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함박눈이다!”
문득 밖을 내다보던 은영이가 눈이 내리고 있는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창가로 달려가면서 소리쳤습니다.
“우와! 정말 멋있구나!”
하루 종일 혼자 집을 보느라고 심심했던 은영이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리고 있던 하늘에서는 마침내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습니다. 목화송이보다 더 하얗고 탐스러운 함박눈이었습니다.
“에이, 눈이 오려면 진작에 올 일이지, 이렇게 늦게 내릴 게 뭐람.”
은영이는 눈이 내리는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면서 기분좋은 목소리로 투덜거렸습니다.
눈이 조금만 더 일찍 내려주기만 했어도 아마 은영이 오늘 하루가 이렇게 지루하고 심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은영이는 오늘 혼자 집을 보느라고 하루 종일 여간 지루하고 심심한 게 아니었습니다.
늘 그렇듯 아빠는 회사에 나가고, 엄마는 이웃집에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가 오신다고 하시더니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도 아직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집에 혼자 있으려니 공부도 제대로 안 되고, 오늘따라 동화책도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치이,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라도 할 일이지…….”
은영이는 늦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엄마가 슬그머니 미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눈송이는 아까보다도 점점 더 커지면서 소담스럽게 쌓이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눈송이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은영이는 지금까지 지루하고 짜증스럽기만 하던 마음이 어느새 마치 봄눈 녹듯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늦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마를 미워하던 마음이 눈이 내리자, 이번에는 어느새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집에 갔는지 몰라 전화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냐!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은영이는 갑자기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모처럼 착한 일을 하여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저녁밥을 맛있게 지어 놓아야지!”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은영이는 우선 서둘러 쌀을 꺼내 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기 밥솥이 아닌 무쇠솥 단지에 쌀을 안치고 물을 부은 다음 가스렌지에 올려 놓고 불을 당겼습니다.
언젠가 무쇠솥으로 밥을 지으면 맛이 더 좋다는 말을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에또, 그다음에는 뭘 해야지? 그렇지! 아빠는 항상 김치찌개를 좋아하셨지!“
아빠와 엄마가 칭찬을 하고 기뻐할 생각을 나니 저절로 신바람이 났습니다. 은영이는 어느새 김치통에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서 도마 위에 놀려놓고 적당한 크기로 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아앗! 엄마야!”
은영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손가락을 움켜잡았습니다. 급히 김치를 썰다가 그만 손가락을 벤 것입니다. 손가락에서는 삽시간에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엄마와 아빠에게 칭찬을 받아보려던 은영이의 기대는 삽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은영이가 아파서 쩔쩔매며 소리내어 훌쩍이며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고 있을 바로 그때, 마침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돌아오자 그 뒤를 이어 곧 아빠도 들어왔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엄마가 기겁을 해서 놀란 얼굴로 은영이의 손을 감싸 안으며 소리쳤습니다.
“아니, 은영이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잖아!”
아빠도 덩달아 눈이 커다랗게 돈 눈으로 소리쳤습니다.
"흐흐흑……, 엄마가 늦게까지 안 오시기에 저녁을 맛있게 준비하다가 그만…….”
“아니, 뭐라구? 너보고 집을 보고 있으랬지, 엄마가 언제 밥을 하라고 하든?"
엄마는 몹시 속이 상한 듯 은영이를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습니다.
“여보, 이거 밥 타는 냄새가 아니야? 어서 가봐요. 은영이의 다친 손은 내가 치료해 줄 테니까.”
엄마는 급히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빠도 허둥지둥 약을 찾아다가 정성껏 치료해 주기에 바빴습니다.
“어이구, 이거 밥이 다 탔으니 어찌면 좋지?”
부엌을 달려간 엄마가 손가락으로 코를 꼭 잡은 채 찡그린 낯으로 소리질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빠가 다시 부엌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보, 다 탔어도 괜찮아. 그거 아주 질됐어. 물을 좀 많이 넣고 푹푹 끓이라구.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뭐니뭐니해도 숭늉밥이 최고란 말이야. 이거 은영이 덕분에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승늉 밥을 먹어 보게 되었는걸, 하하하…….”
아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집안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웃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은영이는 이제 손을 베인 아픔도 잊은 채,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밖은 이미 컴컴한 어둠으로 깔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