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여행기
미소와 침묵
버스 좌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데
의미심장한 단어가 눈에 띄인다
미소 그리고 침묵
미소야 대중교통에 흔히 따라다니는
대표적 단어이므로 덜 궁금했으나
침묵을 붙인 의미가 뭘까
곰곰히 생각하니 내가 곰 된다.
운전기사분이 버스에 타시며
나를 보더니 흠칫 사이를 두고
군대 경례를 하신다.
아니 왜 저에게 경례를 하세요
아 군인 아니십니까
맞아요 헐 어떻게 아셨어요
딱 보면 알지요
웃으며 얘기하시는데
미스테리같은 기사님의 혜안에
어안이 벙벙 곰이 된다.
기사님은 운전을 하시며
나에게 본격적으로 이것저것 질문을 하셨는데
운전을 하시며 중간에 질문을 하시는건지
질문을 하시며 중간에 운전을 하시는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계속 여쭤보셨다.
(난 버스 뒤편에 앉아 있었다)
자칫 큰일날라 자리를 맨 앞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버스 대담을 가졌다.
해남 토박이이신 기사님께
내 공군 장교라 하니
나중 투스타 달때까지 꼭 붙어 있으라
나오면 고생이다 라고 하신다.
우리나라 공군에서
수송기 조종사와 투스타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불가항력적 거리감을 말씀드릴까 하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미소와 침묵의 의미를 물으니
사람들이 버스 밖 일상에서는 조용히 살다가
버스만 타면 크게 대화를 하고
전화를 하고 소리를 지른단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은 수적천석의 원리로
그러한 소리들이 모여 자기에게 큰 고통이 된다고
그분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대굴빡이 뽀사져버린다요-
버스에서 내리며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다.
정확히 삼십분 뒤
두륜산 케이블카 안에서
그 기사님의 표현을 정중히 빌려서 쓰자면
내 큰 대굴빡이 뽀사지고 있었다.
삼십여명의 산악회 회원분들과
케이블카에 함께 타게 됐는데
그분들의 무지막지한 대화소리에
두륜산과 해남의 조용한 절경은
흔적도 없이 묻혀 버린다.
다행히 케이블카는 편도 10분이라
내 두개골은 금가기 직전으로
무사할 수 있었으나
하루 종일 운전대에서 이러한 소리를 듣는다 상상하니
그분의 말이 과장이 전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행히도 두륜산은 내게 힐링로드를
선사해주어 두개골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는데 지겹다면 그것은
당신이 삶을 그렇게 만든것이다'
라는 글을 읽으니
세상이 시끄러운게 아니라
내가 삶과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악취나는 말들을 배설하는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향기나는 미소와 침묵으로
살아야지
넓고 깨끗한 해남 풍경을 보며 다짐해본다.
생각해보니 운전기사님은
곰같은 중생에게
염화미소를 알려주신
부처님과 다를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