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만 꽂힌 사회의 도덕적 딜레마
우리 사회의 ‘도덕적 운영체제(OS)’가 어디서 깨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유명 사교육 강사들이 현직 교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문항(혹은 자료)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는 내용이 나왔죠. ([뉴시스][1]) 몇 명의 일탈이 아니라 전·현직 교원과 학원 관계자 등 다수가 얽힌 “문항 거래·유출” 구조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보도도 이어졌습니다. ([한겨레][2])
(지금은 ‘사실 확정’의 단계가 아니라 ‘수사·재판’의 단계이니 단정 대신 구조를 보자는 전제로 이야기해볼게요.)
더 무섭게 느낀 건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둘러싼 공기의 질감입니다. “다들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그 분위기요. 왜 우리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능력을 특히 입시 앞에서 쉽게 내려놓게 될까요?
수능이 한국 사회에서 ‘통과 의례’가 된 순간부터 도덕의 기준은 교묘하게 바뀝니다. 원칙은 “공정”인데 현실의 언어는 “내 아이만은”으로 변합니다. 그러면 도덕은 개인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 생존전략의 옵션처럼 취급되기 시작하죠. 사회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겁니다.
“정답을 맞히면 과정은 나중에 생각해도 돼.”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누군가는 문항을 팔아 ‘부수입’을 만들고 누군가는 ‘경쟁 우위’를 사며 누군가는 ‘불안’을 결제합니다. 대다수는 침묵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조에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나도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거든요.
공부 시간을 덜어내든 사교육을 줄이든 스펙 경쟁에서 빠지든. ‘정직’은 아름답지만 비용이 드는 선택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오래 못 갑니다. 도덕이 시장 가격표처럼 흔들리는 시스템은 결국 신뢰를 잃거든요. 신뢰가 무너지면 교육의 효율도 같이 무너집니다. 아이들은 더 빨리 눈치 챕니다. “정답은 있지만 정의는 없다”는 사실을요. 그때부터 학습은 생존 게임의 룰 암기가 됩니다. 성적을 올리면서도 공동체를 갉아먹는 기묘한 승리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럼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저는 “수능을 없애자/유지하자” 같은 이분법보다 ‘유인을 설계하는 방식’을 다시 묻고 싶습니다. 문항이 돈이 되는 순간 문항은 상품이 되고 상품은 유통망을 만들고 유통망은 조직을 부릅니다. 즉 개인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습니다. 구조를 만든 건 ‘수요(불안)’와 ‘보상(돈·명성)’의 결합이니까요.
해법은 신뢰를 다시 디자인하는 쪽에 있어요.
먼저 문항과 출제 과정의 투명성을 기술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유출이 “시스템”의 문제로 보이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둘째 대학·기업이 한 줄 성적표로 사람을 과도하게 압축해 평가하는 관행을 줄여야 합니다. 평가가 단일축일수록 그 축은 반드시 거래됩니다.
셋째 우리가 가장 잊어버린 것 하나. “잘못된 것을 말하는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부고발이 영웅담이 아니라 정상적인 안전장치가 되는 사회요.
여기까지 말하면 어떤 분은 이렇게 댓글을 달 수도 있겠죠.
“현실을 모른다. 그래도 수능이 그나마 공정하다.”
맞아요.
수능은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규칙이 동일하다’는 감각을 제공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능을 조롱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능이 공정성을 상징하는 만큼 그 주변에서 공정을 갉아먹는 거래와 침묵이 발생할 때 사회가 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징이 무너지면 남는 건 냉소뿐이니까요.
저는 “대한민국은 비판을 잊었다”는 말이 절반만 맞다고 봐요. 우리는 비판을 잊은 게 아니라 비판의 비용이 너무 커진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필요한 건 ‘비용을 낮추는 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개인적인 소망 하나를 적고 끝낼게요.
아이들이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게 장기적으로 가장 큰 실력이고 가장 오래가는 신뢰 자본이더라구요. 점수를 올리는 나라를 넘어 신뢰를 복원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1]: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123_0003487531
"檢, '수능 문항거래' 현우진·조정식 등 기소 수사팀 우수사례 ..."
[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41098.html
"6월 평가원 수학영역.pdf 채팅방 유출…교사·학원강사 46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