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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22. 2020

너무나 웃기는 이야기 (2)

[ 세 가지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그 옛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골에서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거나 등잔불을 켤 때, 그리고 담에 불을 붙일 때에도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등잔불을 겨거나 밥을 하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는 주로 성냥을

많이 사용하였다. 성냥도 귀했다.


그래서 가끔 성냥개비만을 파는 사람들이 성냥을 머리에 이고 마을로 돌아다녔다.      


네모로 큼직하게 갑으로 만들어진 성냥갑은 그나마 고급이었다. 대부분 됫박으로 된 성냥개비를 한 되에 얼마씩 주고 사서 담배도 피우고 아궁이에 불도 지피곤 하였다. 그래서 성냥개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담배를 피울 때 화롯불이나 아궁이에서 붙이기도 하였다.     


성냥개비만 가지고는 불을 일을킬 수 없었다. 그래서 '황'이라는 것을 따로 보관하고 있다가 황에다 성냥개비를 마차리켜서 불을 일으키곤 하였다.  그 후에 '딱성냥'이라는 게 새로 나왔다. 딱성낭은 '황'이 따로 없어도 아무 데나 성냥개비를 마찰시키면 불이 일어나서 매우 인기가 좋았다. 


캄캄한 밤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관솔(송진이 많이 묻어있는 소나무의 가지나 껍질)이나 초를 많이 이용하였다.


그러나 관솔이나 초는 바람이 불면 바로 꺼지기 때문에 꺼지면 또 켜고 꺼지면 또 켜는 번거로운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래서 횃불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횃불은 작대기처럼 기다란 나무 끝에 솜뭉치를 단단히 매달면 된다.


그리고 솜뭉치에 석유를 듬뿍 묻혀서 불을 붙이게 되면 촛불이나 관솔보다 더욱 오래 타기도 하지만 관솔이나 촛불보다 더욱 밝아서 이웃집으로 마실 갈 때나 밤에 밖에서 일을 할 때 요긴하게 쓰이곤 하였다.


그러나 그 모두가 매우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을에 자주 큰불이 나기도 하였다.      

               

그랬던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마을에 어떤 사람 하나가 미군 부대에서 구해왔다며 후레쉬 하나를 얻어오게 되었다. 무슨 재주로 얻어오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뒤부터는 그 후레쉬가 그 집의 가보가 될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땐 후레쉬라고 하지 않고 모두들 ‘덴찌‘라고 불렀다. 아마 일본식 발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후레쉬라는 신기한 물건이 그 집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 후레쉬 구경을 하기 위해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몹시 밝기도 하지만 아무리 입으로 세게 바람을 불어도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실제로 그 후레쉬를 견 다음 입으로 바람을 불어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후레쉬를 들고 힘껏 흔들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레쉬불은 좀처럼 꺼질 줄을 몰랐다.      


“거참, 희한하고 신기하구면!”     


사람들마다 후레쉬를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 뒤 세월이 흐르면서 시장에도 후레쉬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웬만한 가정에서는 대부문 후레쉬 하나쯤은 장만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산목록 1호나 되는 듯 밤이면 후레쉬불을 켜고 보란 듯이 자랑을 하기 위해 별로 볼 일이 없음에도 동네방네로 돌아다기도 하였다.  


배터리가 다 나가면 배터리 살 여력이 넉넉지 못해 늘 미군 부대 쓰레기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쓰레기장에 미군들이 쓰다 버린 배터리를 주워다 일일이 후레쉬에 넣어보고 불이 들어오면 아쉬운대로 한동안 사용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마을 어떤 집에서는 후레쉬로 인해 그만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지고 말았다.      

캄캄한 밤이었다.      


