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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l 17. 2020

국경을 두 번이나 넘은 사랑

[6.25가 남긴 비극]

첫 번째 국경     


“탕! 탕! 탕……!”     


멀리 남쪽으로부터 소총 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 우리 시골 마을에는 중공군들이 주둔해 있었다.     

  

“꽈앙, 꽈르르릉……!”     


이따금 대포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중공군들의 인해전술인 1.4 후퇴로 인해 오랫동안 인민군과 중공군들이 쏘는 딱콩총(소련제 장총) 소리만 자주 들어오던 마을 사람들은 반가움에 저마다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기쁨에 넘쳐 금세 활짝 피어나 작약꽃의 웃음처럼 밝고 환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런 들뜬 표정 속에 마음속으로는 벌써부터 환희의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우와아! 드디어 우리 국군이 진격해 오는 모양이구먼!”

“허허, 이거 얼마 만에 들어보는 국군들의 소총 소리지?”    

 

총소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날도 우리 집에서 한 집 건너 옥분(가명)네 집에 가서 옥분이와 한창 재미있게 어울려 놀고 있던 중이었다. 옥분이는 나와 어렸을 때부터 자주 같이 어울려 놀던 소꿉친구였다. 나이는 아마 나보다 두 살쯤 아래였던 것 같다.      

 

옥분네 가족은 두 부모님 슬하에 딸만 셋을 둔 가정이었다. 옥분이는 막내였다. 옥분이는 위로 두 언니가 있었는데 큰언니는 이미 시집을 가고, 둘째 언니인 옥란(가명)이와 함께 모두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가만히 보면 그때 겨우 스무 살이 거의 가까운 언니 옥란이는 내가 보기에도 어딘가 유별난 데가 있는 처녀였던 것 같다. 그때 60호나 되는 동네에 같은 또래들도 많았는데 옥란이는 전혀 또래들과 같이 어울리는 법이 없었다. 어쩌다 가끔 동네 친구들이 그의 집에 와서 어울려보려고 했지만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어울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옥분이는 외모부터 생김새가 남달랐던 것 같다. 우선 남달리 곱고 하얀 피부에 누가 보아도 첫눈에 반할 정도로 얼굴과 외모가 뛰어났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생긴 대로 놀고 있다고, 인물값을 하고 있는 거라고 가끔 수군거리거나 비웃는 소리가 자자하였다.       

 

그리고 옥분이는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지는 몰라도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좀처럼 집에서는 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국군이 진격해 오던 그날, 그날은 마침 옥분이도 집에 있었다. 국군들이 진격해 오는 총소리를 들은 중공군들은 후퇴하기 위해 겁먹은 표정으로 서둘러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마을 앞 논길을 건너 건너편 마을 뒷산 길로 급히 도망치는 중공군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느닷없이 중공군 하나가 옥분네 집으로 뛰어들어오더니 옥분이 어머니한테 매달리며 애원을 하고 있었다. 옥분네 집에 자주 드나들던 중공군이었다.      


“엄마, 나 후퇴하고 싶지 않아. 여기서 옥분이하고 같이 있고 싶어.“       


중공군은 그동안 배운 어설픈 우리말로 애원을 하며 옥분이 어머니한테 매달리고 있었다. 눈에서는 이미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그렇게 측은하고 불쌍해 보일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밖으로 나돌던 옥분이도 모처럼 집을 나가지 않고 윗방 구석에 혼자 숨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미친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절대로 그건 안 돼. 어서 가! 어서 가라구! 국군들이 오면 넌 당장 총에 맞이 죽는단 말이야, 자, 어서!“     


중공군은 몹시 초조하고 마음이 조급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더 애원을 해보더니 옥분이 어머니가 그때마다 단호하게 뿌리치자 중공군은 할 수 없이 울며불며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마을 앞 논길을 급히 뛰어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논길을 건너고 건너마을 뒤쪽 산길을 막 오르려던 중공군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발길을 돌려 도로 옥순네 집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국군들의 총소리는 아까보다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되돌아온 중공군은 다시 옥순이 어머니한테 매달리며 다시 애원을 하고 있었다.    

  

”엄마, 나 옥분이하고 엄마하고 같이 살고 싶어. 제발 나 좀 살려줘, 응?“


그러자 옥순이 어머니가 이번에는 더 완강하게 거절하며 그의 손을 뿌리치며 어서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 천치 바보 같은 놈아 그건 안 된다니까 왜 말을 안 듣고 또 왔어. 그러지 말고 어서 도망가라니까. 저 총 쏘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잖아. 죽기 싫으면 어서 가란 말이야!“     


