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by 김대호

노인과 바다.

초등학교 때 읽어봤기에
근 이십 년간 손에 들지 않은 노인과 바다.

어릴 때 재밌게 읽은 명작들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
뜻깊고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는 추천에
책을 주문했다.


사천만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소설 속 바다에 대한 묘사와 짠내가 궁금할 때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물고기에 끌려가던 처절한 바다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평화로운 바다가 창 밖에 있었다.

노인은 끝없이 넓은 바다에서
독백과 혼잣말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외로움은 무엇이든 대화 상대로 만들 수 있다.
비오큐에 사는 나도 그 사실에 동의한다.

노인은 자신과 사투를 벌이는 물고기에게
응원과 도발로 말을 걸고,
낚싯줄에 앉은 새에게 힘을 얻고,
성모 마리아에게 도와달라며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내뱉으며,
위대한 야구선수 디마지오와 자신을 고통을 비교하며 인내하고,
유일하게 그를 따르는 촛불 같은 아바나 항구의 소년을 그리워한다.

마침내 물고기는 힘을 소진해 그의 배에 묶이고,
이내 투쟁의 대상이었던 물고기는
그가 사력을 다해 보호해야 할 존재가 된다.

너무 큰 행운은 오히려 불안을 안긴다.

바다 밑바닥에서 피 냄새에 상어들이 몰려와
배 옆에 묶어놓은 물고기를 물어뜯고,
노인은 이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녹초가 된 노인처럼
물고기는 대가리와 꼬리 외에는 뼈만 남게 된다.

멀리 아바나 모항의 불빛을 발견하고,
배를 바위에 묶어만 놓은 채
노인은 자신의 침대에서 하염없는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소년은 울면서 그를 보살피고,
여행객들과 어부들은 정박한 배에 묶인
거대한 물고기 뼈를 보며
어느 인간의 위대한 승리에 놀라워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노인은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물고기가 끌고 가는 밧줄을 놓지 않으며 중얼거린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삶을 살면서 자신이 다치는 상황이라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투쟁.
혼잣말과 독백으로 자신에게 힘듦을 솔직히 고백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그 태도가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삶을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겠다.

그가 뼈만 남은 물고기를 매달고
멀리 어두운 밤하늘에 희미하게 반사하는
아바나 항구 불빛을 발견하는 장면을
헤밍웨이는 담담하고 간단하게 서술했다.

수송기를 조종하던 시절
해외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조종석에서
몇 시간의 지루한 짙푸른 밤바다 멀리
제주도의 희미한 불빛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갑고 기쁠 수가 없었다.

이상한 발음의 외국 관제사들의 듣기 평가 같은 관제용어를 듣다가,
인천 컨트롤의 한국 관제사들의
고막에 딱딱 꽂히는 발음을 들으면
그 기쁨은 배가 됐다.
노인의 기쁨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결은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글을 읽으며 자세하게 묘사된 어부들의 삶은
이 글을 쓴 헤밍웨이가
쿠바의 바다와 어부들을 얼마나 애정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역시 좋은 글은 진심과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탄생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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