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

“접속”으로 사는 사람들

by DataSopher



스스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 “접속”으로 사는 사람들


저는 요즘 이런 순간이 자주 떠오릅니다. “오늘이 몇 일이더라?”라는 질문을 ‘그 질문을 던진 내 손’이 이미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있다는 사실로 먼저 확인하는 순간이요. 날짜는 내 머릿속에 있지 않고 화면 어딘가에 “항상 존재”합니다. 그래서 기억하는 대신 접속합니다.


이 변화는 개인의 게으름이라기보다 시스템의 승리입니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됐죠.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정보 자체’보다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는지’를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Google effect” 혹은 전이기억(transactive memory)의 디지털 확장판이에요. ([Science][1])

그러니까 날짜를 기억 못하는 건 당신이 망가진 게 아니라 인간의 기억 전략이 환경에 맞춰 최적화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시간 감각의 외주화”를 뜻하거든요. 우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억하는 게 아니라 알림에 반응합니다. 계획은 푸시 알림의 진동으로 시작되고 하루는 ‘내가 선택한 리듬’이 아니라 ‘도착한 일정’의 순서대로 흘러갑니다. 기술이 시간을 정리해주는데 삶은 어째서 더 조급해졌을까요?


흥미로운 건 디지털 의존이 항상 해롭다고만 말하기도 어렵다는 점입니다. 스마트폰 캘린더 알림이 ‘미래에 해야 할 일(전망기억, prospective memory)’을 돕는다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특히 시간·장소 단서까지 주는 알림이 누락을 줄였다는 결과가 보고돼요. ([PubMed][2])

기술은 기억을 “빼앗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기억을 “복원하는 보조장치”이기도 합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죠. 기술을 쓰는 걸까 기술에 의해 쓰이고 있는 걸까.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디지털 치매’ 같은 표현도 이 고민을 대중의 언어로 번역한 결과 같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과의존하면 집중력·기억력 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되어 왔고 젊은 층의 건망증을 ‘영츠하이머’라는 말로 부르기도 하죠. 이 용어들은 의학적 진단명이라기보다 사회적 경고에 가깝고 맥락을 조심해서 다뤄야 합니다. ([서울신문][3])


그럼에도 저는 이 현상을 꽤 “인문학적으로” 봅니다. 날짜를 기억한다는 건 사실 작은 철학입니다. 달력의 숫자는 ‘언제’라는 문장을 통해 삶을 이야기로 엮는 방식이니까요. 생일, 기념일, 마감일, 첫 출근일... 날짜는 사건의 좌표이면서 정체성의 문장입니다. 그런데 좌표를 잃어버리면 이야기는 짧아집니다. 인간은 원래 서사가 긴 동물인데 알림에만 반응하는 삶은 ‘문장’이 아니라 ‘단어’로 살게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 해결책을 거창하게 잡지 않습니다. “시간 감각의 주권 회복” 정도면 충분합니다.


첫째 ‘날짜를 외우는 습관’이 아니라 ‘날짜를 말로 붙잡는 습관’을 추천합니다. 아침에 달력을 한번 보고 끝내지 말고 오늘 날짜를 한 문장으로 소리 내어 붙여보는 거죠. “1월 23일 금요일 오늘 나는 이 일을 한다.” 기억은 연결입니다. 문장으로 연결되면 숫자는 사건이 됩니다.


둘째 알림을 “협상”으로 바꾸는 겁니다. 알림이 울리면 즉시 수행하지 말고 10초만 시간을 확보해보세요. “이건 지금 해야 하나 오늘 해야 하나 이번 주에 해야 하나?” 이 짧은 질문이 시간의 주도권을 내 손으로 되찾습니다.


셋째 기술을 이기려 하지 말고 ‘역할을 분리’하세요. 스마트폰은 ‘기억 창고’, 나는 ‘의미 편집자’. 저장은 맡기되 의미를 만드는 작업만은 내 쪽에 남겨두는 겁니다. 우리는 의미의 시대에 삽니다.


스스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는 어쩌면 “기억이 죽은 시대”가 아니라 “기억의 방식이 바뀐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시간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입니다. 날짜를 다시 기억한다는 건 하루를 다시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니까요.



여러분은 요즘 “날짜를 기억하는 편”인가요 “알림에 반응하는 편”인가요?

그리고 만약 하루에 딱 하나만 되찾을 수 있다면 ‘시간의 감각’이었으면 좋겠나요 ‘집중력’이었으면 좋겠나요?






[1]: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1207745

"Google Effects on Memory: Cognitive Consequences of ..."



[2]: https://pubmed.ncbi.nlm.nih.gov/39931855/

"Prospective Memory in Mobile: Using Smartphone-Based ..."



[3]: https://www.seoul.co.kr/news/seoulPrintNew.php?id=20180320021001

"[메디컬 인사이드] 스마트폰 못 놓는 당신…'디지털 치매'는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