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되고 싶다

by 율팬

얼마 전 토요일, ‘아이와 함께하는 요리체험’ 기사 취재차 어떤 집에 갔다.

촬영의 주 대상은 여섯 살 난 남자아이. 평생교육원 강사로 활동 중인 그의 고모가 아이를 데리고 음식을 만들면서 재료의 변화 과정이나 맛 등을 살펴보게 하고, 당신들도 이렇게 한번 해보라 권하는 그런 꼭지였다.


전화 통화로만 인사를 하고 처음 만난 사람. 무척도 포근하고 조용한 전화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165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조금은 메말라 보이는 여자였다. 첫인상도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고 그저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피아노를 참 잘 칠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조용조용 재료를 준비하던 그녀가 막상 테이블 세팅을 끝내고 촬영에 들어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보통의 여섯 살 배기 남자아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촬영 도중 아이의 아빠가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혼을 한 번 낼 정도로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싫은 소리 한 마디 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보는 사람도 즐겁고 신날 정도로 그녀는 연신 웃고 있었고 또 순간순간 너무도 재치가 있었다.


그 모습은 내게 충격이었다. 가벼운 솜방망이 같은 걸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그것은 내내 깊고도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녀가 일을 끝낼 때까지 나는 그녀의 모습을 연신 훔쳐보며 속으로 감탄을 하였다.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문득, 중3때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모두가 다각형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쪽은 세모로 보였는데 저쪽은 네모로 보일 수 있고,

그쪽은 둥글게 보였는데 요쪽은 날카롭게 보일 수도 있다......


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어떤 사람을 볼 때 첫인상으로 판단하지 마라. 선입견을 갖지 마라."하는 것이었는데, 이와 함께 또 떠오른 이야기가 바로 ‘다른 새들의 깃털을 모아서 자신의 깃털인양 꾸미고 숲 속 새들의 미인대회에 나가려던 까마귀’ 이야기였다.


이야기에서 까마귀는 아름다운 다른 새들의 깃털을 하나씩 모아 자기 몸에 붙이고 자기 것인양 하고 대회에 나갔다가 자기 깃털을 알아본 새들이 그것을 하나둘씩 물어가 버리는 바람에 창피를 당하는, 어리석고 허영심 많은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까마귀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볼품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한 듯 보였다. 까마귀가 물어온 깃털들은 모두가 아름답게 빛나는 것들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모습이 만약, 수많은 조각의 결정체라면 값비싼 화장품과 명품들로 외양을 꾸미려 하듯 사람들은 그 수많은 면면을 매일 갈고 닦으면서 빛을 내려고 하지는 않을까? 남들이 자신의 어떤 면을 보아도 반짝반짝 빛나게 하기 위해서 매일매일 생각하고 방법을 찾고 스스로를 가꾸지는 않을까?.


제 분수를 모르고 겉치장에만 몰두한 까마귀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언뜻 떠오른 생각은 그랬다. 차라리 저런 까마귀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 내가 그 까마귀와 같아서 누가 보아도 반짝거리는 것들, 세상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반짝이는 지혜와 지식과 남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분위기와 사랑스러움 따위를 겸비하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하루에 한 사람이라도 스승을 삼고 좋은 점만 본받고자 한다면 언젠가는 그들의 면면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라면 나도 까마귀가 되어도 좋겠다. 아름답고 영롱한 마음 조각을 날마다 깎고 다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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