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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01. 2020

 어느 어머니 이야기

[그토록 자녀의 글짓기 과외를 갈망했던]


 


       


by겨울나무Jan 28. 2020


    어느덧 3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어느 날, 전화기의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무심코 수화기를 들고 보니 낯선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나를 찾는 전화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금세 차분하면서도 교양미가 흘러넘치는 어느 여인의 음성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른바 삐삐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여유가 좀 있는 사람들이나 가지고 다녔던 일종의 부의 상징물이기도 하였다. 


   나는 곧 자신도 모르게 호기심이 발동하여 전화를 걸게 된 용건을 묻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는 우연히 내가 낸 책을 읽어보게 되었단다. 그리고는 바로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집 전화번호까지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요즈음 같으면 개인정보법이니 뭐니 해서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여인은 슬하에 5학년에 재학 중인 외동딸 하나를 둔 분이며 우리 집과 그다지 거리도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걸게 된 것은 부디 그분의 따님의 글짓기 과외를 해줄 수 없느냐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솔직히 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모처럼 저절로 넝쿨째 굴러온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기가 싫었다. 

   하지만 아쉽고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여인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조금 이야기가 길어지겠다. 


   사실 난 그때 직장 일, 그리고 출판사나 잡지사 등 여기저기서 청탁을 받은 원고를 마감 날짜에 맞추기 위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밤잠까지 아끼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게 바로 즐거움의 비명이라 했던가. 게다가 심심치 않게 강의를 요청해 오는 곳도 몇 군데 있었고…….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모 출판사에서는 내가 쓴 원고만을 출판하고 다른 사람들 원고는 전혀 받지 않고 있어서 더욱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동화책 한 권을 내려면 원고지 50매 내외를 써내야만 했다. 한 권을 쓰고 나면 또 다시 500매, 그렇게 몇 권이 나오고 다시 200여 장을 쓰고 있던 어느 날, 난 마침내 몸살이 나고 말았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어쩌는 도리없이 출판사로 전화를 했다. 약 200여 매를 쓰다가 몸살이 나서 더 이상 못쓰겠으니 우선 이 원고를 먼저 보내드려야 하겠다고(그 당시는 이메일이 없어서 일단 탈고를 하면 직접 갖다 주거나 원고지를 우체국에 가서 등기로 우송했음)     


   출판사에서는 원고를 가지고 올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한 장이라도 더 써달라는 대답이었다. 지금 내 원고가 오지 않아 12명의 직원 전원이 내가 쓴 원고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놀고 있다고……. 


   상황이 그러니 몸살이 났다고 앓고 누워있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다문 원고지 몇 장이라도 쓰는 대로 가져가기 위해 출판사 직원이 수시로 우리 집을 드나들곤 하였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어찌 괴외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요즈음에는 이 역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창작동화를 싣던 잡지마다 동화 란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인터넷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책을 사서 읽는 어린이들도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시 그 여인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겠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며 정중히 거절하자 그 여인은 그렇게 바쁘면 당장이 아니라도 좋으니 혹시 언제라도 좋으니 시간이 나는 대로 연락해 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그날의 통화는 일단 거기서 끝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그 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도 여전히 바쁘냐고, 그리고 이번는 설상가상으로 글짓기 과외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그분의 따님 외에을 대여섯 명을 더 모아 놓았다면서 이른바 그룹과외라도 꼭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때 난 서울 강북에 살고 있었는데 그분은 내가 괴외비가 적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강남 수준 못지않은 과외비를 주겠다면서 다시 끈질기게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아무리 많은 과외비를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도저히 그럴 시간이 없다며 몇 번이고 거듭 죄송하다는 말로 사양을 하였다. 그리고 그토록 믿고 계속 간청을 해오는데 부탁을 하는데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면서 번번이 공연한 배짱을 부리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그 여인에게 몹시 미안하고 죄스럽기 그지없었다.    

  

   다음 날,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내가 먼저 그분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보다 그 방면에 아주 훌륭한 분을 한 분 소개해 드리겠다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무리 유명해도 싫다며 오직 내가 해주기를 바란다며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몇 시쯤에 잠을 자느냐고 물어왔다. 그리고는 새벽 한 시가 됐든, 두 시든, 제가 연락만 해준다면 잠이 든 아이들을 모두 깨워서라도 손수 차에 태워서 내 집으로 데리고 오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지독하게 끈질긴 분이 또 있을까요? 이토록 글짓기 과외를 시켜보려고 애를 쓰는 분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새벽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깨워서라도 데리고 오겠다니 나는 순간 어무나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거절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 다음에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다시 며칠 뒤에 전화가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 시간이 없다면 앞으로 그분의 따님이 직접 쓴 글을 전화를 동해 읽어줄 테니 어렵겠지만 간단한 평이라도 해 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부탁마저 거절한다면 정말 큰 죄인이 될 것만 같아 마지못해 응락을 하고 말았다. 


   그 뒤부터 그분은 밤만 되면 가끔 따님이 쓴 일기나 독후감, 그리고 논설문 등을 전화상으로 읽어주곤 하였다. 


   난 그때마다 부족하나마 나름대로 간단한 평을 해드리곤 하였다. 아마 그렇게 몇 개월 정도로 그 일이 지속되다가 그 뒤로는 어떻게 끝을 맺고 해방이 되었는지는 뚜렷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일 혹시라도 그분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 당시의 나를 어떻게 이해하실는지?      

   그리고 그분이 왜 그토록 따님의 글짓기 과외를 갈망했는지 그 이유를 나중에야 깨닫고 저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나중에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분은 국내에서 가장 손꼽히는 여자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고 한다. 그리고 학창시절부터 독서가 취미여서 새로 출간되는 웬만한 책은 모두 다 섭렵한 이른바 독서광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지만, 어쩌다 편지를 쓸 일이 생겨서 좀 써보려고 하면 문장이 자주 막히고 편지지 한 장을 쓰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따님도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독서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틈이 나는 대로 많은 책을 즐겨 읽고 있단다.  


   결국, 따님의 글짓기를 그토록 갈망하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따님 역시 엄마처럼 장차 문장력이 부족해서 편지 한 장 제대로 못 쓰게 되는 사람이 될 것 같은 걱정에서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기초 문장력이라고 길러주어야 하겠다는 절실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미 30년이나 지난 옛날의 이야기 한 토막을 너무나 장황한 이야기 한 토막을 회상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가끔 그분과의 일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마치 큰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그때 그분의 말대로 모든 걸 다 뿌리치고 기초 문장력만이라도 어느 정도 향상시켜 주었더라면 이렇게 후회스럽지는 않았을 것을…….      

 

   이 어머니와 말로 글짓기의 중요성을 가장 절실히 깨달은 분이 아니었을까! 날이 갈수록 나의 기억에서 점점 더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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