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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an 23. 2020

 즐거움과 행복

[제대로 미친 자 만이 누릴 수있는 특권이다] 

     동요 ’고향의 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누구나 즐겨 부르고 있는 국민 동요곡 중의 하나이다. 누구나 이미 잘 알고 계시는 일이겠지만 이 동요는 홍난파 선생이 작곡을 하였고, 노랫말은 이원수 선생이 쓴 곡이다. 

    뜬금없이 웬 ‘고향의 봄’ 타령이냐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다. 그러기에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라도 ‘고향의 봄’ 을 끄집어 내게 된 이유부터 먼저 밝혀야만 하겠다. 바로 이 곡의 노랫말을 쓴 우리나라 아동문학가의 거장이신 이원수 선생의 이야기를 잠깐 언급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원수 선생은 수많은 동요의 노랫말은 물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화와 소년소설도 쓰신 분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동요 하나를 더 꼽는다면  ‘겨울나무’라는 곡의 노랫말도 쓰신 분이다.  

   1972년 후반기쯤, 선생은 마침내 ‘한국아동문학가협회‘라는 단체를 창립하여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본인 역시 마침 그해에 동화로 등단을 하였기에 그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난생 처음 문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알량하나마 자부심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그분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느냐고요? 

    네, 다름이 아니라 이분, 즉, 이원수 선생이 얼마나 글에 대한 집착과 집념이 대단했던 분인가를 다시 한번 여러분과 다 같이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글을 써야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피부암으로 인해 유명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오랜 투병 끝에 안타깝게도 마침내 74세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소문에 의하면 그 분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좀처럼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당신의 글을 한 가지라도 이 세상에 더 남겨놓고야 말겠다는 갈망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운명하기 20분 전까지 병상 침대에서 글을 쓰다가 마침내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아마 그러면서도 선생은 남들이 감히 느끼지 못할 매우 즐겁고도 행복한 순간을 느끼셨으리라.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자 크게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크게 감동한 나머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러나 똑같은 둥근 보름달을 한 자리에 서서 바라보면서도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은 각각 다르다고 했던가. 어떤 사람은 기쁨에 들떠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가 하면, 같은 달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더라고…….

   그랬다. 그게 맞는 말이었다. 내 기껏 감동할 줄 알고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감동하기는커녕 너무나 뜻밖의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는 바람에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만히 보니 그 사람 미친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죽어가면서도 글을 쓰면 

  뭐가 나온다고 그런 미친 짓을 해?”     

   

    당장 죽을 정도로 몸이 고통스러운데 그까짓 글 한 자를 더 남겨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며 미친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난 정말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기껏 열심히 이야기를 들려준 나 자신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다. 온몸의 힘이 금방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그때부터는 좀처럼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함부로 들려주지 않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아마 글을 좀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 번쯤은 경험했으리라.  

   글이란 마음 먹은 대로 기분 좋게 잘 써질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상하게 꽉 막혀서 도무지 한 글자도 더 써지지 않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는 평생을 글을 벗삼아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 실례로 우선 그 옛날 우리 조상들 중에 한 분의 선비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시 소개해 볼까 한다. 


    벌써 며칠째 쉬지 않고 글을 쓰던 선비는 그날도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꽉 막힌 채 도무지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며 다음 글을 이어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여전히 한 번 막힌 글은 좀처럼 풀리지를 않고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이에 생각다 못한 선비는 마침내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곧 하인을 방으로 불러들인 다음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모두 홀랑 벗어 하인에게 건네주며 이렇게 분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자, 어서 자네가 입고 있는 옷을 벗고 그 대신 내 옷을 입게나.  난 지금 쓰고 있던 글을 다    마치기 전에는 절대로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않을 작정이네. 그러니 밖에 나가거든 바로 내   방문을 자물쇠로 꼭 잠가놓고 아무도 내 방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해 주게나.” 


    그래서 입고 있던 옷을 모두 홀랑 벗어버린 선비는 결국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고 말았다. 알몸인 상태에서는 밖에 나가고 싶어도 함부로 밖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여러 날을 방속에 틀어박혀 열심히 글을 쓰던 선비는 마침내 글을 다 쓴 뒤에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우스운 이야기 한 토막이었다. 이 이야기 역시 어떤 사람이 들었다면 당장 미친 선비라고 흉을 보고 말았겠지만……. 

   어쨌거나 정말 글에 웬만큼 애착과 집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단한 결심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 이야기 역시 어떤 사람이 들으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고도 남을 일이겠지만…….  


   그런데 근래에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그 선비 못지않게 대단한 집념을 불태운 소설가 한 분이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바로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알고 유명한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한다.      

   꽤나 오래전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열심히 글을 쓰고 있던 선생은 그날따라 좀처럼 글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생각다 못한 선생은 마침내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단한 아이디어 한 가지를 생각해 냈다. 이제부터는 글을 다 쓰기 전에는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절대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고물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뒤지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쓰다가 버린 철창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철창문을 구하게 되자 그는 바로 늘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하고 있던 자신의 방에 그 철창문을 바꾸어 달고 난 다음 부인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난 오늘부터 열심히 글을 쓸 생각이오. 그리고 글 한 편을 완전히 마치기 전까지는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을 생각이오. 그러니 끼니때가 되면 그때마다 음식을 이 철창 구멍으로 넣어주시오.“     

   그 후, 몇 달이고 꼼짝없이 방에만 앉아 집필에만 몰두하다가 결국 탈고를 한 뒤에야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토록 어떤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면서까지 무섭도록 강한 집념을 불태웠던 것이다. 그야말로 글을 써야 하겠다는 집착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준 또 하나의 예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외수 선생의 숨은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 싶다.   

   지독히 추운 어느 해의 겨울밤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마침 겨울 장면이 나오는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던 선생은 몹시 추운 날씨를 강하게 표현해야 할 대목이 나왔다고 한다. 선생은 갑자기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표현했던 글과는 다른 어휘를 생각해 내려고 했지만 좀처럼 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마침내 그 추운 겨울에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버린 채 알몸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 날씨를 실제로 직접 몸소 체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무서운 추위를 알몸으로 견디며 버티다가 마침내 마음에 드는 어휘 한  구절을 떠올린 다음에야 도로 방으로 들어와 쓰던 글을 계속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때 모진 추위와 싸워 맞바꾼 구절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마치 면도날로 맨살을 도려내는 듯한 매서운 추위’라는 짦막한 어휘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뭐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굳이 거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요? 

  그렇습니다. 평소에 글을 그저 우습게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 역시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짓을 왜 하느냐는 비웃음을 받고도 남을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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