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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ug 05. 2022

옛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살았을까?

[입을 만한 옷이 귀했던 시절]

옛날(1940년대)에는 어떤 옷을 입고 살았을까?     


물론 도시와 시골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내가 태어난 시골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부분 입고 다닐만한 옷이 넉넉지 못했던 것 같다.       


남자는 주로 우리 고유의 한복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녔으며 여자 역시 치마저고리 한두 벌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남자의 옷    

 

남자들은 대부분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활동을 하였다. 내복이 없던 시절이어서 겨울철에는 따뜻하게 솜을 두툼하게 넣어 만든 바지와 저고리를 속에 내복이 없이 맨몸에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쩌다 멀리 외출할 일이 생기거나 나들이를 할 때는 바지저고리조끼, 그리고 고작해야 검정, 또는 흰색 두루마기를 그 위에 하나 더 입고 길을 나서곤 하였다.     


평소에는 바지를 입은 다음 흘러내리지 않게 혁대 대신 허리띠로 질끈 졸라매고 다녔다. 그리고 보통 때는 바짓가랑이에 대님을 매지 않고 바지단을 접고 다녔다.       


그러나 특별히 읍내 장에 볼 일이 있거나 그 밖에 나들이를 할 일이 생겨 멀리 외출을 할 때는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신경을 써서 예의를 갖춘다고 해야 고작 바지 차림에 버선이나 한 가지 더 신고 대님을 정성들여 잘 맨 다음 짚신 또는 검정 고무신, 그리고  흰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거기서 멋을 더 내고 싶으면 중절모를 쓰고 다니기도 하였다.      


또한 마을에 누군가가 양복이라도 한 벌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몸에 맞든 맞지 않든 그 양복을 빌려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입고 다니다가 돌려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무더운 여름철에 남자들은 늘 적삼 입고 활동을 하였다. 적삼이란 보통 때 입는 저고리 모양과 같은 위에 입는 옷으로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하게 겹이 아닌 홑으로 만든 옷이었다.      


런닝셔츠가 없던 시절이어서 맨몸에 적삼만 걸치고 다녔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이었다. 더구나 모시나 인조견으로 만든 적삼을 입으면 더욱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곤 하였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또 여름에는 길다란 바지 대신 무릎까지 닿게 짧게 만든 홑바지인 잠방이를 입고 다녔다. 우리 마을에서는 잠방이를 대부분 잠뱅이라고 불렀는데 잠뱅이잠방이의 방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적삼잠방이는 무더운 여름철에 남자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었다. 그런데 이 잠방이를 입으면 팬티라는 것이 아예 없던 시절이어서 가끔은 속살이 훤하게 비쳐 보이는 바람에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나 옷을 입은 사람이나 민망할 때가 많았다.   

   

여자의 옷


워낙 옷이 귀했던 시절이어서 여자들의 의상 또한 남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내복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여자들도 겨울에는 솜을 두툼하게 넣은 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다녔으며 속치마와 겉치마를 같이 껴입기도 하였다.   

   

홑치마를 입으면 아무래도 춥기 때문에 천이 겹으로 된 겹치마를 만들어 입었으며 그래도 추울 때는 이른바 몸빼바지라는 것을 즐겨 입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옷감은 대부분 따뜻한 털이 아닌 삼베가 아니면 모시, 인조견, 무명, 옥양목, 광목 등이어서 따뜻하지를 않았다. 옥양목이란 생목보다 발이 고운 무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겨울에는 특히 솜을 많이 이용하였다. 솜이 그렇게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때는 집집마다 목화를 심는 집들이 많았다.      


목화를 수확하려면 목화밭으로 다니며 일일이 하얀 솜을 손으로 따야 한다. 목화를 땄다고 하여 그냥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목화 속에 들어있는 목화씨를 일일이 씨아를 돌려가며 뽑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뽑아낸 솜은 다시 솜틀을 돌려가며 솜을 고르게 펴야 한다.  

    

씨아목화씨를 빼내는 기구이며 솜틀이란 목화씨를 빼낸 뭉친 솜을 곱게 부풀려 펴내는 기구의 이름을 말한다. 옛날에는 웬만한 집에는 씨아솜틀 기구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목화가 많을 때는 대랑의 목화를 고르게 펴낼 수 있는 기계를 돌리는 솜틀집에 갖다 맡기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읍내에 가면 솜틀집도 많았다.        


목화를 따서 솜을 만든 뒤에는 솜으로 여러 가지로 이용되었다. 물레를 돌려가며 실을 만들어 바느질도 하고, 겨울철에 입을 옷에 솜을 많이 넣기도 하였으며 이불 속에 넣기도 하였다.      


그때는 내복도 없었지만 팬티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팬티 대신 속속곳 또는 단속곳을 팬티 대신 입고 다녔다. 그리고 그 위에 고쟁이를 입었다. 고쟁이는 여름용 여자 바지로 가랑이 통은 넓게 생겼으며 바지 끝부분은 좁고 바지 밑은 터져있는 옷이었다.    

  

속옷      


앞에서도 잠깐 설명한 대로 내복팬티가 전혀 볼 수 없던 시절이어서 남녀노소 모두 맨몸에 바지저고리만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내복과 팬티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용 브래지어도 없었다. 요즘은 여성용 브래지어들은 그 크기와 색상, 질감 등 그 종류가 각양각색이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브래지어를 얼마든지 골라서 착용하고 다니며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기에 자신의 가슴을 보다 크고 예뻐 보이게 하기 위해 거기에 맞는 브래지어를 얼마든지 골라 착용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가슴 수술까지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옛날에는 여자의 가슴이 볼록하게 나오는 자연적인 현상까지 수치와 흉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볼록하게 나온 가슴을 수치스럽게 여긴 나머지 이를 안 보이게 감추기 위해 어깨끈이 달린 치마를 입고 그 위에 가슴 부분을 천으로 바짝 동여매고 다니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임신을 하여 배가 불룩하게 나오는 것 역시 수치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특히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은 배가 나온 것을 감추지 위해 배에 복대를 바짝 동여매고 다니기도 하였다.         


옷이 귀해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옷이 워낙 귀해서 옷이 단벌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끔 집집마다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하였다.      


가령 친척 집이나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서 꼭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마침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지저분하게 더러워졌다면 벗어서 깨끗하게 빨래를 해야 한다.


그런데 마침 입고 있던 옷이 단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빨래가 마를 때까지 다른 옷으로 바꾸어 입어야 하는데 옷이 단벌이라면 별수 없이 벌거벗은 채로 빨래가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경우 알몸이 된 채 집안에 틀어박힌 채 이불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빨래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건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따뜻한 봄가을이나 여름철에는 옷을 입지 않고 알몸으로 다니는 아이들이 꽤나 많았다. 부끄러움도 몰랐다. 그렇게 벌거벗고 다니며 노는 것은 아직 철이 덜 든 어린아이들이었지만, 서너 살까지 그렇게 벗고 다니며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벌거벗고 다닌 것은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기절초풍을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때는 으레 누구나 그러려니 하고 남녀가 벌거벗은 채로 같이 어울리며 소꿉놀이는 물론, 무더운 여름철에는 개울물로 첨벙 들어가서 멱도 같이 감으며 즐겁게 물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옷이 너무 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거나 지금 생각하면 그 모두가 어느덧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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