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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pr 23. 2020

자리를 양보해 준 고마운 학생들

[아름다운 미담]

요즈음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겠지만 그건 대중교통이 아니라 전쟁터이며 아수라장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버스도 그렇지만 특히 전철이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오죽하면 지옥철이란 말이 새로 생기게 되었을까. 그야말로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다.      


어쩌다 운이 좋아 자리가 하나 보여서 그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어느 틈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재빠른 동작으로 달려가서 궁둥이부터 붙이고 앉아버린다. 다리가 먼저 가는 게 아니라 궁둥이가 먼저 가는 특수 훈련을 받은 사람들 같다 .           


평소에는 하나같이 점잖아 보이던 사람들도 그럴 때는 참 놀랍도록 동작들이 민첩하고 빠르기가 이를 데 없다. 마치 자리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특수훈련을 받은 결사대들의 동작과도 같이…….     


그러기에 나처럼 동작이 느리거나 젊잖게 걸어가다가는 그때마다 번번이 자리를 놓쳐버리기가 일쑤이다. 아니, 놓쳐버리는 게 아니라 빼앗겨 버린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닭 쫓던 개꼴이라고 해야 할까, 공연히 민망하다는 생각에 그 앞에 서 있기도 왠지 가시방석처럼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줄을 이어선 자동차의 행렬, 마치 거북이보다 더 느린 속도이기가 일쑤이니 차라리 걸어가는 것보다 느릴 때가 더 많아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애가 타고 속이 타며 침이 마를 지경이다. 이 역시 전쟁이나 다름없다.     

 

난 그래서 그럴 때마다 가끔 혼자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그리고 밥은 거저먹는 게 아니며, 한 끼의 밥을 벌어먹기가 그토록 어려우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약 70년 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미국 뉴욕 거리의 줄을 이어 주행하고 있는 자동차의 행렬이 사진으로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에는 이미 국민 4명당 1대꼴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미국이 몹시 부러웠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언제나 미국처럼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인가 하고 은근히 동경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확실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미국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보유한 나라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자동차가 하나의 문명의 이기가 아닌 그야말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만 것 같다. 여기를 가도 자동차 저길 가도 자동차여서 가는 곳마다 구박을 받고 애물단지가 된 지 이미 오래인 듯하다. 그래서 과유불급, 즉 적어도 걱정 많아도 걱정이라더니 그런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실감하기도 한다.     

       

며칠 전, 우리 부부가 볼 일이 생겨 서울에 올라간 적이 있다.      


볼 일이란 가끔 대학병원에 정기적으로 검사와 진료를 받으러 가는 일, 그리고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식들을 보러 가는 일, 또한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가는 일, 등이 고작이었다.   

   

그날도 볼 일을 모두 마치고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을 이용하였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 일찍 돌아오려고 했으나 어쩌다 오늘도 출퇴근 시간을 피하지 못하고 전철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는 주로 승용차를 이용하곤 하는데 그날은 특별히 여기저기 볼 일이 많아 주차 문제로 오히려 승용차가 불편할 것 같아 전철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전철에 오르자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이미 예상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승객들이 콩나물시루처럼 어찌나 꽉 찼는지 서서 가기에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웬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남학생 한 명이 우리가 서있는 곁으로 슬며시 다가오더니 저쪽에 자리가 있으니 앉아서 가라고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 구세주란 말인가!    

 

그 학생은 현재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학생이 아니었다. 좀 먼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가 우리 부부를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난 다리도 몹시 아프고 피곤하던 참이어서 몹시 고맙고 반갑긴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몇 번이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했다. 그러나 그 학생은 고맙게도 끝까지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로 우리 부부를 안내했다. 


그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에는 또 한 명의 그의 친구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며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 부부 모두 그 학생들의 도움 덕분에 편안히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학생의 끈질긴 권유와 성의에 못 이겨 얼떨결에 고맙게 일단 자리에 앉긴 했지만 얼마나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면서도 그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어색하기도 했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 두 학생은 현재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 사이였으며, 두 학생 모두 우리가 하차할 목적지까지 같이 가는 길이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8개의 정거장이 남아 있었다.      


전철은 여전히 만원 상태여서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두 학생은 계속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끔 자리에 앉아가라고 권해 보았지만, 상냥하게 웃는 낯으로 괜찮다며 끝까지 서서 올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자리에 앉아 편히 오긴 했지만 생각처럼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다.


두 학생의 곱고 고운 심성은 몹시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사람처럼 괴로웠었다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전철에서 두 학생과 같이 내린 후 나는 그 두 학생에게 그냥 아무 말 없이 헤어지기가 좀 아쉽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자세히 묻게 되었다.  

    

재학 중인 학교와 그리고 학년 반 등, 그들은 헤어질 때에도 여느 학생들과는 달리  허리까지 깊이 숙여가며 몇 번이고 공손히 예의를 다하여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고는 헤어지고 말았다.     


그 두 학생의 보기 드문 예의 바르고 어른을 배려해줄 줄 아는 따뜻한 온정은 오래오래 우리 부부의 가슴속을 따뜻하게 녹여 주고 있었다.     


요즈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학생들이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기는커녕 으레 잠을 자는 척하거나 아예 눈을 감아 버리든지, 휴대폰만 열심히 들여다보며 주룸물럭거리기가 일쑤이며 떠보편화된 현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날 그 두 남학생의 예의 바르면서도 아름다운 행동은 요즘 세상에 정말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실천할 줄 아는 이 두 학생의 미담이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멀리멀리 날아가듯 퍼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토록 예의 바르고 심성이 고운 학생들이 차츰 많아지면서 더욱 밝은 이 사회와 국가가 더욱 아름답게 발전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대해 본다.    

  

며칠 뒤, 난 이 아름다운 미담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쉽기도 하고 아깝다는 생각에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이 사연을 모 일간지에 써서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연은 바로 모 중앙일간지에 제법 크게 기사화되어 실리게 되었다.      


난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수 더 떠서 신문에 실린 기사를 그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이메일로 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반응은 몹시 빨랐다. 바로 해당 학교의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매우 감사하다는 이메일 답장이 돌아왔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은 전체 학생들의 조회가 있게 되는 어느 날, 여러 선생님들과 학생들 앞에서 그 두 학생을 표창하겠다는 반갑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한, 학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교육청 홈페이지에도 이 사연을 널리 알리겠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알려 주었다.       


모처럼 전철을 이용했던 그 날은 매우 기분 좋은 행운의 하루였다.       


그러기에, 그런 예의 바르고 심성이 고운 착한 학생들이 있기에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의 앞날은 밝은 미래와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을 해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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