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바가지]
부부간의 사랑과 애정이 아무리 두텁고 깨가 쏟아질 것처럼 행복한 부부라 해도 오래 살다 보면 가끔은 서로 뜻이 맞지 않아서, 그러기에 때로는 예기치 못했던 충돌로 이어지면서 별 수 없이 큰소리를 내며 다투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나 역시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부부싸움에서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상대방의 심정을 이해해 보려고 무던히 노력도 해 보고 큰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도 많이 써 보곤 하지만, 도무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곤 할 때마다 종종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이 세상에 결코 똑같은 것은 단 한 가지라도 존재할 수가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리 똑같아 보이는 닮은꼴이 있다고 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다른 면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속이든 겉이든, 어디가 달라도 다른 면이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예를 들자면, 한날한시 같은 시각에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주 짧은 시차를 두고 태어난 쌍둥이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성격이나 생김새 등 어딘가 모르게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은 쑥스러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 역시 가끔은 아내의 쓸데없는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더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언성을 높이며 다툼이 벌어지곤 할 때가 있다.
그런 다툼이 벌어지곤 할 때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옛날 학창 시절 어느 담임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는 지금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나 옹졸하고 너그럽지 못했나 하는 자책감에 번번이 뒤늦은 자성의 기회를 갖곤 한다.
선생님은 어쩌다 반 아이들끼리 싸울 때마다 싸움을 한 장본인들을 불러 앉혀 놓고 이런 이야기로 조용히 타일러 주곤 하셨다.
그 후, 수십 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어떤 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그 선생님의 음성이 문득 되살아나곤 하였다. 그리고 백 번 지당한 말씀이라는 생각에 잠시 불끈했던 나의 감정이 마치 봄눈 녹듯 슬그머니 사그라들곤 하였다.
따지고 보면 부부 역시 서로 각기 다른 환경과 다른 부모 밑에서 성장한 남남이 아니었던가. 그런 남남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룬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두 사람의 생각이나 뜻이 자신의 마음과 똑같기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어찌 보면 당치도 않은 희망 사항일 뿐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문득 '바가지'란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아내의 바가지로 인해 가끔 큰소리를 내는 일이 벌어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바가지란 주로 물을 뜨거나 물건을 담는 데 쓰는 둥그런 모양의 그릇,
둘째, 수 관형사 뒤에서 의존적 용법으로 쓰이며, 분량을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 그리고 셋째는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나 불평의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일부 명사 위에 붙어 그것을 낮잡아 이르는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일, 바가지요금, 고생바가지, 욕바가지, 똥바가지 등, 새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나 불평에 대한 나의 견해를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거듭 되풀이하고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거대한 우주 안에 공존하는 모든 삼라만상이 그렇듯 인간의 생김새와 성격, 그리고 성질 또한 천태만상이요. 각양각색이라는 것을 나 자신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어찌 부부라고 해서 두 사람의 생각이나 성격, 그리고 색깔이 똑같기를 바랄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무관심'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래서 일찍이 저 유명한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우리들의 인류에 대한 최대의 죄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그리고 어떤 짓을 하든, 남들이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관심 밖으로 방치해 버린다면 아마 세상에서 그보다 더 힘든 고통과 고문은 없으리라.
이 세상 남편들의 대부분은 솔직히 바가지를 긁지 않는 아내를 원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라.
가령, 어떤 남편이 몹시 바람을 피우거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든, 그리고 외도와 도박으로 인해 가진 재산을 탕진하든 말든, 전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덤덤하게 방관한다면 그게 어찌 훌륭한 아내이며 참된 아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어쩌다 남편이 그릇된 행동을 할 때마다 잔소리와 불평, 그리고 적당한 충고를 할 줄 아는 아내가 진정 그 가정의 좀 더 나은 앞날의 행복을 위한, 그리고 남편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 오리려 도리가 아니겠는가.
옥에도 티가 있고, 불협화음 속에서도 듣기 좋은 고른 음은 반드시 내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듣기에 좋은 칭찬의 소리는 당장은 달게 들리겠지만, 결국은 내게 독으로 변하여 큰 해를 끼치게 될 수 있고, 이와 반대로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당장은 거북하고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 결국은 나에게 보약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은 명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내의 잔소리는 결코 옥에 묻은 티도 아니요. 불협화음으로당장은 기분 나쁘게도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오직 두 사람 사이의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명약이요. 보약보다 더 효과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결혼 초에는 어쩌다 바가지를 긁는 아내가 솔직히 짜증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러울 때도 한부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원이 지난 지금 나의 생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며시 그와는 정반대로 변하고 말았다.
그래서 가끔은 심심치 않게 바가지를 긁는 아내가 더 자랑스럽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기도 하다고…….
다시 한번 잠시 생각해 보라.
어쩌다 남편이 그 어떤 잘못이나 실수를 했을 때. 아내가 그때마다 바가지를 긁기는커녕 전혀 아무 반응조차 없이 무관심한 태도로 그냥 넘어가곤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불행은 일이겠는가.
그리고 그 얼마나 재미가 없다 못해 끔찍한 가정이란 말인가.
그러기에 난 언제인가부터 때로는 반찬을 만들 때 양념을 적당히 넣어야 제맛이 나듯 가끔은 적당히 바가지를 긁는 아내가 있어야 원만한 가정, 그리고 참되고 행복한 가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계속 적당히 바가지를 긁을 줄 아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희망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