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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01. 2020

세상에 이런 망신이

[넋두리 한 마디]

   문득 아주 오래전의 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갑자기 지방에 볼일이 생겨서 손수 차를 몰고 내려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어느 호젓한 산길을 여유 있게 달리고 있을 때였다.   

   

 마침 산 중턱에는 간이 버스 정류장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스부살이 가까워 보이는 10대 소녀 두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곧 좋은 일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는 마음에 어른 차를 세우고 그 소녀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는 길인지요? 그리고 가는 방향이 같다면 얼른 타요.“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소녀들의 태도는 나의 예상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아예 아무 대꾸도 없이 쌀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면을 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반가움에 얼른 차에 올라탈 줄 알았던 내 예상은 삽시간에 산산조각이 나며 빗나가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경우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순간, 나는 몹시 무안하기도 하고, 멋쩍기도 하면서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난감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내가 지나친 오지랖이었나, 공연히 괜한 친절을 베풀려는 마음을 가졌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몹시 원망스럽고 후회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왕에 엎질러진 물. 더 이상 어쩌는 수가 없어서 한동안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가 그냥 멋쩍게 다시 출발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공연한 호의를 베풀었다는 생각에 그 뒤로 씁쓸한 입맛까지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아마 아무래도 그 소녀들은 나를 질이 안 좋은 치한쯤으로 여기고 겁을 냈던 모양이다. 

     

  ‘앞으로는 다시 절대로 그런 쓸데없는 짓을 말아야지!’     


  난 그 후부터 지금까지 두 번 다시 낯 모르는 사람을 내 차에 태워주는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요즘에는 세상 민심이 더욱 흉흉해져서 모르는 사람에게 차를 타라고 한다면 이상하게 생각함은 물론 당장 신고를 당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창피를 당한 그 일은 이미 40여 년 전의 일이 아니었던가.         


  내 어린 시절에는 어쩌다 시골 마을에 자동차 한 대가 들어오면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삽시간에 온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들어서 이리저리 자동차 구경을 하던 때가 있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무개네 집에 자동차가 들어왔었다는 소문은 한동안 온 마을에 퍼져나가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디 그뿐이랴. 


  어쩌다 멀리 자동차 한 대가 달리는 모습만 눈에 띄어도 아이들이 모두 달려가면서 한번만 태워달라고 소리소리치르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기가 일쑤였다. 


  자동차를 반기기는 논과 밭에서 바쁜 일을 하던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일손을 멈추고 두 손을 하늘 높이 힘껏 흔들어대며 자동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곤 하였다.  


  하기는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초등학교 사회책에는 뉴욕의 시가지를 질주하고 있는 차량들의 행렬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어찌나 부러웠던지.

그리고 그 당시 미국에는 이미 인구 4명당 1대꼴로 차를 소유하고 있다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자동차가 너무 많아 요즈음은 어딜 가나 자동차는 푸대접을 받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이다. 뉴욕은 저리 가라가 되고 말았다. 

어딜 가나 주차금지 표지가 차를 쫓아내고 있고, 그나마 볼 일이 있어서 잠깐 주차를 했다 하면 어느 틈에 스티커가 발부되어 하루 일당이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자동차가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이고 몰고 다니기조차 너무나 부담스럽고 겁이 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자동차가 드물고 가난했던 그 시절, 왠지 그때가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비록 가난하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긴 하였지만, 이웃 간에 따뜻한 인심과 정만큼은 훈훈했었다.

 

   아무리 살기 어려운 시절이긴 했지만, 요즘처럼 사람을 믿지 못한 나머지 두려운 마음에 사람이 무서워서 지레부터 겁을 먹고 사람을 피하던 이런 시절은 아니지 않았던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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