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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r 31. 2020

아주 특별한 사랑

[나이를 초월한 사랑]

 사랑은 나이도 국경도 초월한다는 말을 흔히 들어왔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얼른 꼽자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한다.      


 나이도 그렇다. 언젠가 외국의 예를 보면 80대 남성이 무려 60살이나 연하인 20대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한때 큰 화젯거리라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도 실제로 이와 비슷한 예를 볼 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하, 하고 곧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유명한 어느 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불행하게도 뜻밖에도 50대 말에 사랑하는 부인을 잃고 말았다. 몹쓸 병에 결려  그만 손 쓸 겨를도 없이 갑자기 사망하게 된 것이다.    

  

부인은 매우 살림살이에 알뜰하고 성격도 온순하며 남편을 잘 따르는 한마디로 말해서 현모양처 증의 현모양처였다. 그러니 그런 부인을 갑자기 잃게 된 남편의 허탈하고 슬픈 심정이야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그는 별 도리없이 외동아들 하나를 데리고 두 식구가 쓸쓸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뒤, 인연이 닿아 운 좋게도 다시 둘째 부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차츰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청천 하늘의 날벼락이며 비극이란 말인가. 둘째 부인 역시 몇 해 살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병에 걸려 또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분의 슬픔이야말로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으리라.    

  

그런 허망하고도 슬픈 나날을 보내던 그 와중에 아들은 이미 성장해서 다행히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경사라는 결혼식장이었지만 그분은 힘이 하나도 없이 객석 뒤에 혼자 쓸쓸히 앉아 있는 모습이 얼마나 쓸쓸하고 안 돼 보이던지…….     


그 뒤로 그분은 살아갈 희망조차 잃은 채 체념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쳐 차례의 애경사를 치르다 보니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되고 거덜이 날 지경이 되고 말았다.  

    

문인이 돈을 모았으면 얼마나 모았으랴.      


그분은 마침내 별 도리없이 소유하고 있던 집까지 모두 청산하고 결국은 어느 집 옥탑방 하나를 사글세로 얻어 쓸쓸한 홀아비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런 비극이 어디 또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망한다더니 아마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때 그분의 나이 이미 65세 쯤 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2,3년쯤 홀아비로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분에게서 갑자기 한번 만나보자는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열 일 젖혀 놓고 곧 그분에게로 달려갔다.   

   

그날따라 그분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여느 때처럼 어두운 표정이 모두 사라지고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 얼굴로 왠지 수줍은 듯 만나자고 한 용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 이번에 다시 장가들기로 했어.“


수줍은 듯 천천히 시작한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날 우연히 어떤 여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여인이 청혼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인이 아니라 처녀였다. 놀랍게도 그분과는 무려 25살이나 연하의 처녀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분이 아주 오래전 교사로 재직했을 때 제자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그분이 혼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게다가 그 처녀는 보통 가정의 딸이 아니었다. 장관급 집안의 귀한 딸이었다. 그런데 마음에 맞는 남자가 없어 40대 중반까지 차일피일하다가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그분을 은근히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처녀의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단다. 


그의 부모는 지금까지 좋은 자리를 다 마다하더니 어째서 집 한 칸 없이 옥탑방에서 홀로 사는 홀아비한테 간다고 하느냐며 꾸지람과 호통을 받게 된 것이다.


더구나 나이도 스무 살이나 훨씬 더 많은 사람한테 가겠다는 것이냐며 그리고 여태까지 시집을 못 가더니 아주 미쳐버린 거 아니냐고 펄쩍 뛰었다. 

     

그래도 처녀가 뜻을 굽히지 않자, 그렇다면 아예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을 아주 끊어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그 처녀의 뜻도 강경했다. 연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을 꼭 모시고 싶다고 하며 시집을 오기로 결심을 굳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얼마 뒤, 두 사람은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같이 살아가게 되었다.    

  

그분은 전과 달리 옷차림도 너무나 깨끗하고 단정해졌다. 와이셔츠와 넥타이 등이 유난히 빳빳하게 날이 서고 산뜻했다. 그 모두가 새로 맞이한 부인이 틈이 날 때마다 정성을 다해 깨끗이 빨고 다려서 챙겨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절대로 한 번 먹던 반찬은 다시 먹지 않고 항상 시장에 나가서 새로 장만한 반찬만을 장만해서 정성껏 그분을 대접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부인에게 농담삼아 물어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신 이렇게 가진 것이라고는 없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늙은이에게 뭐가 좋아서 온 거야?“    

 

그러자 부인은 한껏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이에 대답했다고 한다.  

    

”전 아무것도 다 필요없어요. 비록 앉은뱅이 쪽 상에 앉아 밥을 먹더라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먹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 그 이상의 행복은 없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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