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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01. 2020

기껏 입에 넣어주어도 삼키지 못하는……

[방송드라마 작가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함을 깨닫게 되었다]

“따르릉~~~ 따르르릉~~~”     


아주 오래전 전화벨이 갑자기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 그땐 휴대폰이 나오기 바로 전쯤의 일이어서 집 전화만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난 무심코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는 EBS TV에 근무하는 PD OOO 입니다. 혹시 시간이 나신다면 드라마 좀 써주셨으면 해서요.”      


뜻밖에도 방송국에서 직접 PD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그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난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시나리오는 많이 써 보았지만, 드라마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습작으로 라디오 드라마는 몇 편 써 보긴 하였다. 하지만 현재 여기저기 잡지사에 연재하고 있는 글들이 조금씩 있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좋은 기회에 TV 드라마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TV 드라마는 전혀 써본 적이 없는데 어떤 드라마를 쓰게 되는 것이냐고.  

    

그러자 PD가 다시 설명을 하였다. 내가 과거에 시나리오를 많이 썼다는 것을 소문을 들어 이미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시나리오나 TV 드라마나 쓰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니 한번 해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욕심 때문에 난생 처음 자신도 없는 일을 일단 해보겠다고 수락하고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연히 가슴이 설레기도 도 하고 또 하나의 희망에 들뜨기도 하였다.      


그때는 학생들에게 논술이 한창 센세이션을 일으킬 때였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논술을 이해하기 쉽게 드라마로 구성해서 매일 방영을 하게 되는 작업이었다. PD는 곧 팩스로 논술에 참고가 될 만한 자료도 팩스로 보내주었다.


 참 그리고 드라마가 시작될 때 또는 끝날 때 주제곡을 넣어야 하는데 우선 논술에 관한 노랫말을 써서 보내달라는 부탁도 하였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혼자 모두 쓰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한 편씩 써서 번갈아 가며 방영하기로 결정이 되어 있었다. 결국, 한 사람이 이틀에 한 편씩 쓰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부터 바로 방영할 날자가 잡혔다며 일주일간의 여유를 주었다.    

   

난 그 뒤부터 워드프로세서 앞에 앉아 몹시 바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원고지에만 글을 쓰다가 워드프로세서라는 게 있다기에 얼른 사서 쓰다 보니 화면이 댓 줄 밖에 나오지 않아 불편했다.


 그런데 마침 다시 화면이 큰 것이 나왔다고 하여 다시 화면이 크게 나오는 워드프로세서를 새로 사서 사용하게 되었다.  

    

몸이 바쁜 건 말할 것도 없지만 마음은 더 조급하고 바빴다. 우선 주제가로 나갈 노랫말을 써서 보냈더니 단번에 괜찮다고 하여 통과가 되었다. 그다음에는 논술로 나갈 드라마를 구상하고 써야 하고……. 또 틈틈이 잡지사에 보낼 원고 마감도 지켜야 하고…….   

     

어느덧 1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이 우선 먼저 1회분으로 방영되었다. 내가 쓴 주제가도 누군가가 곡을 붙여 화면에 노래와 함께 노랫말도 흐르고 있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이 방영되고 있었지만 공연히 신바람이 나고 감개무량하기도 하였다. 


그다음 날은 드디어 내가 쓴 논술에 대한 드리마가 방영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내겐 큰 문제가 생겼다. 드라마 극본을 쓰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드라마 쓰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미처 모르고 그저 욕심 하나만 가지고 하룻강아지처럼 무작정 덤벼들었던 나였다.    

  

다음 회를 쓰다 보면 방송국에서 자주 전화가 왔다. 어느 정도 썼느냐고……? 그리고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달라고.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딜 어떤 방향으로 쓰는 게 좋겠다고 다시 지시(?)가 내려왔다. 그리고 지시대로 쓰고 나면 쓴 것을 다시 팩스로 바로 보내달라고 하여 이만저만 바쁜 게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고 길이가 좀 길어지면 시간이 안 맞는다며 다시 좀 줄여달라고 하였다. 짧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정해진 원고 길이에서 논술의 결론이 다 명확하게 설명이 되어야만 했다.   

   

이제 말이지만 우스운 말로 전화가 자주 와서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 어떤 때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다가도 얼른 나와서 급히 받아야 했다. 밥을 먹다가도 전화 때문에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입맛도 없었다.


이러다 보면 만일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1주일만에 한번씩 꼬박꼬박 원고료가 나왔다. 어느 일반 잡지나 신문사보다 훨씬 더 고료를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나 아닌 말로 이제부터는 억만 금을 준대도 내 능력으로는 도무지 감당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능력으로는 도무지 불가항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힘에 겹기에 다른 또 한 사람의 여자 작가는 어떻게 그렇게 시간에 맞춰 잘 쓰고 있느냐고 묻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작가는 이 드라마를 쓰기 위해 방송국 바로 앞에 방을 하나 얻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급할 때마다 방송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수정하고 다시 쓰곤 한다고 하였다.       


다른 드라마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몇 달, 아니면 1년 뒤에 방영할 드리마를 미리 청탁하고 쓰게 하는 게 정상이라고 본다.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우물가에 가서 숭늉부터 찾는 식의 급한 원고를 쓰라면 지금도 자신이 없다고…….     


난 그래서 매우 미안하고 죄송한 말이지만 도중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다고 엄살을 떨며 양해를 구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은 저절로 입에 들어온 먹이도 도로 뱉는 꼴이 되고 말았다. 먹고 싶긴 했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먹을 수가 없는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부터 난 드라마 작가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대단히 부럽고도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라고 …….


끝으로 요즈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는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글을 올리고 싶으면 마음대로 올리고, 올리고 싶지 않으면 열흘이고 한 달이고 안 올려도 누가 어서 쓰라고 재촉하는 일도 없고, 너무 길다고 다시 줄여서 올려달라는 사람도 없으며 글이 재미가 없거 내용이 안 좋으니 다시 써서 올리라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고……. 그야말로 만고강산이며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그리고 가끔 정겨운 댓글이라도 달아주는 고마운 작가의 댓글에 리플을 달아드리는 일, 이 또한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며 재미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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