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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러 갔다가 오히려…

[묵상하며 깊이 생각해 보기(82)]

by 겨울나무

♣ 평등이란 산을 깎아 못을 메워 편편하게 한다거나, 학의 다리를 끊어 오리 다리에 붙여 주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긴 것은 긴 대로, 짧은 것은 짧은 대로, 높은 것은 높은 대로, 낮은 것은 낮은 대로 두었다가

그것들이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저절로 평등은 이루어질 것이다.


< 진각국사 어록 >


♣ 부정을 비난하는 사람이란, 자기가 부정을 행할 것을 겁내고 비난하는 데에 있지 않고, 부정을 둘러 쓸 것

을 겁내어 비난하는 것이다.


< 플라톤/共和國 >


♣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나 부정한 일을 해서는 안된다. 또 타인의 부정을 부정으로 갚아서도 안된다.

< 소크라테스 >


♣ 법은 성자(聖者)를 위해서 제정된다. 더구나 그것도 그가 부정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부정을 자신이 둘러쓰지 않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 에피쿠로스/斷片>


♣ 부당한 이득을 얻지 말라. 그것은 손해와 꼭 같은 것이다.


< 헤시오도스 >







조선 선조 때 이조 판서의 벼슬에 오른 이후백은 매우 청렴결백한 인물로 소문이 난 인물이다.


그는 아무리 하찮은 벼슬 자리라 해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확실히 알아본 다음에야 쓰는 사람이었다. 또한 아무리 권력이 있는 사람의 청탁이라 해도 들어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단 자신의 손을 거쳐 벼슬 자리에 임명했다 해도 그것으로 그만이 아니었다. 혹시 그 벼슬아치가 잘못을 저지른다든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자기 자신 때문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치게 되었다는 생각에 밤을 새워가며 걱정과 고민을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곤 하였다.


이후백이 그토록 청렴결백하다 보니 그 누구도 이후백에게 분수에 맞지 않는 벼슬 자리를 감히 부탁해 오지 못했다.


어느 날, 그런 이후백의 집에 반가운 손님 한 사람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는 이후백과 가까운 친척이었다.


친척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끝에 이후백에게 슬그머니 자신의 벼슬자리를 부탁하게 되었다. 이후백의 성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친척이니까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이후백은 아무 말없이 작은 책을 한 권 꺼내더니 친척 앞에 펼쳐보이며 입을 열었다.


“자, 여길 좀 보세요. 이것은 내가 앞으로 임금님께 벼슬을 천거할 만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은 책이라오. 여기에는 분명히 당신 이름 석 자도 적혀 있소이다. 그런데 이제 가만히 보니 당신은 벼슬 자리나 부탁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이제 뒤늦게나마 그런 인물인 줄 알게 되었는데 어찌 벼슬에 천거할 수 있겠소. 서운하시겠지만 당신이 보는 앞에서 당신 이름을 지워 버려야 되겠소이다.”


"……!?"


이후백은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붓을 들더니 그 사람의 이름을 까맣게 지워버리고 말았다. ( * )


< 석담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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