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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06. 2020

한 시간 동안 눈 깜빡거리지 않기

[자유중국 관광기]

눈을 똑바로 뜨고 한 시간 동안이나 깜빡거리지 않고 견딘다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놀랍게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우연한 기회에 자유중국 관광을 하게 되었다. 그 나라에 가서 여러 곳을 다니며 구경을 했지만, 특히 자유중국의 ’충렬사(忠烈祀)‘의 관광이 가장 오래도록 인상에 남았다.    

 

자유중국의 충렬사는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국립현충원과 같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모신 곳이다. 자유중국의 충렬사 역시 그 나라의 국민 혁명 당시, 그리고 일본군들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혼을 모신 곳이라는 뜻으로 볼 때는 거의 비슷하다 하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무리 외국 관광객이 많이 온다 해도 국립현충원을 들러 참배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하겠다. 그런데 자유중국의 충렬사는 외국 관광객들이 그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빼놓지 않고 한 번씩 들르는 코스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국립현충원이 그렇듯 그 나라 충렬사 앞에도 항상 위병이 버티고 서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 몰려들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충렬사의 건물이 너무나 웅장해서일까? 아니면 영혼을 모신 방법이 색달랐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해답의 열쇠는 바로 충렬사를 지키고 있는 위병들에게 있었다.    

  

내가 그곳을 방문한 것은 아마 9월 말경쯤 되었던 것 같다. 


9월 말인데도 그 나라는 여전히 고온다습하고 너무나 더웠다. 나처럼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구경이고 뭐고 모두가 다 귀찮고 고역일 뿐이었다. 가만히 그늘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이마와 등, 그리고 온몸이 후줄근하게 땀으로 범벅이 되어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가 있어도 그저 짜증만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려니 여긴 어려운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대로 잘 견디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그랬다.      


어쨌거나 우린 충렬사에 들어가기 위해 정문을 향하고 있었다. 충렬사 정문 양쪽에는 정복 차림의 위병이 각각 한 명씩 한 쪽 손으로는 총열을 잡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 손은 열중쉬어 자세로 꼿꼿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정문 양쪽에 원기둥 모형의 구조물 위에 서 있는 두 명의 위병은 우리 일행이 지나가든 말든 꼼짝없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아주 작은 미동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실제 사람이 아닌 마네킹을 세워놓은 게 아닌가 하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참으로 이상하고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가만히 위병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한동안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가 그렇게 자세히 보든 말든 위병은 여전히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실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위병이 입고 있는 옷의 등에서 땀이 스며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배 부분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보아도 숨을 쉬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토록 지독한 무더위에 그렇게 고생을 하고 서 있는 위병이 불쌍해 보이기도 하였다. 하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지 우리 일행 중에 여성 하나가 손수건을 꺼내더니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는 그의 턱과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래도 위병은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눈인사라도 하는 것은 고사하고 눈 한번 깜빡이지도 않고 서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그렇게 충렬사 관광을 마치고 난 뒤에 가이드가 위병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곳 충렬사의 위병이 되기 위해서는 1년 이상 고된 훈련을 쌓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훈련은 1시간 동안 단 한번도 눈을 깜빡이지 말아야 합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훈련에서 합격한 사람들만이 충렬사 앞에서 근무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하였다.       


그럼 그런 어려운 훈련과정을 거쳐 그곳에 근무하게 되면 다른 군인들보다 어떤 특별한 혜택이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그럼 왜 그렇게 어려운 훈련을 받아가며 그곳에서 근무를 하고 싶어하느냐고 묻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나라 젊은이들은 평생 그곳에서 한번 근무해 보는 것이 젊은이들 모두의 한결같은 바람이며 꿈이며 평생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해마다 지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곳에 근무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상식으로는 눈은 3~초 정도에 한 번씩 깜빡거리는 것이 정상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각자가 의도적으로 깜빡거리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현상인 자동으로 깜빡거리게 되는 것이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야 눈의 피로도 줄어들고 그래야 눈의 동공이 촉촉해져서 안구건조증 예방에도 도움이 되며 그 밖에 먼지나 벌레 같은 것들의 접근도 방지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멀쩡한 사람에게 눈을 한 시간이나 깜빡이지 않게 하다니! 그것은 눈 건강에도 많은 영향을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연적인 생리작용의 벽을 허물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일에 성공한 셈이라 하겠다.     

 

충렬사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한 시간 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고 서 있는 위병들도 그렇지만 또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마네킹처럼 부동자세로 서서 근무를 마치고 나면 다른 위병과 교대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교대식이 매우 볼만 하다고 한다(난 시간이 맞지 않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몇 명씩 조를 짜서 총을 메고 절도있게,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교대를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일품이라는 설명을 듣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의장대 역시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그 기교와 재주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 역시 우리나라의 의장대 못지않게 교대식을 한다고 하는데 바로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그곳을 빼놓지 않고 방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알고 보면 충렬사에 많은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줄을 서서 그곳을 방문하고 있는 이유는 정작 충렬사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위병들을 보러 가는 꼴이 되고 만 것 같다는 느낌이들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을 방문하는 어떤 다른 깊은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 개인적인 좁은 생각으로는 그 나라는 젊은이들에게 공연히 눈을 깜빡이지 못하도록 하는 비생산적인 고된 훈련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대단히 엄청난 생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외화 획득을 쉽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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