그 집 시아버지가 갑자기 밤에 급한 볼 일이 생겨 뒷간(화장실)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때는 어느 집이나 뒷간이 대문 밖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때 마침 눈치 빠른 그 집 며느리가 후레쉬를 밝게 켜서 시아버지의 손에 쥐어주게 되었다. 너무 캄캄한 밤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 덕분에 불을 환하게 밝힌 채 뒷간에 가서 볼 일을 다 보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후레쉬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후레쉬 불을 꺼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후레쉬를 끄기 위해 벌써 몇 번이나 힘껏 빙빙 돌려도 보고 있는 힘을 다해 입으로 불어보았지만 후레쉿불은 좀처럼 꺼지지를 않는 게 아닌가!   스위치 작동을 해서 불을 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허어, 그놈의 불, 참 지독하기도 하군!”     


웬만한 불은 바람을 불면 꺼졌다. 흔들어도 쉽게 꺼지는 것이 불이었다.


그런데 이건 요지부동이 아닌가! 불을 끄기 위해 어찌나 용을 썼는지 시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진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금 전에 이미 잠을 자려고 방으로 들어간 며느리를 불러낼 수도 없는 이이었다.   

   

그다음날 이른 새벽이었다. 며느리가 아침 밥을 짓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부엌 앞에 놓인 뜨물(곡식을 씻을 때 나온 물. 옛날에는 주로 뜨물물로 소나 돼지에게 먹었음)물통 속에서 훤한 빛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며느리는 급히 다가가서 뜨물통 속에 손을 넣어보았다. 그 속에는 어제 시아버지에게 주었던 후레쉬가 아직도 뜨물통 속에 잠긴 채 켜져 있는 것이 아닌가!      


며느리는 곧 시아버지에게로 가서 자초지종을 묻게 되었다. 그랬더니 시아버지 왈.  

   

“어젯밤에 그놈의 불을 끄기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니? 이래도 안 꺼지고 저래도 안 꺼지기에 할 수 없이 뜨물 통 속에 처넣었는데 그게 아직도 안 꺼지고 살아있었더란 말이지? 히야, 그놈의 불 정말 지독하기도 하구나!”  


             




두 번째 이야기      


6. 25 전쟁이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후퇴하고 있던 미군인 병사 한 명이 너무나 지쳐 그만 혼자 떨어진 채 대열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패잔병이었다.

      

미군인 병사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서 멍하니 앞을 바라보게 되었다. 젼쟁 중에는 흔히 있는 일이긴 하지만 길 저쪽에 웬 시체 하나가 쓰러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4,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인의 시체였다.      


총에 맞이 죽은 것인지 굶어서 죽은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너무나 지쳐 그런 것까지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아무튼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마침 그 시체가 누워있는 옆을 피란민들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지친 걸음걸이로 남으로 남으로 계속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미군 병사는 생각했다. 이런 기회에 한국말을 좀 배워보아야 하겠다고. 그래서 피란민들이 죽은 사람 옆을 지나가면서 뭐라고 말을 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피란민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죽은 시체를 발견하고는 혀를 끌끌 차며 입을 열었다.      


“쯧쯧쯧……. 허어, 그거 안 됐구먼. 아까운 사람이 또 하나 돌아가셨군!”     


그 말을 들은 미군병사는 아하, 죽은 사람을 보고 한국말로는 ’돌아가셨다‘라고 하는구나 하고 ‘돌아가셨다’란 말을 계속 되풀이하며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다시 피란민 한 사람이 와서 시체를 발견하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아, 불쌍하게 죽었군.”     


이에 이리둥절해진 미군병사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하, 죽은 사람을 보고 한국 사람들은 두 가지로 말을 하는 모양이구나, 한국말 배우는 일이 참 쉽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그 뒤부터는 ‘둘아가셨다’ 와 ‘죽었다’란 말을 번갈아 입으로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피란민이 또 지나가다가 시체를 보고는 또 한마디 중얼거리고 있었다.     

 

“천당으로 올라가셨군.”     


그 바람에 미군 병사는 더욱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 벌써 세 가지나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한국말은 죽은 사람을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할 수 없이 세 가지를 열심히 외우기 시작했다.      


"돌아가셨다. 죽었다. 천당에 올라갔다. 돌아가셨다. 죽었다. 천당에 올라갔다……."

 

그런데 다시 다른 피란민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허허. 뻗었군!”       


또 다음 사람이 지나가다가 침을 뱉으며 말했다.  

