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고양이를 만난 사연
먼저 나를 찾은 건 그 혹은 그녀였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헤집고 새어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니야니야~’
배전관이라 생각되는 이름 모를 은색 구조물의
옅은 열기에 기대 웅크려있는 갈색 고양이었다.
그저 이 추운 공기를 벗어나
따듯한 샤워로 풍덩 뛰어들고 싶었던 나는
그 혹은 그녀 곁을 재빠르게 지나며
무심과 걱정의 적당한 비율로 읊조렸다.
"빨리 가"
이제 막 마주쳐 출신과 행선지를 알 수 없는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걱정이자 충고였다.
하지만
웅크리고 있던 탓에 세모난 귀가 접혀 있었는지
아마도 내 말을
"빨리 가자"
라고 들은 듯싶다.
고양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고양이로서 적절한 스토킹 거리인
3에서 5미터를 유지하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차가운 얼음판에선 잠시 주춤했고
내가 돌아서 지켜보자 멈칫했고
횡단보도에선 나와 같이 기다렸고
결국 숙소 입구까지 따라오는 반전 없는 여정이었다.
커다란 유리문으로 되어있는 숙소 입구는
나는 쉽게 열 수 있지만
그 혹은 그녀는 절대 열 수 없었다.
아니 이제야 생각하지만
손수 열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나는 유리문을 열고 (이쯤되자) 정중하게 기다렸다.
2초 동안의 짧은 고민 끝에 고양이는 사사삭 들어와
한 바퀴 돌며 공간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여기까지 따라온 그 혹은 그녀가 다시 나갈 일은 없다고
확신했고
확신은 적중했다.
나는 유리문을 조심히 닫고
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자리 잡은
그 혹은 그녀를 지켜보며 내 방으로 올라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니면 더 이상의 만족감은 불필요하게 느껴졌는지
그 혹은 그녀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따듯한 방에 들어섰지만
왠지 연말연시라 생기는 만물에 대한 연대감과
추운 날씨로 인해 그 감정이 증폭돼
참치캔을 열고 작은 그릇에 덜게 만들었다.
그릇을 들고 다시 내려가 보니
그 혹은 그녀는 반 지하의 구석에 웅크려 있다가
냄새를 맡았는지 슬금슬금 걸어 나온다.
앞에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얼굴을 파묻고 쩝쩝하며 먹는데
나에게 보였던 그간의 새침한 도도함은
참치와 함께 시원하게 씹어 넘겨 버리는 듯하다.
귀여운 감정은 이내 곧 측은함으로 녹았다.
참치 한 점 남기지 않고 핥아먹은 그 혹은 그녀가
이젠 떠날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유리문을 열고 다시 한번 기다렸다.
샤사삭 나갔다가 한 바퀴 돌고
놀랐는지 다시 샤사삭 들어와
반지하로 내려간다.
그래...그만큼 춥다. 나도 안다. 이해한다.
그 혹은 그녀가
오늘 밤은 여기서 묵기로 마음을 정한 듯싶어
호텔 벨보이의 심정으로 유리문을 조심히 닫았다.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집사로 많이 표현하던데
나는 만난 지 이십 분 만에 손님과 벨보이가 되었다.
역시 우리나라 고양이라 그런지
관계 정리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편히 웅크려 쉬는 고양이를 떠나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 만남이 참으로 뜻깊고 따듯하다 생각되어
이렇게 글을 남긴다.
만약 내일 아침
조찬을 들고 그 혹은 그녀를 만나러 갔는데
반지하 계단의 빈자리에 희고 갈색인 털 몇 가닥과
작은 동그라미 네 개의 발자국만 남아 있다면
참 헛헛하고 아쉽고, 아침 바람이 더 차겠다.라는 생각을 미리 하는 어리석은 벨보이가 된다.
생각해보니
오늘의 적당한 벨보이를 찾았다고 외친 니야니야~였다.
그랬기에 먼저 나를 찾은 건
그 혹은 그녀였다는 확신이 든다.
#팁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