중공군은 그래도 소용없었다. 떠미는 옥순이 엄마의 품에 울며불며 매달리며 끝까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동안 국군들의 총소리는 더옥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중공군은 겁이 났는지 다시 옥순이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며 아까 도망치던 길을 향해 엉엉 우는 소리를 내며 허둥지둥 달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불쌍하고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참 끈질겼다. 도망치던 중공군이 이번에도 다시 도망치던 발길을 돌리더니 옥분네 집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다시 옥순이 엄마 품에 매달리며 아까처럼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참 질기기도 몹시 끈질긴 중공군이었다. 그리고 그런 중공군이 불쌍하기도 하였다. 이제 모두 죽을 힘을 다해 후퇴하고 남은 중공군이라고는 그 중공군 하나뿐이었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중공군이 이번에도 옥순이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더니 다시 허둥지둥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건넌 마을 뒷산 길을 급히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그때 어느새 동네까지 진격해 오던 국군이 그 중공군을 발견하고는 총을 쏘고 있었다. 급히 도망치던 중공군은 마침내 총에 맞아 비명 소리 하나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산길에서 고꾸라지며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뒤로 동네 사람들은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 중공군이 그렇게 매달리며 애원을 하게 된 것은 옥분이 때문이었다. 그동안 자주 그 집에 드나들면서 옥분이를 은근히 둘이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갔던 것인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중공군이 워낙 옥분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옥분이 역시 어느 정도 마음을 주었기에 그동안 그렇게 그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두 사람과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사랑의 힘이 그렇게 목숨을 바칠 정도로 위대하다는 것을 나이가 든 후에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중공군은 우리의 영원한 적이며 철 천지 웬수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아군이 압록강 건너까지 쳐들어갔을 때 그들의 인해전술 작전에 의해 우리가 찾았던 땅을 도로 내주는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게 만든 또 하나의 주적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공군들이 모두 다 못된 놈, 그리고 나쁜 놈들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 중에는 마음씨가 매우 착하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았다.     

 

그들이 우리 마을에 한동안 주둔해 있을 때 몇몇 중공군은 아이들을 매우 사랑하고 좋아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 여러 마리의 군마도 이끌고 우리 마을까지 끌고 왔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나고 한가할 때는 나와 옥순이를 말에 태우고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돌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공군은 혹시 우리들이 말에서 떨어질까 봐 말 고삐를 꼭 잡고 앞에서 조심조심 돌아주었다. 그때 난 난생처음 말을 타보기는 했는데 어찌나 떨어질까 봐 가슴이 뛰고 조마조마했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두 번째 국경        


어느 날 저녁이었다. 이제 막 땅거미가 내리며 어둑어둑해질 때였다. 조용하고 평온하기만 하던 우리 마을 어디에선가 갑자기 단말마 같은 젊은 여자의 비명과 함께 온 동네가 떠들썩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마을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너도나도 그 비명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느새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아!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동네 어른 하나가 젊은 여자의 머리치를 휘어잡은 채 골목길을 따라 질질 끌고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두컴컴하긴 하였지만, 자세히 보니 그렇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다니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옥분이었다.      


옥분이는 고통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머리채를 잡힌 채 땅바닥에 누워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잡힌 머리채를 두 손으로 잡고 엉엉 울면서 살려달라고 있는 대로 몸부림치며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온몸은 흙덩어리가 된 채 걸레짝이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옥분이 엄마는 딸이 길바닥에 쓰러진 채 질질 끌려다니고 있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덩달아 울며 불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처녀들은 단발머리를 하고 다녔다. 그런데 옥분이만은 유난스럽게도 머리가 궁둥이까지 내려올 정도로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옥분이 엄마가 다시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사람 살려줘요. 우리 아이가 그랬는지 어떻게 알아요? 제발 머리채만이라도 놓고 말하라고요.“  

      

그러나 머리채를 있는 힘을 다해 잡은 어른은 더욱 성이 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사정없이 끌고 다니고 있었다.      

”이년이 아니면 그럴 년이 누구란 말이오. 이런 년은 죽어도 싸다구요!“     


참 괴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머리채를 잡고 끌고 있는 그 어른의 딸도 옥분이 또래였는데 옥분이가 동네에 몇 번 드나들더니 그 집 딸이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은 틀림없이 옥분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옥분이가 살살 꼬셔서 그 집 딸을 어디론가 돈을 받고 팔아먹은 게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 어른이 어디로 팔았다는 것은 미군 부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미군이 주변에 주둔하고 있었던 때였는데 옥분이가 미군과 가깝게 지내다가 그 집 딸까지 살살 꼬셔서 팔아넘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옥분이가 아니면 그렇게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날 밤, 오랫동안 그런 소동이 벌어졌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끌고 다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후 두 집 딸 모두가 지금까지 행방불명이 된 채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나중에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옥분이는 결국 미군과 눈이 맞아 같이 어울리다가 휴전이 되자 미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하였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간 옥분이는 가끔 집으로 편지도 보내고 다달이 생활비도 보내주곤 하였다. 그리고 나와 소꿉친구인 옥순이 역시 미국으로 간 언니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아무 탈없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옥순에 집에는 뜻밖의 힘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옥순이가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그처럼 가끔 소식을 전해오던 편지도, 생활비도 아무 소식 없이 딱 끊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워낙 가난한 집이었기 때문에 옥순이는 더 이상 학비를 댈 형편이 없게 되자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안타깝게도 옥분이에게서는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무 소식조차 없이 두절된 채 생사를 모르게 되었다.        


이 모두가 6.25란 전쟁이 나은 비극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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