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길은 미움보다 사랑이
2022.02.24
새벽 12시 50분, 비행기 창가 너머로 캄캄한 공항의 풍경을 바라본다. 비행기가 이륙하며 밤하늘에 길을 내는 동시에 몸도 천천히 진공에 젖어든다. 십자수 마냥 어둠을 비집고 꿰어진 인천공항의 반짝이는 조명들도 서서히 멀어져 간다.
저가의 헤드폰을 통해서 콜드플레이의 10곡 트랙이 흘러나온다. 허공을 거침없이 찢어대는 비행기 안에서는 세계적인 밴드의 음악도 온전히 감상하기는 힘들다. 약 3년 만에 느껴보는 기내 특유의 인공적인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호흡기로 들어온다.
어느새 칭다오 시를 넘어 베이징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초고속의 이동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도 무색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더 이상 크고 작고의 우위가 중요하지 않아 진다. 도시 전체를 한 번에 시야 안에 들여다 놓는다는 것, 정말이지 언제나 신기한 경험이다.
이제 슬슬 잠을 자보려고 한다. 근데 소음이 너무 크다. 곧 있으면 나도 옆좌석 사람들처럼 반쯤 잠들어 있겠지. 나는 분명히 안다. 이러한 소음 속에서의 나는 숙면을 손님처럼 기다려야 하지 찾아가려 해서는 안된다. 굳이 잠들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도하의 카타르공항에서 약 12시간의 경유를 마쳤다. 중동을 방문한다는 설렘 반 그리고 12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예견된 따분함이 반. 그럼에도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갔다. 면세점만 약 5번 정도 순회했지 싶다. 그 외의 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멍을 때리거나, 책을 읽으며 따분함을 견뎠다. 비행기 티켓 혜택으로 30달러 정도 음식을 살 수 있었다. 한국 돈으로 환전하면 삼만 육천 원은 되는 돈이지만, 중동에서는 피자 한 조각 먹을 수 있는 값이었다. 말도 안 되는 물가에 이것이 석유국가의 위엄인가 싶었다. 그래도 무료라고 하니 감사히 먹을 수밖에.
길고 긴 경유가 막바지에 달았을 즈음에, 함께 동행한 단원들과 앉아 기도를 했다. 아프리카는 웬만하면 인생에 가볼 일 없는 곳이니 모두들 적잖이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히잡과 이슬람 풍의 복장을 걸친 사람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둥그렇게 모여 기도를 하는 아시안들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퍽이나 생소했으리라 짐작된다.
출국장까지 배웅을 온 가족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출국이란 참 신비한 힘을 가진 순간이다. 방금까지도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던 사람을 안고서 깊은 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출국은 과거의 사사건건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타인과 함께 있는 순간에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절대 후회는 없도록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누그러지게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가장 미워했던 사람이 지금은 가장 그리울 것 같은 사람이 되어있다. 미워하던 순간에도 사랑의 마음은 분명히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 감춰졌던 마음을 들추어내는 것이 헤어짐이라는 마법이다. 벌써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