보기에 엄청 잘해보였던지 '누구는 수학을 잘한다'고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6학년이 되면 무엇을 배우는 걸까
수업 시간 중, 건강한 생활에 대한 지문이 나와 '늦게 자면 건강을 해친다'는 문장에서 아이들이 도대체 늦게 안 자는 애가 어딨냐면서 되물었다. 의아했던 나는 몇 시에 자는지 잠깐 설문조사를 해보았는데, 놀랍게도 10시 이전이나 10시 대에 잠을 잔다는 아이는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 11시가 넘어서 잔다고 응답했는데, 심지어 학원이 11시 30분 경에 마친다는 아이도 일부 있었다. 밤 10시에 마쳐야하는 학원이 왜 11시가 넘어 마치냐는 순진무구한 질문에, '독학관'이나 관리형 '독서실'에서 그 시간까지 잡혀있다가(?) 집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반 이상의 아이들이 밤 11시~12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고 일부는 새벽 1~2시 정도가 되어야 숙제를 마무리하고 잘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학교에 와서 그렇게 졸린 표정으로 세상 잃은 눈을 하고 앉아 있을 수 밖에. 물론 학군지 아이들이 아침에 졸린다고 엎드려서 티나게 잠을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수업의 어디 즈음 갑자기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거나, 팔짱을 낀 상태로 눈이 감겨 있다거나, 눈빛이 영혼이 없어 보일 뿐이다.
틈만 나면 학원 숙제를 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교과서를 풀라고 시간을 주면 대충 글자를 좀 써놓은 다음 귀신에 홀린 듯이 학원 숙제를 꺼내 풀고 있다. 학원 숙제를 막지 않았던 것은 학교에서 틈틈이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깨알같이 남은 시간마저 딱딱 긁어 써야하는 것이라는 알고부터였다.
그래서 그 숙제는 무엇인가 싶어서 지나다니며 지켜본 바로는 일단 x축과 y축이 등장하고, 문제의 가장 위에는 공통 수학 수준을 상회하는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미분과 적분을 푼다는 아이도 있었는데 2학기가 되어 급격히 수업 태도가 나빠지더니 그 이유가 혹시 과도한 선행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6학년에 내가 겨우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이해했던 수학 문제를 달달 풀어낸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영어 지문들도 수능 영어 영역을 뺨칠만큼 긴 지문에, 깊이 있는 질문을 하는 문제들을 풀고 있다. 게다가 책 제목은 정말로 수능 영어. 예비 중1인지 예비 고1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 아이들은 내년에 입시를 치를 것처럼 그렇게 공부하는 중이다.
내년에 수능치니?
그런데 이미 고등학교 아이를 둔 엄마들은 일단 수학은 빨리 빼고 많이 돌리라고 조언한다. 그 조언에 따르면 이미 중학교부터 내신 시험 수준이 수능 지문을 뺨칠 정도로 길고 어렵고 수행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교과 공부를 할 시간이 없으니, 여유가 될 때(아마도 초등) 진도를 많이 빼놓으라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속도를 다 소화해낼 수 있고, 100점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이는 아이들은 아마 누군가의 조언, 학원가의 로드맵에 따른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수능 대비를 도대체 몇 년 동안 하는 것인가. 정말 진짜 문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 수행평가'에는 만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답을 콕콕 찍어 외우라고 알려줘도, 시험 범위가 단 두 장 뿐이어도, 실수와 비어있는 시험지가 등장한다. 고등학교 과정을 이해하는 아이들이 '고작' 초등학교 문제를 완벽히 풀어내지 못하는 건 정말이지 주객전도 아닐까.
물론 상향 평준화되어, 만점이 아니더라도 1~3개 정도의 오답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정도는 선행을 달리지 않더라도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다면 해낼 수 있는 정도 아닌가. 두리뭉실하게 표기되는 성적에 몇 개 틀리더라도 '잘함'으로 표기될 것이고, 게다가 초등학교 성적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생각되면 오히려 3~4년 선행을 해내는 것에 중점을 둘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본이 탄탄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최상위 수학을 풀고, 특목고 준비를 하고, 수능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배우는 거라도 제대로 이해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몇 명이 있지만, 그 조언마저 기분나쁜 민원감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힘내라고 말해줄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의 입시스트레스가 너무 지옥같아 돌아가기 싫다는 어른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입시스트레스를 초등학교 중학년(3~4학년)부터 받는 것 같다. 그리고 아직 신체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는데, 정신적으로 중, 고등학생 것을 배워나가다 보니 사춘기도 빨리오고 급격히 변하는 시기가 더 빨라지고 있다. 물론, 뛰어난 영재라 더 많이 빨리 배우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운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기초를 가르쳐주는 학원은 온데간데 없고, 모두다 '영재','최상위','상위1프로'를 추구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삶을 살아서 다른 삶의 모습을 몰라, 이 속에서 행복감을 찾는다할지라도 요즘 속도는 정말이지 미쳐있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다 배우면, 도대체 인생은 무슨 재미로 살아가는 것일까.
인생의 속도
100세 인생이라 불리는 아마도 지금 아이들은 150세일지도 모르지만, 기나긴 인생의 항해에서 불안하고 조바심 속에 경쟁구도에 빠져 미친듯한 속도로 달려나가는 아이들이 미래 시대의 인재가 모두 될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 우리 아이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그릇보다 과도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내년에 수능 보는 수험생이 아니니, 다양한 경험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도 만들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도 몰래 풀거나 틈틈이 꺼내서 해내야만 겨우 다해낼 수 있는 숙제를 토해내는 학원을 너무 가득 채워넣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