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따뜻한 아랫목에서는 일남이가 끙끙 앓고 있습니다.
앓고 있는 일남이의 얼굴 빛은 백짓장처럼 창백합니다. 벌써 그렇게 몇 달째니 앓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끔 입에서 흘러나오는 가냘픈 신음소리조차 애처롭고 들립니다.
그런 일남이의 이마만 연신 짚어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엄마의 가슴에는 수심이 가득합니다.
”어이구, 이를 어쩌면 좋지. 열이 또 펄펄 끓고 있네, 일남이 딱 하기도 하지. 그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니! 쯧쯧쯧…….“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아빠도 답답한 듯 저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연신 한숨만 쉬고 있던 아빠가 갑자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엄마를 나무랍니다.
“이 사람이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글쎄, 얘 이름은 이젠 일남이가 아니라 개똥이라고 몇 번을 일러 줘야 알아듣겠어? 기껏 큰마음 먹고 비싼 돈을 주고 바꾼 이름을 두고 왜 번번히 일남이라고 하고 있느냔 말이야!”
아빠가 퉁명스럽게 나무라는 소리에 엄마는 기겁을 하면서 손이 입으로 갑니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여보, 이 일을 어쩌나! 습관이 돼서 나도 모르게 요놈의 입에서 전에 부르던 이름이 저절로 나오는 걸 난들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그러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그나저나 정말 어떻게 해야 이 녀석의 병을 낫게 한담.”
그런 아빠의 입에서는 긴 한숨만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몇 달째 일남이 곁에만 매달려 걱정을 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였습니다. 그래서 엄마도 아빠도 이제는 아픈 일남이 못지않게 몸과 마음이 지치고 지쳐 진이 다 빠져 있었습니다.
처음에 일남이가 앓기 시작할 때, 엄마는 일남이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면서 한동안은 열심히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주사도 맞고 약도 잘 챙겨먹으면서 얼른 낫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남이의 병은 차도를 보이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하였습니다.
급한 마음에 엄마가 다시 부랴부랴 찾아간 곳은 점쟁이 집이었습니다.
"이름이 일남이라! 허어, 이름을 잘 못 지었구먼! 그 애는 이름을 당장 바꿔야 살 수 있어!“
점쟁이는 일남이란 이름을 듣고는 단명할 이름이라고 한마디로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당장에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장 죽게 된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래서 점쟁이가 지어주는 대로 많은 돈을 주고 바꾼 이름이 바로 개똥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안심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 봐, 그리고 아이 이름을 개똥이라고 계속 불러 봐! 그러면 며칠 안으로 아이의 병은 씻은 듯이 낫게 될 게야.”
“고, 고맙습니다.”
엄마는 점쟁이에게 몇 번이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당장 일남이를 부를 때마다 개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며칠이면 낫는다던 일남이의 병은 낫기는커녕, 날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더욱 심해만 가고 있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가서 결국 큰일이 벌이질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참다 못해 다시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우리 일남이의 병이 더욱 나빠지고 있으니 어쩌면 좋죠?”
그러자 점쟁이는 벌컥 화를 내면서 엄마를 나무랐습니다.
“허어, 내가 그렇게 일렀는데 아직도 내 말을 명심하지 않는구먼!”
엄마는 더럭 겁이 나서 더듬거리며 점쟁이에게 되묻게 되었습니다.
“제가 명심하지를 않았다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분명히 말했지? 그 애를 개똥이라고 부르라고. 그런데 조금 전에도 일남이라고 부르고 있잖아. 그리고 그동안 집에서도 깜빡 잊고 일남이라고 부른 적이 있는지 솔직히 말해 봐. 내 말이 틀림없지?”
“예예, 그렇게 부르는 게 습관이 돼서 어쩌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부른 적이 있었습지요.”
“글세, 내 말이 틀림없다니까. 귀신을 속이지 나를 속여? 그러니까 애가 낫지를 않지. 그래 가지고 어떻게 아이의 병을 고치겠다는 게야? 내 말을 명심하고 다시 기서 열심히 그렇게 불러 봐!”
점쟁이가 하도 무섭게 말도 못 붙이게 소리치는 바람에 엄마는 두 말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점쟁이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그 뒤로 점쟁이의 말대로 일남이를 부를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개똥이라고만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일남이의 병은 여전히 조금도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빠가 더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거참, 병원에 가도 안 되구, 점쟁한테 가서 이름을 바꾸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도대체 이 노롯을 어쩌면 좋단 말이지!”
엄마도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면서 덩달아 맞장구를 쳤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지성을 드려 백 일 기도는 안 드렸구요?”
그러다가 엄마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아빠를 향해 물었습니다.
“차암, 여보, 이번엔 그럼 용한 한의원을 찾아가 보는 거 어떨까요? 애가 저렇게 앓고 있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한의원을 가보자고?"
“읍내에 아주 용한 의원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그래? 그것도 괜찮겠구먼. 그럼 어디 당신 뜻대로 해 보구려, 에이 참 나원……. 병원에 가면 의사의 말이 옳은 것 같고, 점쟁이 말을 들으면 이름만 바꾸면 병이 당장에 나올 것 같더니만……. 그거참 누구의 말이 옳은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있어야지!“
엄마와 아빠가 이번에는 그 길로 일남이를 등에 업고 곧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동안 일남이의 맥을 짚어보던 의원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에 또, 병이 아주 깊어졌군요. 지금까지 어떤 치료를 해 오셨습니까?“
“그동안 병원에 열심히 다니면서 주사도 맞혀 주고 약도 싸 봤지요.”
“또, 그리고요?”
“점쟁이한테 가서 이름을 바꾸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성으로 백일기도도 드려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허허, 지금까지 공연히 헛고생만 하다가 아이의 병을 길러 주고 말았군요.“
“헛고생을 하다니요?”
엄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 둥그렇게 된 눈으로 되물었습니다.
“무슨 병이든지 그 병을 고치려던 뿌리째 뽑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쓰는 약이나 주사는 물론 반짝하는 효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병을 완전히 뿌리째 뽑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 병이 이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쨌든 좀 늦기는 했지만 잘 오셨습니다.”
“그럼 이 아이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물론입니다. 이제 아무 걱정 마시고 제가 지어 드리는 약을 꾸준히 써 보십시오. 곧 차도가 있을 겁니다.”
“제발 낫게만 해 주신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는 이번에도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절을 하면서 의원이 지어 주는 한 달치나 되는 한약을 비싼 값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일남이의 병은 어떻게 된 일인지 오히려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있습니다.
“이거 정말 큰일이로군!”
엄마와 아빠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대문 밖에서 스님의 염불 소리와 함께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몹시 짜증스러운 얼굴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개똥이가 시끄러워할 테니 어서 쌀이라도 시주하고 보내구려."
아빠의 말에 엄마가 얼른 일어나더니 바가지에 쌀을 퍼 담아가지고 나갔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댁에 어찌 이리 짙은 먹구름이 짙게 끼었는고!”
스님이 혼자 지껄이는 말에 엄마가 그만 솔깃해져서 물었습니다.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아무것도 아니올시다. 하지만 소승의 생각으로는 그동안 아이의 병을 고친답시고 여러 우물을 파신 것 같소이다. 앞으로 이 댁의 먹구름이 걷히기를 원한다면 한 우물을 파심이 어떨까 하는 것이 소승의 짧은 생각이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은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읍을 한 채,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곧 발길을 돌렸습니다.
엄마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님의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떠올렸습니다.
“그래, 스님의 말씀이 맞았어, 내가 그동안 귀가 너무 여리고 어리석었던 거야.”
엄마는 이제 뒤늦게야 좀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