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용기(61)
[김처선, 조선 연산군 때의 환관(출생년도 미상 ~1505)]
용기가 있다는 것은 남보다 특별히 힘이 세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배짱이 두둑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용기란 항상 올바른 마음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다가 일단 옳지 못하거나 그릇된 일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용기는 옳은 일에만 발휘해야 진정한 용기, 참된 용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연산군의 성품이 날로 포악해져가면서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횡포가 심해지고 있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그런 연산군의 횡포를 매일 보면서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자칫하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목숨이 달아날 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개탄하며 보다못해 목숨을 바쳐서라도 연산군의 그릇된 행동을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 바로 연산군을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고 있는 환관 김처선이었다.
"아마 오늘 입궁하게 되면 나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거야. 그러니 만일 저녁때 집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날, 김지선은 집을 나서면서 가족들에게 이렇게 자신의 결심을 알려 주었다. 식구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소매를 붙잡고 울며불며 한사코 말렸다.
하지만 한번 결심한 그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침내 비장한 결심을 한 후, 대궐로 향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연산군은 궁녀들을 데리고 한창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추태를 벌이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광경은 그 어떤 짐승보다도 더 추잡하였으며 말 그대로 미치광이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 추잡스러운 광경을 보다 못한 김처선이 마침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연산군을 향하여 크게 나무랐다.
“전하! 하늘이 부끄럽지도 않사옵니까? 지금 그게 도대체 무슨 추잡하고 미친 짓이옵니까?”
감히 임금을 꾸짖는 김처선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대신들 모두의 표정이 금세 금방 납덩이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당장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뭐라고? 네 이놈! 네가 감히 건방지게 누구를 훈계하려 든단 말이냐!“
“마마, 훈계가 아니옵니다. 늙은 이놈은 그동안 네 분의 임금을 섬긴 경험이 있으며, 글도 조금은 읽었습니다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두 눈을 비비고 살펴보아도 전하처럼 부끄러운 행동과 망발을 하는 임금은 일찍이 없었던 줄로 아옵니다.”
"아니, 저놈이 뭐가 어쩌고 어째! 내 이놈을 당장…….”
크게 노발대발한 연산군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결국 벽에 걸려 있던 활을 홱 낚아채더니 김처선을 향해 힘껏 시위를 당기고 말았다. 화살은 어김없이 김처선의 옆구리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처선은 추호도 겁을 내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맞섰다.
"이까짓 늙은 몸이야 지금 죽은들 아까울 게 뭐가 있겠사옵니까. 다만 전하께서 오랫동안 용상을 지키시지 못할 것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
"아니 곧 죽어가면서도 그래도 이놈이! 아마 오늘 네가 내 손에 죽으려고 환장이라도 했던 모양이구나!”
연산군은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다시 활을 높이 들어 김처선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이번에 쏜 화살은 다시 김처선의 다리를 관통했다. 김처선이 그렇게 비명을 내며 쓰러지자 연산군은 몹시 통쾌한 듯 호탕하게 웃으면서 김처선을 향해 큰 소리로 다시 명령하였다.
“하하하……. 자 이제 그 다리로 일어나서 걸어 보도록 하여라, 자 어서!”
그러나 김저선은 조금도 지지 않고 연산군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다시 소리쳤다.
“지금 제게 내리신 그 명이 전하로서 늙은이에게 내리는 올바른 명령이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옵니까? 그건 올바르고 정당한 명이 아니라 공연한 객기이며 만용이시옵니다.“
"아니, 이놈이 화살을 맞고 나더니 정말 미쳤나보구나! 어서 당장 일어나서 걷지 못할까!”
연산군은 화가 극도에 달해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김처선은 여전히 지지 않고 연산군을 향해 다시 훈계하듯 입을 열었다.
"아랫사람에게 명을 내리려면 제대로 좀 내리십시오.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어 다니실 수 있겠사옵니까?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분부이옵니다. 그러니 이젠 제발 정신을 좀 차리시옵소서, 전하!”
마침내 연산군은 악에 바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김처선을 죽이게 됨은 물론, 그의 가족들까지 몰살시키고야 마는 만행을 자지르고 말았다.
김처선은 비록 내시의 신분이긴 하였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겁 없이 바른말을 한 용기 있는 충신으로 지금까지 높이 평가되고 있다.( * )