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과 실존과 유발

by 김대호



유발 하라리 라는 꽤 똑똑한 분이

고통이야말로 허구와 실존을 가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라고 했다.


얼마 전 첫 백신을 맞으며 그의 말대로

내 삶의 실존을 느낄 수 있는 고통을 경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백신을 맞기 전 타이레놀을 먹어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을 철석같이 따르고

여러 번 의료진의 확인을 거듭한 후에야

귀하게 관리받으시는 아스트라제네카를 맞을 수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별 이상이 없어

피자도 먹고 영화도 보며 꿀 같은 시간을 보낸 후

자려고 침대에 누운 그때부터

잠자코 기다리던 백신의 장난은 시작됐다.


항온 기능이 잠시 고장 났는지

심장부터 목덜미까지 짚단에 불씨가 번지듯

느껴본 적 없는 열기가 스멀 올라옴과 동시에

두 손은 초겨울 새벽처럼 차가워졌다.


차가운 손으로 목덜미를 감싸 보아도

손의 냉기는 쉬이 녹지 않았다.


몸이 차갑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것이어서,

어머니께서 가끔 손이 차갑다, 바람이 차다

말씀하시는 것을 그냥 흘려듣지 않으리

겨드랑이에 두 손을 단디 껴 넣고 진심으로 다짐했다.


결국 꼭두새벽 항복의 의미로 타이레놀을 먹은 후

약 기운이 나타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잔불처럼 남은 열감은 다음날 저녁까지 이어졌다.


유발 하라리 선생의 말대로라면

백신이 선물한 짬짜면스러운 열기와 냉기의 복합적인 고통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내가 잘 살아있다는 존재의 확인이겠다.


몇 주 후 화이자 백신을 이차 접종으로 받았다.


삶에 대한 실존의 확인은 꽤나 충분히 한 거 같아

타이레놀을 미리미리 먹으니

평탄하게 시간이 흘렀다.


유발 하라리 선생도 백신을 맞고

아프기 싫어 타이레놀을 미리미리 먹었을까,

아니면 냉기와 열기의 고통을 즐기며

삶의 실존을 확인했을까.


코로나 항체를 보유하고,

여전히 마스크를 쓰며,

하릴 쓸데없는 궁금증을 날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That’s cra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