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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13. 2020

너무나 황당한 일

[열 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거짓말은 마치 눈덩이와 같아서 오랫동안 굴리면 굴릴수록 더 커진다.     

                                                                                                                   - <M. 루터> -     





과거에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안톤 슈낙>의 그 유명했던 수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수필에서는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슬픈 현실들은 수필로 승화시켜 많은 학생들에게 감동을 일으켜 준 글로 그 당시 학생들은 한때 이 수필에 대한 열광적인 선풍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요즈음 나는 가끔 자신도 모르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의 제목이 문득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그 수필에 관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 수필의 제목이 떠오르며 공연히 우울해지고 슬퍼지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아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뜻이 서로 맞지 않아 크게 엇갈리게 되어 끝내 금이 가게 경우를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철석같이 굳게 믿었던 친구 또는, 그 밖에 가깝게 지내던 누군가와 서로 갑자기 뜻이 맞지 않는 일로 인해 소원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일로 인해 서로 갈라지기도 한다. 


그런 경우처럼 서운하게 느껴질 때가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 심한 배신감은 물론이고 몹시 속이 상하고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우울해지기도 하고 슬퍼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내 맘과 같으면 오죽이나 좋겠느냐’는 말을 즐겨 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그런 말들은 어떤 사람의 속을 몰라 이용당하거나 속고 난 뒤에 억울하고 분함을 표현하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몹시 수치스러우면서도 '내 얼굴에 침 뱉기'와 조금도 다른 바 없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도 얼마 전에 바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당하고 말았다.      


‘한 길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에 담긴 교훈을 절실히 실감할 수 있는 우울한 사건 하나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황당하면서도 전혀 뜻밖의 일이었기에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보다 어쩌면 내겐 더 큰 슬픔이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아니 죽마고우까지 이래서야 앞으로 어떤 사람을 믿고 살아갈 수가 있으며 시쳇말로 어떤 사람이 ‘된장인지 똥인지’를 무슨 재주로 구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사건을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지금도 마음이 슬프고 우울하며 허탈하기가 짝이 없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오래전에 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퇴직 후에도 서울에 눌러 앉아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가까운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소도시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기회가 허락만 된다면 바로 서울로 도로 올라갈 계획이었으나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아직도 이곳에 눌러살고 있다.      


세상일이 모두 내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뜻대로 안 되는 것 또한 세상일이 아니던가!


내가 고향 근처로 내려오게 되자 그 소문을 듣게 된 고향 친구 두 명이 나를 환영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두 사람 모두 어렸을 때부터 한 마을에서 죽마고우로 자란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만나기가 무섭게 반갑다며 곧 부근에 있는 정육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몹시 고맙고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육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간 그들은 환영식이라며 분에 넘치도록 융숭하게 술과 소고기 불고기를 안주 삼아 오랫동안 밀렸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었다. 몇십 년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친구들이어서 당연히 이야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날 다음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몇 달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서 술도 같이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분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느닷없이 친구 한 사람이 문득 생각이 난 듯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었다. X가 우리들 모임에 같이 끼고 싶어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어왔다.       

그 X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고향 마을과는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살았지만 특히 나와는 중학교 때 한 반에서 공부한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더구나 중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에 도 가끔 와서 잠을 같이 자기도 했을 정도로 나와는 아주 각별한 친구였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X가 우리들의 모임을 같이하게 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결국, 세 사람 모두 의견일치를 하게 되었고, 다음부터는 X도 같이 우리 모임에 참석하도록 연락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 다음번에는 정말 약속한 대로 X도 참석했다. 너무나 반가웠다.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보고 싶었고 반가운 친구 한 사람이 더 들어오게 되어 우리들의 모임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날은 너무 뜨겁다 못해 노래방까지 가서 실컷 놀다가 헤어졌다.      


우리는 모임을 할 때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순조롭게 회식이 이행되고 있었다. 그 규칙이란 회식을 할 때마다 네 사람이 번갈아 가며 회식비를 지불하고 회식 장소도 회식비를 지불할 사람이 마음대로 정하고 그대로 따르기로 했던 것이다. 네 사람 중에 내가 세 번째였다. 그리고 X는 마지막 네 번째 순서였다.   

   

두 번째 사람이 회식비를 지불하게 되는 날, 나는 자동차를 몰고 회식 장소로 가면서 X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음에는 내 차례인데 그때는 ‘OO가든’으로 가서 회식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게 되었다.


‘OO가든’은 우리 가족들과 같이 여러 번 가본 곳어어서 난 고기맛이 그런대로 괜찮은 식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내 이야기를 듣기가 무섭게 X가 갑자기 펄쩍 뛰면서 말했다. 점잖은 사람들이 체면 구기게 왜 그런 데를 가서 먹느냐는 것이었다. 자기도 한 번 가서 먹어보았는데 너무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어서 다시는 안 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느 고기집을 가리키며 거기 가면 맛좋은 한우고기만 팔고 있으니 그곳에 가서 먹자고 하였다.   

   

난 X의 말을 듣고 히야! 이 사람 대단하게 노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약간 무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X가 말하는 장소는 각자가 차를 몰고 가야하는 곳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어서 취소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내 차례 때에는 가깝고도 술을 마시기에도 적당한 장소를 잡아 회식을 하게 되었다.      


그날 노래를 몹시 좋아하는 X는 회식이 끝나자 노래방을 가자고 하였다. 그리고는 노래방에 가서도 X는 기분이 몹시 좋은지 마이크를 혼자 도맡아 쥐고 도우미까지 부르더니 신바람이 나게 도우미를 껴안고 기분좋게 노래를 실컷 부르고 헤어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마침내 내일이면 X가 회식 자리를 마련할 날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회식 장소는 이미 X가 지난번 회식 때 뻑적지근한 장소로 정해주었기에 내일 오후 5시에 그 장소로 몸만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 X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회식할 날짜가 어느 날이냐고 내게 물어왔다. 난 내일은 자네가 주인공인데 자네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핀잔 섞인 말로 내일 오후 5시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X는 이제야 안심을 했다며 X는 약속한 날짜가 지난 게 아닌가 하고 깜짝 놀라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럼 내일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 통화를 끝냈다.      


마침내 그다음 날 오후 5시, 우리 세 사람의 친구는 약속한 장소로 시간에 맞추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나타나지 않은 X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랬겠지 하는 생각에 10분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X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우리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어찌 된 일인지 신호는 가는데 받지도 않았다.     

   

이곳으로 오다가 무슨 사고가 난 것은 아닌가 하고 20분이 지나자, 답답한 마음에 다시 걸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받지도 않고 감감무소식이었다. 30분이 지났는데도 무슨 일인지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 세 사람은 우리끼리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몇 차례 전화를 해 보았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는 결국 우리 친구들이 내는 저녁을 3차례 다 얻어먹으며 큰소리만 치다가 그의 차례가 되자 그만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세상이 이런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고향 친구이자 중학교 동창인데, 그래서 몇 십년 만에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갑고 기뻐했었는데…….     

        

물론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찾아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질이 안 좋은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이 아직까지 많기에 그런대로 살 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보게 된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학교 동창, 그리고 어렸을 때 단짝이었던 친구의 마음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기가 막히고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런 친구를 둔 나 자신이 몹시 수치스러움은 느낀다. 그리고 슬프게 한다.  


난 지금까지 오래 살아왔지만 아직도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혜안이 부복한 것 같다.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남아 있기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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