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의 이해]
사실 어떻게 보면 동시란 일반 산문을 쓰기 보다 훨씬 더 어려운 글이라 하겠다.
동시를 제대로 쓰려면 우선 남다른 관찰력과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남들이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을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예리한 관찰력, 그리고 자신만의 특색있는 독특한 낱말의 선택 즉, 새로운 시어(아름다운 표현)를 찾아내서 신중하게 써야 하고 또한 운율(리듬)과 음절이 알맞아야 하모니를 이루면서 글의 호흡이 맞아야만 훌륭한 동시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과거 어떤 유명 작가는 시를 쓸 때 낱말 하나하나는 마치 정밀기계의 나사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어서 낱말 하나를 더 넣어도 안 되고, 덜 넣어도 안 된다는 말을 남기기도 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문장력만 쌓여 있다면, 동시보다 훨씬 더 쓰기 쉬운 글이 바로 산문이라 하겠다.
산문은 동시처럼 운율과 음절 수를 맞추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까다로움이 없이 그저 자신의 생각을 보고 느낀 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 동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오래전,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야외에 모아놓고 글짓기 대회 즉, 백일장을 열었던 때의 한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다.
그날의 글짓기 주제는 ’시냇물‘이었다. 그리고 동시나 시, 그리고 산문 중에 임의대로 선택해서 자유롭게 쓰는 백일장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약 두 시간이었다.
그런데 백일장이 시작되자, 성급한 학생들은 미처 20분이 되기도 전에 자신이 쓴 원고지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제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제출한 글은 대부분 동시가 아니면 중고등학생들이 쓴 시였다.
그리고 그렇게 빨리 써낸 동시와 시들은 보나 마나 위에서 설명한 대로 남들이 이미 써놓은 동요나 동시, 그리고 시를 보고 흉내를 낸 것이 아니면 짜 맞추기를 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다.
이 동시는 잘 쓴 것 같기는 하지만 어디선가 서 많이 읽어 본 글 같다는 익숙한 느낌이 든다.
맞는 말이다. 이 글은 역시 그 옛날 ’여름 냇가‘라는 동요에 나오는 노랫말과 거의 비슷하게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실제로 ’여름 냇가‘라는 동요의 노랫말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어딘가 거의 비슷하게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이렇게 남의 글을 흉내내듯 비슷하게 쓴 글들은 아무리 자신이 잘 썼다고 해도 결코 자신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날, 백일장에서 뜻밖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웬 일인지 두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도 아직 한 명만은 원고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어린이였다.
그 한 명 때문에 백일징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인솔 교사와 학부모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아보니 그제야 그 어린이가 글을 다 완성했는지 저쪽 개울가에서 이쪽으로 부리나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아무도 없는 개울가로 혼자 가서 앉아 오랫동안 개울물 흐르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며 많은 생각을 하느라고 늦었다고 늦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린이는 감히 그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동시다운 동시를 써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그 어린이가 쓴 동시를 지금 가만히 떠올려 회상해 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글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시냇물의 물결을 오랫동안 가만히 관찰하고 살펴보다가 그 시냇물을 마침내 하나의 커다란 오선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힐 정도로 기발한 발견이란 말인가.
결국, 그날 백일장에서는 이 어린이가 쓴 글이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장원에 뽑히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날, 심사위원으로는 옛날 라디오에서 인기리에 연속 방송되었던 ’아차부인 재치부인‘의 방송작가 박서림 씨, 한국글짓기지도회 회장, 그리고 본인이었는데 결국 만장일치로 그 어린이를 장원으로 뽑아 올렸다.
이처럼 남들이 감히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 내고, 또한 관찰력과 상상력이 풍부해야만 마침내 훌륭한 동시가 빚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동시라고 해서 꼭 이런 식으로 써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각자 개성이 나타나는 독특한 글이 참다운 글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