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선암사에 들리다.

순천 유람기

by 김대호

비 오는 날 선암사에 들렀다.
갑자기 떠난 순천 유람 중이었다.
예전 알쓸신잡 순천 편의 기억이
선암사로 행선지를 정하는데 한몫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선 검은색 골프우산을 들고
선암사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걸었다.
처음엔 주변 공사장 쇠톱 소리와
머릿속 복잡한 생각 소리에 시끄러웠지만,
이내 빗소리와 계곡 물소리의 고막 점유율이 높아졌다.

길목 중간 장승으로 생각되는 목상이
길 양 옆에서 중앙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부리부리한 눈동자는 나를 포함해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모습만 볼 수 있는 사람의 눈과는 달리 장승의 눈은 사람 속 마음과 과거 행적까지 노려보고 있었다.
과거와 속이 깨끗하지 못한 나는 섬찟했다.
인내심이 좋은 장승인지 노려만 볼 뿐
선암사로의 길을 막지는 않아 걸음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다람쥐가 바위와 잔디 사이를 뛰고 있었다.
작고 귀여운 존재의 등장에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생각해보니 원래 다람쥐가 살고 있던 산길에
내가 놀러 온 것이었다.
남의 터에 놀러 온 주제에
주인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니 실례였다.
다행히 다람쥐도 호통을 치진 않아
손님다운 걸음으로 나아갔다.

중간 쉼터에 음료수 자판기가 보였다.
세속을 벗어나는 와중에 편리함과 자본주의의 상징 중 하나인
자판기를 보니 작은 괴리감이 느껴졌다.
스님들 거처에 달려져 있던
반구형 위성 TV 안테나를 보았을 때 느꼈던 기분이었다.

선암사에 거의 다 달았는지
아치형 돌다리인 승선교와 강선루가 보였다.
안전담당 업무 1년 차의 눈으로 보니
아치형 유려한 아름다움과 함께
아이들이 장난치다
다리에서 계곡으로 낙하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신선이 승천한다는 다리라도 안전 난간이 필요한 시대다.

선암사의 진정한 입구인 맞배지붕의 일주문을 지나자
기도시간인지 불경 외는 소리가 경내에 가득 찼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사찰이다.
태고종의 스님들은 결혼이 가능하다고 하고,
결혼한 스님을 대처승이라고 한다.
남편을 스님으로 둔 부인들의 삶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을 스님의 부인이라던지
자식이라 소개한 사람을 만나본 일이 없다.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 선생님이 대처승의 자식이라고 한다.

경내를 거닐다 구석에 숨겨진 산신각을 보았다.
인자한 표정의 산신 할아버지가 온순해진 호랑이 곁에서
동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부처님을 모신 사찰 한편에
조계산 산신의 거처를 마련한 마음이
퍽 따듯하고 서민적이다 생각했다.

깐 뒤라 표시한 뒷간 즉 목재로 지어진 화장실도 가보았다.
현대 문물에 익숙해진 내게 꽤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전통적 사찰의 모습을 보러 온 마음가짐으로
화장실만 달리 볼 이유는 없다.

법정스님이 생전 사랑했다는 매화나무들도 보았다.
서투른 상상력을 동원해
가을빗속에 연분홍 매화들을 피워보았다.
장관이었다.
무소유의 법정스님도 만개한 선암사의 매화 장면은
기억에 간직하셨을 테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다툼 탓인지
매화나무를 자랑하는 설명판에 법정스님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경내 구경을 마치고 올라온 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주차장 길을 잘못 들어 식당가를 걷다가
전혀 있을법하지 않은 나이트크럽 간판을 발견했다.
순간 번쩍 세속에 돌아옴이 느껴졌다.
세상의 외로움과 즐거움을 떨치러 온 수행자들에게
이 간판의 매혹적인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어쩌면 세속과 선암사의 진정한 경계는
이 ‘크럽’의 간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지도 않은 생각을 하면서
상사호로 차를 돌렸다.

비가 내리는 선암사 가는 길
잘못 딛으면 곧장 극락으로 가는 다리
선암사 일주문
깐 뒤
운중 선경
아기자기한 연못
신선을 모셔놓은 조그마한 사당
대한민국 등산로 어디에나 볼 수 있는 바람의 실체화
부리부리한 눈으로 장승이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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