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는 지금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어디론가 급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콧노래뿐만이 아닙니다. 휘파람도 절로 나옵니다.
어느새 서쪽 하늘에 걸린 해님은 지금 막 한창 서산 너머로 넘어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하루 종일 뜨겁게 달구어졌던 해님의 얼굴이 더욱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민수의 이마에서도 어느새 구슬 같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한여름 못지않게 후덥지근한 날씨가 여러 날 되풀이되고 있는 걸 보면, 올해는 다른 해보다 더 빨리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나 봅니다.
이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땀방울을 연신 닦아 내고 있는 민수의 걸음걸이는 아까보다 더욱 빨라집니다.
마음도 몸도 몹시 급하기만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더운 것도 있은 채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민수는 그동안 오늘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내일 엄마가 깜짝 놀라며 몹시 기뻐할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토록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틈에 시장에 있는 커다란 옷 가게 앞에 다다른 민수는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이 없이 선뜻 옷 가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아름답고 예쁜 얼굴에 늘씬한 몸매의 점원 아가씨가 조금은 의아한 표정으로 민수를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그 가게는 주로 멋쟁이 아가씨들이나 젊은 아줌마들의 옷을 파는 가게였기 때문입니다.
민수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한동안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원피스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 진열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습니다.
화려한 색깔의 무늬가 박힌 고급스럽고 예쁜 원피스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그제야 겨우 궁금증이 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가씨는 조금 망설이다가 여전히 걱정스랍다는 표정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아가씨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며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보석처럼 반짝이던 아가씨의 두 눈동자가 다시 어두워지며 난감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가씨의 물음에 민수는 이번에도 엄마가 몹시 자랑스럽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얼른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민수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아까보다 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아가씨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민수는 더욱 환해진 얼굴로 싱글벙글웃고만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곧 요즈음 한창 멋쟁이 아줌마들이 즐겨 입는 최신 상품의 원피스 하나를 골랐습니다. 흰색 바탕에 파란 물방울 모양 무늬가 찍힌 화려하고 예쁜 원피스였습니다.
그러나 민수는 아가씨가 권하는 옷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면서도 어딘가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민수의 머릿속에 문득 작년 여름 어느 날의 기억이 번개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날, 민수는 시장에 갔던 엄마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민수는 엄마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습니다.
어느 젊은 아줌마가 한껏 멋을 낸 옷차림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습니다.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시원스런 체크무늬의 차림, 거기다가 예쁜 양산을 받쳐 든 아줌마의 모습, 그것은 민수가 보기에도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민수가 이렇게 대답하자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민수를 두 팔로 꼭 껴안은 채 한동안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망설이고 있던 민수가 옷걸이에 체크무늬 원피스를 가리키며 아가씨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민수는 결국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골랐습니다. 작년에 그 멋쟁이 아줌마가 입고 있었던 것과 비슷한 체크무늬 원피스였습니다. 바탕 색깔이나 무늬도 그 아줌마가 입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색깔의 원피스였습니다.
민수가 골른 원피스를 아가씨는 예쁜 포장지로 정성껏 포장한 다음 예쁜 종이가방에 넣어 주었습니다.
값을 치른 민수는 신바람이 나서 급히 가게 문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다음 날 오후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가씨가 은근히 걱정했던 대로 결국 일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민수가 어제 산 원피스를 들고 바꾸러 온 것입니다. 이번에는 엄마의 몸 치수가 정확하게 적힌 쪽지를 아가씨에게 내밀었습니다.
쪽지를 본 아가씨의 눈이 갑자기 둥그런 접시만큼이나 커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민수가 내민 쪽지에는 여성들의 옷으로는 보기 드문, 가장 큰 사이즈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가씨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가면서 민수에게 물었습니다.
민수의 대답은 여전히 당당하고도 자신있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러자 민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여전히 서슴지 않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아가씨는 또 다시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삼키면서 다시 치수에 맞는 옷을 골라 민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민수가 가겟문을 나서자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아가씨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갑자기 무릎을 쳤습니다.
순간 아가씨는 비로소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이나 사람들 역시 고운 마음, 그리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 그 모두가 곱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보이게 된다는 값진 진리를…….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미움의 눈으로 바라보면 눈에 띄는 보이는 것 모두가 내 눈에 들지 않고 못마땅하고 불만스러워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아가씨는 갑자기 손뼉을 치며 환하게 밝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급히 꺼내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아가씨는 오래전부터 남자 친구와 사귀어 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남자 친구가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아 연락을 끊고 지내던 중이었습니다.
남자 친구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들 모두가 갑자기 장점으로 바뀌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