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Sep 02. 2022

내가 어렸을 때는(2)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때까지 가족들의 등에 업혀서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몸이 너무 허약했기 때문에 시오리 길을 혼자 걸어서 다니기가 힘에 겨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3월이 되자 저절로 2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1학년 때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워낙 몸이 허약하고 잔병 치레를 하는 바람에 결석도 많았다. 그런 내가 우등상장을 받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상장을 주기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받긴 했지만 나에게 우등상장이란 것은 그것이 맨 처음이자 마지막 상장이 되고 말았다. 그 뒤로는 늘 성적이 바닥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친구들에게 늘 놀림감으로 지내면서 그나마 1학년을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담임 선생님의 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친구들 모두가 나를 놀리고 괴롭히며 못살게 굴었지만, 담임 선생님만은 항상 내 편이었으며 늘 변함없이 따뜻하게 대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인자하게 생긴 남자 선생님이었다. 나에게는 참 자상하면서도 따뜻하고 고마운 은인이었기에 지금도 그 선생님의 은혜와 고마움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고 있다.      


미술가의 꿈


 2학년 되자 담임 선생님도 다른 분으로 새로 바뀌었다.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멀리 전근을 가고, 그 대신 이번에도 다른 남자 선생님이 우리 반의 담임 선생님이 되신 것이다. 몹시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 2학년이 되었지만, 그때도 식구들의 등에 업혀서 학교에 다닌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웬만하면 혼자 스스로 걸어서 다녀보려고 애를 써보았다. 친구들이 여전히 놀리고 괴롭히는 것이 부끄러워 나 혼자 스스로 걸어가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내맘 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오리나 되는 학교 길이 너무 멀다 보니 힘에 딸려서 가다가다 쉬었다 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번번이 지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미술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미술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그대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미술책에는 하얀 여백에 맛있게 익은 감 몇 개가 매달린 감 나뭇가지가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을 보고 그대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임화를 그리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모두 신바람이 나서 환호성을 지르며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크레용으로 우선 밑그림부터 그려놓고 미술책을 보며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선생님은 교실을 빙빙 돌며 잘못 그린 그림을 하나하나 바르게 그리도록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새 선생님이 내 앞까지 와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다가 들킨 죄인처럼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꾸중이라도 하시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동안 내 그림을 아무 말없이 살펴보고 있던 선생님이 내 그림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내 그림을 손에 들고 아무 말없이 교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아무 말도 못하고 선생님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잘못되었다고 여러 아이들 앞에서 설명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생각 때문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여러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던 나였기에 앞으로는 그림 때문에 더욱 큰 놀림감이 될 것이 불을 보듯 훤하겠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잘 보이도록 내 그림을 교단 앞에서 활짝 펼쳐 보이면서 내 그림에 대한 칭찬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분! 잠깐 이 그림을 좀 보세요! 색칠도 그렇고, 명암도 그렇고, 구도도 그렇고 너무나 잘 그렸죠? 여러분들도 이 그림처럼 잘 그려보도록 하세요!“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때 내가 그린 그림이 잘 그려진 그림인지 아닌지를 지금도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틀림없이 꾸중을 듣고 창피를 당할 줄 알았는데 이런 칭찬을 받게 되다니! 선생님한테 이런 칭찬을 들어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갑자기 하늘 위로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난 그날부터 학교가 그렇게 좋아질 수가 없었다. 잠만 자고나면 얼른 학교로 가고 싶었다. 선생님의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였다. 선생님만 바라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픈 줄 모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선생님이 좋을 수가 없었다.

      

난 그날 이후부터 틈만 나면 다른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종이가 몹시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종이만 보이면 그저 미친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내가 틈틈이 그린 그림은 집 벽에 되는 대로 자랑스럽게 밥풀로 붙이곤 하였다. 종이가 일정하지 않고 크고 작아서 벽에 붙인 그림의 모양이 오합지졸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우리 집으로 마실을 온 마을 사람들도 내 그림을 보고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바람에 그때부터 나의 꿈은 오직 장차 미술가가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림에 취미를 붙인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공부는 뒷전이고 줄곧 미술부에 들어가서 틈만 나면 마치 화가라도 된듯 이젤을 버티어 놓고 열심히 그림(수채화)을 그리곤 하였다.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     


그것은 한 학생의 앞날을 크게 좌우하는 위대한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 )

매거진의 이전글 옛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살았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