    

“허어, 불쌍하게 뒈졌군!”     


또 그다음 사람이 지나가게 되었다.      


“밥숟갈 놓았군!”     


또 그다음 사람이 말했다.     

 

“숨이 끊어졌군!”


또 그다음 사람이 점잖게 말했다.     

 

“요단강 건너갔군 그려!”     


또 그다음 사람이 지껄이고 있었다.      


“숨이 넘어갔군!”     


그 다음 사람이 또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나라로 가셨군!"


“……!?”     


거기까지 듣고 있던 미군인 병사는 그만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도 끝도 잆이 이어지고 있느 한국말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고 배우기를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영어로는 ‘죽다’란 말을 다이(die) 한 가지로 표현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굳이 다른 말을 더 배울 수도 없고 오직 그 낱말 하나만 가지고 모두 통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한국말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인 병사가 생각하기에 한도 없고 끝도 없이 복잡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이 한 가지 예만 보더라도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한가지 낱말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다양하고도 각양각색으로 마음대로 활용하여 표현할 수 있는 게 자랑스러운 한글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노랗다‘라는 낱말 하나만 가지고도 그 정도를 마음대로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곧 한글이 아니든가.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샛노랗다, 노리끼리하다, 누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등…….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맙고 훌륭한 한글이란 말인가!         




      

세 번째 이야기          


조선 시대 말, 우리 조상들은 점잔을 빼는 것이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특히나 양반이나 선비들은 아무리 추워도 남의 곁불을 쬐지 않았으며, 비록 배가 고파도 남들이 보는 앞에서 좀처럼 배가 고프단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가 너무 고파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망정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이를 쑤시고 다니는 여유를 보였던 것이 우리 조상들의 체면이요, 그래야 양반이었던 것 같다.      


양반이나 선비들은 또한 급한 게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려도 절대로 뛰는 일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동적이 아닌 정적이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선비나 양반들은 그 무더운 여름에는 정자에 나와 점잖게 앉아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지 않으면 시를 읊곤 하면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그날도 양반과 선비들이 마을 앞 정자에 나와 부채질로 더위를 달래면서 시를 읊거나 바둑을 두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정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텨에 갑자기 대여섯 명의 외국인들이 모여들었다.      


외국인들은 그 무더운 날씨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계속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양반 하나가 걱정스러운표정으로 점잖게 입을 열었다.      


“여보게, 저 사람들 좀 보게 이 더운 날씨에 저게 웬 고생이란 말인가.”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다른 양반이 대답했다.      


“그러게나 말일세. 그거 참 안 됐구먼. 그나저나 저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온 모양인데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가 저 사람들의 수고를 좀 덜어주면 어떻겠나?”      


“그래그래. 좋은 생각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하인들을 불러다 저 사람들이 하는 운동을 대신 좀 해주면 어떻겠나?”     


“아아, 그거참 좋은 생각일세. 그러니 우리 당장 하인들을 모두 불러모으세.”     


그들은 곧 집에 있는 하인들에게 급히 나오라는 연락을 하게 되었다. 연락을 받은 하인들 여러 명이 급히 정자 앞으로 달려오더니 손을 앞으로 모으고 주인 양반들의 지시를 기다렸다.      


“얘들아, 저 사람들이 저렇게 땡볕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걸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구나. 그러니 고생스럽긴 하겠지만 너희들이 가서 대신 운동을 해주고 저 사람들을 그늘에 와서 좀 쉬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


“예잇, 알겠나이다.”


하인들은 곧 공터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지금 한창 외국인들이 신나게 가지고 놀로 있는 축구공을 빼앗고 말았다.  그리고는 외국인들 대신 공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뻥뻥 차대기 시작했다.      


이에 이리둥절해진 외국인들이 공을 도로 달라고 쫓아다녀보았지만 하인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이리저리 공을 차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떻게 해보는 도리가 없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양반들이 흐뭇해진 표정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그래, 우리 하인들 정말 잘한다 잘해. 아무리 달라고 해도 절대로 공을 뺏기지는 말아야 하고말고. 허허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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