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그리고 애완견으로 살아가는 여인]
그야말로 아름답고 멋진 미모의 아가씨가 있었다.
그는 남자들 뿐만이 아니라 같은 여성들이 보기에도 눈에 띄게 아름다운 아가씨여서 누구나 부러워하고 반할 정도의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를 두루 겸비한 아가씨였다.
아가씨의 미모가 그토록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수시로 많은 권유를 받아보기도 하였다. 미스코리아나 탤런트, 그리고 모델이나 영화배우로 나가보라는 권유였다. 실제로 그런 권유대로 나가본다 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런 미모를 갖춘 소유자였다.
이 세상 남녀가 대부분 다 그렇듯, 그리고 못났든 잘났든 결혼 적령기가 되면 누구나 좋은 배필을 만나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아보는 것이 한결같은 로망이 아닌가 한다.
이 아가씨 역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속마음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백마를 탄 왕자가 행운처럼 나타나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가씨에게 그런 꿈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백마를 탄 왕자라고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재벌의 2세쯤 되는 남자가 마침내 나타났던 것이다.
아가씨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그 남자 역시 돈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서글서글하면서도 마냥 착하게 생긴 그 남자 역시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이 맞아서 마침내 일사천리로 어느 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곧 보금자리로 들어가서 행복하고도 달콤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살림집 또한 보통 서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런 집이 아니었다.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이 있고 울타리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남자가 출근을 하거나 외출을 할 때는 으레 자동문이 소리없이 스르르 열리며 고급 외제차가 미끄러지듯 소리없이 그 집 주차장을 빠져 나오곤 하였다.
남자가 퇴근을 하거나 귀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을 할 때에도 손수 핸들을 잡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대기 중이던 기사가 정중히 예의를 다하며 운전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은 그 남자가 손수 핸들을 잡을 때도 있었다. 어디 볼 일이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같이 오붓하게 외출할 때가 바로 그때였다.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는 행복한 부부였으며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웃 사람들이나 지인들은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시촌이 땅을 샀을 때처럼 배가 아플 정도였다.
부부가 가끔 정답게 손을 잡고 외출을 하거나 귀가할 때도 눈에 띄곤 하였다. 그들 부부는 절대로 혼자 다니는 법이 없었다. 한시라도 서로 떨어져서는 못살 것처럼 늘 붙어서 손을 잡고 다니곤 하였다. 그야말로 눈꼴이 시어서 두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기도 하였다.
남자는 자신의 외모보다는 늘 아내의 외모를 꾸미고 가꾸는 일이 더욱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내가 사시사철 꾸미고 다니는 장신구와 시시때때로 바뀌는 고급스럽고 멋진 모자, 그리고 이른바 각종 명품 가방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러기에 아내는 더욱 행복했다.
결혼 초 얼마 후까지 아내는 그런 남편이 눈물겹도록 한없이 고마웠다. 이 세상에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자신만을 아껴주며 마치 공주처럼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는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 겪고 보니 그것은 진정 행복이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새장에 갇힌 한 마리의 새에 불과했다. 그리고 완전히 한 남자의 노리개이며 살아 있는 인형이었다.
그 여인의 속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여인을 보고 여전히 몹시 부러워하고 있겠지만,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은 일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와 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지친 듯,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가만히 들어보면 어쩌면 슬픔에 젖어 있는 목소리 같기도 하였다. 어쩌면 손 안에 잡힌 작은 새의 울부짖는 몸부림 같기도 하였다.
나 역시 그녀가 늘 부러움 속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너무나 뜻밖이어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한숨을 토해내듯 쏟아놓고 있었다. 어쩌면 한가닥 막연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몸부림처럼 가엾은 연민을 느끼게 하기도 하였다.
첫째
그녀는 절대로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반드시 남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친구를 만나는 일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어딜 갈 때마다 남자가 같이 동행하는 조건이라야 허락이 된다고 하였다.
둘째
남자 친구들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아내와 같이 동반해서 참석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집에서 쉬고 싶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끌고 간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여러 사람들이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셋째
백화점이나 명품 상점을 자주 드나든다고 하였다. 아내의 최신 유행하는 옷이나 장신구, 그리고 유행과 철에 맞는 모자, 그리고 가방을 자주 사주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쇼핑을 할 때에도 어쩌다 아내가 마음에 든다는 의상이나 장신구보다는 남자 본위로 남자의 마음에 드는 것을 항상 구입하곤 한다고 하였다. 결국은 본인은 마음에 들든 말든 남자(주인)의 마음에 드는 것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하였다.
넷째
어쩌다 친정 부모를 만나러 갈 때에도 반드시 승낙을 받아야 하며 승낙을 받았다 해도 혼자가 아닌 남자와 함께 가는 조건이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혼자 외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새의 처량한 신세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런 남자와는 절대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고 하였다.
다섯 째
매일 지금 당장이라도 헤어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 역시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어서 고민 중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친정 부모에게 그런 하소연이라도 하게 되면 너처럼 행복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느냐며 펄쩍 뛴다는 것이다.
이렇게 친정 부모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는 자신의 속마음을 그 누구가 이해해 줄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었다.
세상에 그런 불행한 삶도 있을까! 겉으로 보아서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분명히 새장 안에 갇힌 한 마리의 가련한 새의 신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남자가 가는 곳마다 아무리 싫어도 졸졸 따라다녀야만 하는 애완견이나 다름없는 불쌍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진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